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 Trend Map]청년 감독이 전한 영화와 AI의 공존법 사극을 AI로 제작한다?

    입력 : 2026.06.15 11:04:16

  • 지난 1~2년 사이 한국에서도 AI 영화 분야에서 주목받은 감독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AI 영화는 두 갈래로 갈렸다. AI가 잘 생성하는 SF·판타지로 화려한 영상미를 뽐내거나, ‘1인 제작’을 내세워 인력 효율을 마케팅하는 방식이다. 해외 모델이 주도하는 AI 툴 환경에서 한복, 한옥, 갓 등 한국적 이미지를 일관성 있게 생성하기는 불가능에 가까웠고, 결과물은 일본풍이나 중국풍으로 흐르기 일쑤였다.

    유형준 감독의 단편 <시구문>이 흥미로운 건 정확히 이 지점에서다. 조선시대 배경과 ‘광희문(光熙門)’이라는 실제 역사적 장소를 배경으로 선택해 고증을 살렸다. 또 배우 없이 캐릭터를 생성하는 흐름과 달리, 실제 배우를 직접 캐스팅해 인간적 감정 표현 위에 AI를 입혔다. 음악감독과 사운드 디자이너를 섭외해 다양한 협업 방식을 시도했다. AI 영화 담론을 ‘기술의 가능성’에서 ‘서사의 필연성’으로 옮겨놓은 작업이다.

    <시구문> 스틸컷
    <시구문> 스틸컷

    시구문, 광희문의 또 다른 이름

    조선시대 한양 도성 남쪽의 작은 문인 광희문에는 ‘시구문(屍口門)’이라는 별칭이 있다. 시신을 내보내던 문이었기 때문에 산 사람들은 지나기 꺼리는 곳이었다. 사대부와 왕은 넘지 않는 문이었으나, 오직 인조만 병자호란 당시 시구문을 통과해 피난을 갔다. 그만큼 다급한 상황이었다는 방증이다. 유 감독은 광희문 근처에서 6~7년째 살고 있어, 시구문이란 소재 자체가 흥미로웠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함께 팀을 꾸린 동료 감독이 3~4년 전 써둔 시나리오를 발전시켜 영화 <시구문>을 구상했다. 그는 “실제 사극을 제작하면 장소와 소품 등, 독립영화 예산으로는 불가능한 많은 비용이 든다”라며 “<시구문>은 AI가 없었다면 자본의 한계 탓에 영상화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전했다.

    한옥마을을 직접 찍어 ‘에셋화’하다

    제작 방식은 일반적인 AI 영화와는 거리가 있었다. 영화진흥위원회 매칭으로 공동 연출 3인 체제가 꾸려졌고, 중구청 협조를 받아 광희문 사진을 직접 촬영했다. 남산골 한옥마을에도 로케이션 협조 공문을 보내 배경이 될 사진들을 미리 찍어뒀다. 배경 스토리보드를 짠 뒤 필요한 장면들을 모두 실사로 수집해 ‘AI 에셋’으로 가공한 것이다.

    의상도 마찬가지였다. 사극 드라마 제작팀으로부터 사극 복장 사진을 공식 루트로 받아 활용했다. 배우들은 상투만 씌운 채 촬영하고 의상을 AI로 입혔다. “당시에는 갓도 제대로 안 만들어졌고 상투는 절대 안 나왔거든요. 머리가 흐트러지면 갓을 씌우기 어려워 가장 깔끔한 베이스만 찍고 나머지는 AI로 작업했습니다.”

    이렇게 총제작비는 약 4000만~5000만원. 실사로 같은 장면을 광희문에서 찍는다면 5배 이상은 들었으리라는 게 그의 추산이다.

    중요한 건 기술이 아니라 협업 방식이라는 것이 유 감독의 시각이다. 일반적인 영화는 사전제작, 촬영, 후반 작업이 순차적으로 진행된다. 촬영이 끝나면 이전 단계로 돌아갈 수 없다. 반면, AI 영화에서는 촬영과 후반 작업이 동시에 이뤄진다. 그는 “AI 프로덕션은 촬영 끝이라는 개념이 없고 영상 생성 AI 플랫폼만 있으면 무한하게 생성할 수 있다”라며, “영상 편집과 이미지, 영상 생성, 음악 작업을 동시에 진행한다”라고 강조했다. 생성-편집-피드백-재생성이 하나의 루프 안에서 동시에 돌아간다. 총괄 감독은 편집본을 보면서 동시에 미완성 신을 받아 피드백을 내보내고, 아티스트들은 앞 신을 수정하면서 뒤 신을 새로 만드는 식이다.

    그의 팀은 생성 툴은 ‘아무거나’ 쓰되 피그마, 노션 등 협업 툴을 활용해 콘티·피드백·일정을 관리한다. 생성 속도는 이미 충분히 빠르고, 정작 시간이 지연되는 지점은 스태프 간 의사소통이라는 진단이다. 그는 “영화 제작용 AI 도구를 만든다면, 모델의 성능보다 협업 방식에 더 고민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AI는 디지털카메라의 일부일 뿐…
    기술보다 협업방식에 집중해야

    그는 AI 영상이 배우를 대체할 수 있다는 인식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캐릭터를 가장 깊이 고민하는 사람은 사실 배우”라며, 배우가 표현하는 감정이 곧 입력되는 프롬프트(명령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장에서 배우가 기획과 다른 연기를 해 보이면 오히려 그 해석에 맞춰 이미지를 다시 생성했다. AI를 활용하면서도 영화의 본질을 잃지 않으려는 시도다.

    그럼에도 동료 영화인들 사이엔 무력감이 짙다고 전했다. 업계가 위축된 데다 AI까지 들어오면서 신입 스태프가 차근차근 올라가던 사다리가 끊기고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편의 가능성도 본다. “옛날에는 신입이 기획을 제안하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그 사이 사라지는 기획이 많았다면, 이제는 그 텀이 짧아져요. AI 교육 현장에서 만나는 젊은 감독들은 수용력이 빠르고,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직접 만들어 냅니다.”

    사진설명
    ▶ 유형준 감독
    퍼미에AI크리에이티브스 대표이자 AI 영화 감독. 기획 및 연출한 <시구문>이 서울국제 AI필름페스타 대상(장관상)을 수상했다.한국영상위원회에서 ‘AI 영화에서의 로케이션 활용’ 특강을 진행했고 미디액트에서 AI VFX 수업 등을 진행했다.

    [박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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