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 Trend Map] ‘트럼프와 맞짱’ 클로드 쇼크 ― 앤트로픽이 찍은 사라질 직업 vs 뜨는 직업

    입력 : 2026.07.02 14:14:41

  • 고연봉 전문직의 밤은 늘 비슷했다. 로펌 신입은 판례를 찾고, 회계법인 주니어는 숫자를 맞추고, 개발팀 막내는 선배가 짜 놓은 코드 옆에서 오류를 고쳤다. 힘들고 단조롭지만, 그 시간은 커리어의 입구이기도 했다. 누구나 그 구간을 지나며 일을 배웠고, 조직은 그 과정을 통해 사람을 키웠다. 그런데 지금 가장 먼저 흔들리는 곳이 바로 그 “입구”에 위치한 주니어들이다. 공장 로봇이 아니라 책상 위 인공지능(AI), 그것도 실제 업무를 밀고 들어오는 에이전트 인공지능(Agentic AI)이 사무실의 질서를 바꾸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상징처럼 떠오른 이름이 클로드(Claude)다.

    클로드는 왜 지금 가장 뜨거운 이름이 됐나?

    클로드가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똑똑한 챗봇”이라서가 아니다. 앤트로픽(Anthropic)은 올해 들어 투자은행, 인사, 엔지니어링, 법률처럼 화이트칼라의 핵심 업무에 자사 AI를 직접 연결하는 기능을 빠르게 늘렸다. 로이터에 따르면 2월 24일 앤트로픽은 기업 고객용 플러그인 10개를 공개했고, 여기에는 딜 검토, 포트폴리오 분석, 입사자 자료 작성 같은 업무가 포함됐다. 시장은 이를 단순한 기능 확장이 아니라 기존 소프트웨어 회사들의 수익 구조를 건드리는 움직임으로 읽었다. 실제로 클로드가 법률용 플러그인을 공개한 이후 소프트웨어·서비스 주식이 6거래일 동안 약 8300억달러 규모의 글로벌 매도 압력을 받았다고 전했다. 이제 AI는 “보조 도구”가 아니라 “업무 자체를 다시 짜는 제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셈이다.

    정치 변수도 분위기를 키웠다. 최근 미국 국방부와 앤트로픽의 갈등은 회사의 몸값을 더욱 키웠다. 앤트로픽이 자사 모델의 안전장치(Guardrails)를 완화하라는 요구를 거부한 뒤, 국방부는 회사를 “공급망 위험(Supplychain risk)”으로 지정했다. 앤트로픽은 자율무기(Autoanomous weapons)와 국내 감시(Domestic surveillance)에 기술이 쓰이는 데 선을 그어 왔고, 그 입장이 정부와 충돌한 것이다. 이 회사는 지금 모델 경쟁을 넘어, AI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라는 더 큰 싸움의 한복판에 서 있다.

    앤트로픽 보고서 공개 “가장 위험한 직업은?”
    사진설명

    앤트로픽은 최근 노동시장 보고서를 발표하며 AI와 미래 직업에 대한 통찰을 공유했다. 이 보고서는 “관측 노출도(observed exposure)”라는 지표를 새로 제시했다. 쉽게 말해, AI가 이론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따지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업무 현장에서 어느 직무가 얼마나 자동화되고 있는지까지 함께 본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가장 노출도가 높은 직업군은 컴퓨터 프로그래머였고, 고객서비스 담당자와 데이터 입력 인력도 상위권에 올랐다. 반대로 요리사, 오토바이 정비사, 안전요원, 바텐더처럼 현장 판단과 손기술,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 대응이 필요한 직무는 사실상 제로 노출군에 가까웠다. AI의 첫 충격이 공장보다 사무실, 블루칼라보다 화이트칼라의 정형 업무에 더 빠르게 닿고 있다는 의미다.

    보고서가 더 날카롭게 보이는 이유는 “실업”보다 “채용 둔화”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앤트로픽은 고노출 직군에서 아직 체계적인 실업 급증 증거는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하지만 동시에 22~25세 청년층이 그런 직무로 새로 들어가는 흐름은 눈에 띄게 약해졌다고 적었다. 또한 2024년부터 청년층은 고노출 직무로 덜 채용되기 시작했고, 챗GPT 등장 이후 고노출 직무의 청년 취업 진입률(Job finding rate)은 2022년 대비 14% 낮아졌다. 겉으로는 직업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처럼 보여도, 새로 들어오는 사람이 줄어들면 몇 년 뒤 직업 구조 자체가 달라진다. 이번 변화가 무서운 이유는 대량 해고 뉴스보다 조용한 입구 축소가 먼저 보인다는 데 있다.

    사라지는 것은 직업이 아닌 ‘신입사원’

    그래서 이번 변화를 “어떤 직업이 사라질까”라는 질문 하나로만 읽으면 핵심을 놓치기 쉽다. 실제로 먼저 줄어드는 것은 직업 전체가 아니라 그 안의 입문 업무다. 판례 검색, 문서 분류, 숫자 대조, 기초 코딩, 초안 작성처럼 규칙이 비교적 뚜렷하고 반복이 많은 일들이 먼저 압박을 받는다. 과거에는 이런 일이 귀찮더라도 신입을 숙련자로 키우는 과정이었다. 그런데 생성형 AI는 바로 그 구간에서 가장 강한 생산성 효과를 낸다. 결과적으로 직업의 이름이 사라진다기보다, 사람이 성장하던 방식이 먼저 바뀌고 있는 셈이다.

    이 보고서가 더 불편하게 읽히는 대목도 있다. 앤트로픽은 관측 노출도가 10%포인트 높아질수록미국 노동통계국(BLS)의 2024~2034년 고용 성장 전망이 0.6%포인트 낮아지는 경향을 확인했다. 또 AI 고노출 직군 종사자는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고, 여성 비중이 높고, 교육 수준과 임금도 더 높다고 분석했다. 다시 말해 가장 먼저 흔들릴 수 있는 곳이 저임금 단순노동이 아니라, 오히려 “안정적”이라고 여겨졌던 고학력 화이트칼라의 초급 업무일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 변화가 기존 상식을 깨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앞으로 뜨는 직업은 어디에 있나?

    그렇다고 미래가 어둡기만 한 것은 아니다. 세계경제포럼(WEF)의 ‘미래직업 보고서 2025(Future of Jobs Report 2025)’는 2030년까지 전 세계에서 1억7000만 개의 새 일자리가 생기고, 9200만 개 역할이 대체되며, 결과적으로 7800만 개의 순증이 가능하다고 봤다. 빠르게 늘어나는 직무로는 인공지능·머신러닝 전문가(AI and Machine Learning Specialists), 빅데이터 전문가(Big Data Specialists), 핀테크 엔지니어(FinTech Engineers)가 꼽혔다. 동시에 절대 숫자로는 농업 노동자, 배달 기사, 건설 노동자, 돌봄과 교육 관련 직무도 많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기술 직무만 커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현장을 다루는 직무도 함께 커진다는 뜻이다.

    이 흐름에서 특히 눈에 띄는 역할이 있다. 포워드 디플로이드 엔지니어(Forward Deployed Engineer·FDE)는 최근 AI 업계에서 가장 뜨거운 직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들은 연구실에서 모델만 다루는 사람이 아니라, 고객사 현장에 들어가 AI를 실제 업무 시스템에 붙이는 사람들이다. 로이터에 따르면 “이 역할은 기술 실력뿐 아니라 비즈니스 감각과 커뮤니케이션 능력까지 함께 요구받고, 보상 규모는 50만달러를 넘길 수 있다”라며 “결국 기업이 원하는 것은 AI를 ‘써 본 사람’이 아니라, AI를 조직의 복잡한 현실 안에서 실제 성과로 바꾸는 사람”이라 관측했다.

    사진설명

    전문직은 정말 사라질까, 아니면 역할이 바뀔까

    이쯤 되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질문이 있다. 개발자, 회계사, 변호사 같은 전문직도 결국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물음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확인되는 흐름은 “직업 소멸”보다는 “직무 재편”에 더 가깝다. 앤트로픽 보고서도 아직 고노출 직군에서 체계적 실업 급증은 보이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대신 반복적이고 표준화된 업무는 줄고, 판단과 책임, 고객 대응처럼 사람이 끝까지 붙어 있어야 하는 업무의 비중이 커질 가능성을 시사한다.

    실제로 이 변화는 전문직 내부의 역할 분담을 바꾸는 방식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초급 인력이 하던 조사와 정리, 초안 작성이 줄어들수록 숙련자는 더 적은 인원으로 더 넓은 범위를 다룰 수 있게 된다. 반면 신입은 배워야 할 구간이 줄어들면서 오히려 진입 장벽이 높아질 수 있다. 결국 “전문직이 사라진다”라기보다 “전문직 안의 승진 경로와 학습 구조가 바뀐다”라는 해석이 지금 시점에서는 더 현실적이다. 이는 앞으로의 경쟁이 자격증이나 학력만이 아니라, AI를 활용해 문제를 정의하고 결과를 검증하는 능력으로 옮겨 갈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국이 더 예민하게 봐야 할 대목
    사진설명

    한국에서는 이 변화가 더 민감하게 다가올 수 있다. 한국은행은 2025년 10월 보고서에서 지난 3년 동안 줄어든 청년 일자리 21만 1000개 가운데 20만8000개가 AI 고노출 업종에서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반면 같은 기간 50대 일자리는 20만9000개 늘었고, 그중 14만6000개가 역시 AI 고노출 업종에서 증가했다. 한국은행은 이를 “연공 편향 기술 변화(Senioritybiased technological change)”라고 설명했다. 쉽게 말해 AI 확산 초기에는 주니어의 문이 좁아지고, 시니어는 오히려 더 오래 남는 구조가 나타날 수 있다는 뜻이다.

    결국 지금 필요한 질문은 “어떤 직업이 사라질까”보다 “어떤 사람이 끝까지 필요할까”에 가깝다. WEF는 2030년까지 직무 핵심 역량의 거의 40%가 바뀔 것으로 봤고, AI·빅데이터·사이버 보안 같은 기술 역량과 함께 창의적 사고, 협업, 회복탄력성 같은 인간적 역량이 더 중요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앤트로픽 보고서와 WEF 전망, 한국은행의 분석을 함께 놓고 보면 결론은 꽤 선명하다. 먼저 사라지는 것은 직업명이 아니라 신입의 자리일 수 있고, 먼저 뜨는 사람은 단순 사용자보다 연결자일 가능성이 크다. 에이전트AI 시대의 승부는 결국 AI보다 더 똑똑해지는 데 있지 않다. AI가 잘하는 것과 인간만 할 수 있는 것을 다시 묶어 내는 데 있다.

    [박지훈 기자]

매일경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