• [컬렉터블 럭셔리 | Part 1] 성장기로 접어든 시계 재테크, 명실상부 대체 자산으로 부상한 명품 시계

    입력 : 2026.07.28 15:30:04

  • 브레게 ‘마린 에콰시옹 마샹’ <사진 연합뉴스>
    브레게 ‘마린 에콰시옹 마샹’ <사진 연합뉴스>

    시계만큼 ‘취향’과 ‘자산’ 가치를 만족시키는 수집품도 드물다. 그림이 화가의 명성이나 국가별 평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는 것과 달리, 명품 시계는 전 세계 어디서나 공통의 기준으로 인정받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롤렉스로 입문해 차츰 시계의 스토리와 브랜드 헤리티지를 이해하면서 취향이 생기며 어엿한 시계 수집가의 반열에 오른다.

    거품 걷어낸 시장, 튜더·까르띠에로 번지는 컬렉팅 열기

    시계가 현물 자산으로 주목받으면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영역은 중고(리세일) 시장이다. 시장조사기관 데이터브릿지에 따르면, 글로벌 중고 명품 시계 시장 규모는 2024년에 287억7000만 달러로 평가됐다. 연평균 11.60% 성장해 2032년까지 692억2000만 달러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자산으로서의 성과도 입증됐다. 2018년 8월부터 2023년 1월까지 롤렉스·파텍 필립·오데마 피게 상위 모델의 중고 평균가는 연 20%씩 올라, 같은 기간 S&P500의 8%를 크게 앞질렀다.

    2022년 정점 이후 한 차례 거품이 빠지며 가격이 조정됐지만, 시장은 오히려 더 단단해졌다. 2026년에 이르며 필립스·크리스티·소더비 등 주요 경매사가 3년 만에 최고 수준의 낙찰 실적을 기록했고, 투기 열기가 빠진 자리에 한층 합리적인 시장이 들어섰다.

    인기 브랜드도 점차 확장되고 있다. 롤렉스·파텍 필립·오데마 피게 등 세 브랜드 인기가 인정되고 튜더·까르띠에·바쉐론 콘스탄틴이 상대적 강세를 보이며 컬렉터의 관심을 끌어모으고 있다. 정장을 입거나 격식을 차리기보다 캐주얼하고 스포티한 패션을 즐기는 트렌드로 인해 드레스 워치보다 스포츠 워치 인기가 높아졌다. 박스와 보증서 등 구성품의 완비 여부가 상단 가격대에서 10~30%의 가치 차이를 만든다. 한편, 2025년 8월 미국이 스위스산 시계에 39% 관세를 부과하자 롤렉스와 파텍 필립이 가격을 인상하면서, 리테일 가격 상승이 다시 중고 시세를 끌어올리는 연쇄도 나타났다.

    국내 시장은 신품 기준 세계 10위권 규모로, 업계는 이를 ‘성숙기의 초입’으로 본다. 외국계 대형 플랫폼 크로노24의 국내 진입, 바이버를 비롯한 토종 플랫폼의 성장으로 정보 비대칭이 상당히 해소됐다. 기존에는 커뮤니티·카페 중심으로 이뤄지던 거래가 플랫폼 중심으로 ‘대중화’되며 시장이 커지고 있는 단계다.

    롤렉스에서 하이엔드로 뚜렷한 변화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양극화다. 중고 명품 거래 플랫폼 구구스 채성직 시계팀장은 “코로나 시기, 다른 소비시장이 위축되자 롤렉스로 시계에 입문하는 고객들이 많았다”라고 설명했다. 그들이 눈높이를 높이며 2~3년 전부터 파텍 필립·오데마 피게 같은 초고가 하이엔드로 옮겨갔다. 하이엔드 브랜드에 대한 수요는 빠르게 커지는 반면, 중저가 브랜드 인기는 상대적으로 낮아졌다.

    구매 목적도 갈린다. 환금성과 가격 방어가 강한 롤렉스는 투자 목적, 공급이 제한된 파텍 필립·오데마 피게는 희소성을 좇는 수집 목적에 가깝다. 3040세대에서 최근 20대 비중이 늘어나며 연령대도 젊어지고 있다. 여성 고객 비중도 높아졌다. 까르띠에 등 하이 주얼리 브랜드의 시계를 결혼 예물로 선호하기 때문이다. 최근 주식 시장 호황으로 자산을 불린 신규 고객이 하이엔드 소비를 키운다는 분석도 나온다.

    오프라인·온라인·AI 세 갈래로 갈린 성장 전략

    국내 중고 명품 시계 시장이 성장하며, 전통적인 강자와 데이터로 무장한 스타트업은 각각 다른 전략으로 소비자와 만나고 있다.

    2002년 설립된 구구스는 중고 명품 시장의 선구자다. 시계 부문은 가방에 이어 거래 비중 2위로 올라섰다. 전국적인 오프라인망이 강점으로, 1인 매입(소싱) 센터를 서울권 5곳과 부산 등 6개 지점으로 운영하며 추가 출점을 예고했다.

    시세를 일괄 공개하기보다 고객을 직접 만나 제품 하나하나를 실물로 확인하고 1:1로 안내하는 방식을 고수한다. 연식·컨디션·구성품에 따라 같은 모델도 시세가 다르기 때문에, 일괄 공개는 오히려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40년 경력 장인이 상주하며 매장, 감정팀, 선임자의 3단계 감정을 거친다. AI 감정 시스템도 개발 중이다. 20년간 축적한 데이터와 방대한 가품 데이터량이 더 높은 신뢰도를 담보한다는 설명이다.

    바이버는 2021년 설립된 두나무 자회사로, 온라인 기반의 중고 시계 거래 플랫폼이다. 개인 간 거래를 단순 연결하는 크로노24와 달리 플랫폼이 검수·감정·상태를 책임지는 리커머스 비즈니스 모델을 택했다. 월 거래액 200억원을 돌파해 누적 3500억원을 넘겼고 최근 성장률은 80%를 웃돈다. 오감정 사례가 단 한 건도 없다는 점을 신뢰의 근거로 내세운다. 무엇보다 시세 데이터를 공개해 국내 중고시계의 사실상 ‘표준 시세’ 역할을 한다.

    테이밍랩은 가장 최근 AI 기술로 존재감을 키운 신예다. 리커머스 플랫폼 ‘왓타임(WhatTime)’을 통해 국내 개인 판매자와 일본·홍콩·미국·중국의 글로벌 전문 바이어를 잇는 기업간거래(B2B) 구조를 구축했다. 판매자 중심 구조로 물량을 확보한 뒤 국가별 시세 차이로 수익을 극대화하는 방식이다.

    핵심은 자체 개발한 ‘프라이싱 AI’다. 수만 건의 글로벌 시세 데이터를 실시간 분석해 국가별 수요와 가격 변화를 반영한 최적 매입가를 제안한다. AI가 단순히 연식, 구성품 유무, 단품 상태 같은 기초 데이터뿐만 아니라 베젤의 세대, 무브먼트, 버클의 사양까지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특징이다.

    기존 플랫폼들이 리스크 방어 차원에서 매입가를 거래가의 60% 수준으로 책정하던 것과 달리, 판매자에게 최적의 가격을 제시한다는 장점을 앞세웠다. 유호연 테이밍랩 대표는 “전 세계 7개국 이상의 확실한 바이어 네트워크와 프라이싱 데이터를 바탕으로 매입한 시계를 일주일 이내에 전량 해외로 판매한다”라며, “리스크 비용을 제거한 만큼, 국가 간 시세 차이를 활용해 국내 시세보다 유리하게 판매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최근 테이밍랩은 글로벌 B2B 론칭 약 400일 만에 월 매출 20억원을 돌파했다.

    세 회사의 길은 결국 ‘투명한 정보와 신뢰’라는 한 지점에서 만난다. 다만 AI 시세를 둘러싼 시각차는 분명하다. 매물이 적은 하이엔드일수록 객체 마다 가치가 달라 일반화된 시세는 ‘가이드’일 뿐이며, 결국 실물 감정과 사람의 큐레이션이 신뢰의 본질이라는 견해가 한편에 있다.

    [박수빈 기자]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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