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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blecoin | PartⅠ]스테이블코인 전쟁 2라운드, 3000억달러 시장의 다음 관문
입력 : 2026.03.19 11: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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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명동의 길거리 저녁부터 새벽까지 번화한 이곳, 은행 창구는 문을 닫지만 돈의 이동은 계속된다. 관광객들은 시차 없이 결제하고, 주말에도 정산을 멈추지 않는다. 여행객들은 환전 대신 앱을 켜고, 프리랜서는 국경 너머에서 대금을 받는다. 스테이블코인은 한때 코인판의 임시 현금에 불과했다. 가격이 흔들리는 코인들 사이에서 “달러처럼” 보관하고 옮기기 위한 토큰. 그런데 2026년, 스테이블코인은 더 이상 ‘거래소 편의 기능’이 아니다. 미국의 법제화, 유럽의 MiCA, 결제사와 핀테크의 상용화가 겹치면서 스테이블코인은 결제·정산·예치의 레일로 이동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 시장 빅뱅지갑을 열지 않아도 결제는 된다. 출근길 커피, 해외 직구, 월말 구독료까지 화면을 한 번 터치하면 끝난다. 그런데 정산은 여전히 과거에 머문다. 주말이면 멈추고, 국경을 넘으면 며칠이 걸리고, ‘중개’라는 이름의 수수료가 곳곳에 붙는다. 소비자에게는 매끈한 UX지만, 돈이 실제로 이동하는 백엔드는 아직 낡은 레일 위에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이 비틀린 시간차를 파고든다. 혁신은 속도를 만들고, 속도는 규모를 부른다. 문제는 그 규모가 커질수록, 스테이블코인이 단순한 ‘코인 시장의 현금’이 아니라 은행 예금과 경쟁하는 준(準)금융상품이 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지금 미국에서는 은행권과 크립토 업계가 “수익(이자)” 한 단어를 두고 정면충돌하고, 한국에서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누가 발행할 것인가”를 놓고 통제와 혁신이 맞붙는다.
핵심은 ‘규모’와 ‘달러화’2026년 초 스테이블코인 시장은 3000억 달러대를 넘어섰다. 이 숫자는 단순한 성장 지표가 아니라, 스테이블코인이 더 이상 ‘가상자산 내부 결제수단’에 머물지 않는다는 신호다. 규모가 커지면 네트워크 효과가 생기고, 네트워크 효과는 표준을 만든다. 지금 그 표준은 달러 스테이블코인이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커진다는 것은 “디지털 달러화”가 현실에서 작동한다는 뜻이다. 신흥국에서는 가치 저장·송금 비용 절감이 수요를 밀어올리고, 선진국에서는 결제·정산 시간 단축이 기업 실무를 바꾼다. ‘달러에 붙어 있는 토큰’이 국경을 가볍게 넘으면서, 환전·중개·정산의 마찰비용을 낮춘다. 하지만 인프라가 된다는 건, 사고도 인프라급이 된다는 의미다. 특정 발행자(특히 초대형 발행자)의 투명성, 준비자산 구성, 환매 유동성 논란이 시장 전체의 신뢰로 번질 수 있다. 로이터는 이에 대해 “이자(수익)형 스테이블코인은 소형 은행에 타격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크립토 업계의 반박도 단단하다. “수익은 예금이 아니라 고객 유치·결제 활성화를 위한 리워드이며, 무조건 막으면 혁신을 꺾을 수 있다”는 논리다. 실제로 상원 논의 과정에서 ‘보유만으로 받는 이자’는 금지하되 ‘활동 기반 리워드(결제·전송·충성도 프로그램 등)’는 허용하는 식의 문구가 제시되며, 법안 문장 하나가 시장 구조를 바꾸는 수준으로 민감해졌다. 갈등이 커진 결정적 장면은 “법안 표결이 미뤄질 정도로” 정치 일정이 흔들린 것이다. 2월 초 백악관에서 은행권·크립토 업계가 함께 모여 절충을 시도했지만, 리워드(수익) 허용 범위를 두고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교착 상태가 이어졌다. 이 싸움이 더 뜨거운 이유는 ‘숫자’가 붙었기 때문이다. 스탠다드차타드는 2028년까지 미국 은행 예금이 스테이블코인으로 최대 5000억달러 이동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 시장에서는 ‘예금 대이동’이 현실화할 경우 가장 먼저 충격을 받는 곳이 대형은행이 아니라 지역은행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런데 아이러니는 여기서 시작된다. 은행권이 “금지”를 외치는 동시에, 일부 글로벌 금융사는 스테이블코인 인프라에 투자하거나 컨소시엄 형태의 실험에 들어간다. 규제를 막아 세를 지키려는 움직임과, 규제권 안에서 새 레일을 선점하려는 움직임이 동시에 벌어지는 것이다.
비자·스트라이프가 만든 스테이블코인스테이블코인이 대중화되는 순간은 사용자가 ‘새로운 걸 배울 때’가 아니라, 기존 습관이 그대로 유지될 때다. 비자가 내세우는 메시지가 정확히 그 지점에 있다. 소비자는 카드를 쓰고, 가맹점은 대금을 받는다. 바뀌는 건 뒷단의 정산 레일이다. 비자는 미국 내 파트너들이 스테이블코인 USDC로 네트워크 정산을 시작했다고 공식 발표하며, 주말·휴일을 포함한 ‘7일 정산 가용성’을 강조했다. 결제의 겉모습이 아니라 기업의 현금흐름과 운영 비용이 바뀌는 변화다. 스트라이프의 행보는 “규제권 안으로 들어오는 스테이블코인”을 상징한다. 스트라이프가 인수한 Bridge가 2026년 2월 OCC로부터 내셔널 트러스트 뱅크 설립에 대한 조건부 승인을 받으며, 수탁·발행·준비금 관리 같은 기능이 제도권 트랙에서 논의Premium Monthly Business Magazine 그런데 아이러니는 여기서 시작된다. 은행권이 “금지”를 외치는 동시에, 일부 글로벌 금융사는 스테이블코인 인프라에 투자하거나 컨소시엄 형태의 실험에 들어간다. 규제를 막아 세를 지키려는 움직임과, 규제권 안에서 새 레일을 선점하려는 움직임이 동시에 벌어지는 것이다. 비자·스트라이프가 만든 스테이블코인 스테이블코인이 대중화되는 순간은 사용자가 ‘새로운 걸 배울 때’가 아니라, 기존 습관이 그대로 유지될 때다. 비자가 내세우는 메시지가 정확히 그 지점에 있다. 소비자는 카드를 쓰고, 가맹점은 대금을 받는다. 바뀌는 건 뒷단의 정산 레일이다. 비자는 미국 내 파트너들이 스테이블코인 USDC로 네트워크 정산을 시작했다고 공식 발표하며, 주말·휴일을 포함한 ‘7일 정산 가용성’을 강조했다. 결제의 겉모습이 아니라 기업의 현금흐름과 운영 비용이 바뀌는 변화다. 스트라이프의 행보는 “규제권 안으로 들어오는 스테이블코인”을 상징한다. 스트라이프가 인수한 Bridge가 2026년 2월 OCC로부터 내셔널 트러스트 뱅크 설립에 대한 조건부 승인을 받으며, 수탁·발행·준비금 관리 같은 기능이 제도권 트랙에서 논의되기 시작했다. 이 지점에서 스테이블코인은 ‘크립토 사용자’의 도구가 아니라, 기업의 결제·정산·자금관리 도구로 이동한다. 그러니 은행권이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레일을 뺏기는 싸움이기 때문이다.
디지털자산기본법 통한 “원화 스테이블코인” 기틀
최근 한국도 2단계 입법(디지털자산기본법)을 통해 ‘원화 스테이블코인’ 제도화에 나섰다. 2024년 7월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이 이용자 보호·불공정거래 규제의 뼈대를 먼저 세웠다면, 기본법은 발행·유통·업권 체계 자체를 정리하는 ‘시장 설계도’에 가깝다.
현재 논의의 축은 세 갈래다.
첫째, 발행 주체. 한국은행은 금융안정을 이유로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은행 주도 컨소시엄’ 중심으로 두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치권과 금융당국 일부에서는 “은행 중심 구조가 혁신을 막을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해 왔고, 핀테크·플랫폼 업계는 51% 은행 지분 요건이 사실상 진입장벽이 될 수 있다며 반발한다.
둘째, 감독 권한과 거버넌스. ‘누가 인가하고, 누가 상시감시하며, 위기 시 누가 스위치를 내리나’가 쟁점이다. 일부 보도에서는 한국은행이 발행 승인에 사실상 거부권을 원했다는 해석도 나왔고, 금융당국은 단일 창구 감독 체계를 선호하는 분위기다.
셋째, 요건 설계(자본금·준비자산·환매·파산격리). 논의 과정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자 자본 요건은 전자금융거래법상 전자화폐업자의 자본금 기준을 준용해 ‘최소 50억 원’ 수준으로 논의중이다. 입법 절차도 속도가 붙었다. 더불어민주당 디지털자산 TF는 2026년 1월 말 비공개 회의를 열고 설 연휴 전 발의 목표를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동시에 디지털자산업권을 기능별로 나눠 고위험 영역은 ‘인가’, 나머지는 ‘등록’으로 구분하는 큰 틀도 논의 테이블에 올라 있다. 여기에 거래소 대주주 지분 제한 같은 “시장 인프라 규율”까지 엮이며, 기본법은 스테이블코인만의 법이 아니라 디지털자산 산업 전체의 지배구조·리스크 관리 규칙을 한 번에 정리하는 법으로 확장되는 중이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안정성 논란
스테이블코인의 안정성 논의는 종종 “100% 준비금이면 끝”으로 단순화 된다. 하지만 시장이 두려워하는 건 준비금 비율이 아니라 환매가 몰릴 때의 속도와 경로다. 블록체인에서는 ‘클릭’이 곧 환매가 되고, 이 속도는 전통적 뱅크런보다 더 빠를 수 있다.
예금 이탈은 은행의 대출 여력을 깎는다. 반대로 코인런은 준비자산을 매각하게 만들고, 준비자산이 단기국채라면 안전자산 시장으로 충격이 옮겨갈 수 있다. BIS가 꼬리 위험으로 경고하는 ‘안전자산 파이어 세일’은 바로 이 전염 경로를 말한다. 그래서 규제의 핵심은 “비율”이 아니라 “구조”로 내려간다. 준비자산의 보관 방식(수탁·신탁), 파산격리(발행사 파산 시 보유자 우선), 상시 공시·감사, 환매 게이트 같은 안전장치가 레일을 지탱한다. 미국이 ‘수익(이자)’ 문제에 집착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수익이 붙는 순간 스테이블코인은 결제수단을 넘어 예금과 정면경쟁을 시작한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스테이블코인 성장은 거래소가 아니라 기업 실무(정산·급여·구독·B2B 결제)에서 커질 수 있다고 예상한다.
그리고 결제 너머에는 토큰화가 있다. 국채·예금·채권이 토큰화된 환경에서는 스테이블코인이 담보·마진·정산의 “현금 등가물”로 쓰인다. 이때 승부는 기술보다 규격이다. 어느 나라가 먼저 ‘쓸 수 있는 조건’을 명확히 하느냐가 시장을 가져간다. 미국은 ‘규격화로 키우는 전략’을 택했고, 그 과정에서 은행권-크립토 업계 갈등이 제도 문장에 그대로 새겨지고 있다.
[박지훈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86호 (2026년 3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