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 2기 톱픽스] 피터 틸 네트워크 | 실리콘밸리 내 보기 드문 보수주의자, 테슬라·팔란티어는 뿌리 같은 ‘한 몸’

    입력 : 2025.02.03 17:38:17

  •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말 당선된 이후 월가에서는 트럼프 2기 때 주가 상승폭을 키울 수혜주 찾기에 분주했다. 방산, 원전, 가상자산 등 다양한 테마가 거론됐지만, 트럼프 대통령 혹은 트럼프 일가와 얼마나 접점이 많은 기업인지의 여부가 실적을 넘어 주가 상승폭을 견인할 핵심 가치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많다. 트럼프 네트워크에 포함돼 있는 기업이 대통령의 후광을 등에 업을 것이라는 얘기다.

    트럼프의 최측근임을 자임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테슬라가 지난해 11월 5일 대선이 끝난 뒤 연말까지 60%의 주가 상승을 이뤄낸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 시기에 테슬라의 호실적 발표 등 주가 상승을 분석할 주요 이벤트는 없었다. 머스크 CEO가 트럼프 2기 행정부서 새로 만들어지는 정부 효율부의 수장이 된다는 것 뿐이었다.

    테슬라와 함께 가장 주목도가 높아진 또다른 기업은 팔란티어테크놀로지(팔란티어)다. 팔란티어를 창업한 피터 틸이 대표적인 친(親) 트럼프 기업인이라는 점에서다. 특히 틸과 밀접한 관계를 맺은 사람들 다수가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활약이 예고돼 있다. 공교롭게 틸과 머스크는 페이팔을 공동창업해 매각한 이후 저마다 테크 기업을 일구면서 자신들만의 네트워크를 키워왔다. 최근까지만 해도 ‘페이팔 마피아’로 불렸던 이들이 만들어온 ‘피터틸 네트워크’를 이해해야 하는 이유다.

    ‘페이팔 마피아’ 일원
    팔란티어는 페이팔 창업자인 피터 틸이 설립한 회사로 피터 틸은 트럼프 2기를 현실로 만든 테크 거물로 꼽힌다. <사진 연합뉴스>
    팔란티어는 페이팔 창업자인 피터 틸이 설립한 회사로 피터 틸은 트럼프 2기를 현실로 만든 테크 거물로 꼽힌다. <사진 연합뉴스>

    지난해 356%의 주가 상승률을 보이는 팔란티어는 올들어 다소 조정을 받고 있다. 하지만 올해 이 회사의 창업자가 피터틸이라는 것만으로도 모멘텀을 만들어낼 전망이다. 틸은 2016년 미국 대선 선거 기간 내내 반(反) 트럼프 성향이 강한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거의 유일하게 트럼프 지지를 공개적으로 선언한 인물이었다. 당시에 틸이 125만달러의 후원금을 트럼프에 약정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가 파트너로 있던 벤처투자회사 Y컴비네이터와 거래를 끊겠다고 선언한 사람들이 속출할 정도였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에는 당선인의 인수위원회에 합류하기도 했고, 트럼프 1기에서 기술 정책 고문도 맡았다.

    9년이 지난 현재 틸은 이번 대선 기간에서는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던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J.D 밴스 오하이오주 상원의원의 뒷자리에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올해 40세의 나이로 미국 부통령에 당선된 밴스는 트럼프가 2021년 피터틸로부터 소개받은 사람이다.

    밴스와 틸은 2011년 밴스가 예일대 로스쿨에서 미래를 고민하던 때 처음 만났다. 이미 성공한 벤처 투자자였던 틸의 강연에 밴스는 큰 감명을 받았고, 틸의 제자를 자처했다. 2015년 틸이 공동 설립한 밴처캐피털인 미스릴캐피털에서 일했고, 틸은 밴스가 2019년 고향인 오하이오주에서 나리아캐피털이란 벤처캐피털을 설립할 때도 자금을 댔다.

    틸은 2022년 중간 선거를 앞두고 밴스의 선거 캠페인에 1500만달러(약 208억원)를 기부하기도 했다. 데이비드 색스와 같은 실리콘밸리의 또다른 거물들의 후원도 주선해 밴스는 단일 상원 후보로는 역대 최대 금액의 모금을 하게 됐다.

    카멀라 해리스의 등장으로 수세에 몰렸던 도널드 트럼프가 역전이 가능했던 건 밴스를 부통령으로 지명해 미국 중부 보수 백인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백악관의 가상자산총책임자로 임명된 데이비드 색스가 바로 틸과 함께 밴스 상원의원에게 후원을 한 장본인이다. 색스는 이미 틸과 함께 페이팔의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일하면서 ‘페이팔 마피아’로 불리는 핵심 멤버다. 페이팔 마피아는 1990년대 후반 실리콘밸리에서 온라인 결제(전자지갑) 업체 페이팔을 공동 창업한 머스크와 함께 이 회사를 운영하며 거대 기업으로 키운 멤버들을 말한다. 머스크와 틸, 색스, 리드 호프먼 등이 있다.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의 인공지능(AI) 수석 정책 고문으로 지명된 스리람 크리슈난도 머스크가 2022년 트위터를 인수한 직후 한동안 경영을 도우는 등 피터 틸 네트워크에 포함돼 있다. 틸이 만든 벤처캐피탈 기업인 파운더스펀드의 공동 창업자 켄 하워리는 최근 덴마크 주재 미국 대사로 지명됐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틸이나 머스크의 인맥에 들어있느냐의 여부가 실제 정부 요직에 앉느냐와 직결돼보이는 것이 사실”이라며 “이들 네트워크와 직간접으로 연결돼 있을 실리콘밸리의 테크 기업들은 이미 트럼프에 적극적으로 줄서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주요 빅테크 기업의 트럼프 줄서기는 취임식부터 시작됐다. 취임식을 위한 기금 마련은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다. 2017년 트럼프가 첫 대통령 취임 당시 모금했던 1억700만달러 기부금을 넘어서 최종 모금액만 2억 달러(2949억원)가 넘었다. 특히 애플을 비롯해 알파벳,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닷컴, 메타플랫폼스, 오픈AI, 우버 등 실리콘밸리의 주요 기업들이 트럼프 취임위원회에 100만달러(약 14억7000만원)씩 기부했다.

    은밀한 빅데이터 기업 팔란티어

    피터 틸 네트워크의 핵심 기업으로 피터 틸이 만든 대표기업이 될 것이라는 관측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때문에 팔란티어에 대한 주목도가 커진다. 팔란티어는 틸이 현재 CEO인 알렉스 카프 등과 함께 2003년 창립한 빅테이터 전문 분석 조사업체다. 빅데이터를 분석하는 데 AI를 쓰기 때문에 AI 소프트웨어 업체로 분류하기도 한다.

    2002년 피터 틸은 페이팔을 이베이에 15억달러(1조7000억원) 가격에 매각했고, 그때 번 돈으로 창업한 회사가 팔란티어다. 틸은 2001년 9·11 테러를 경험한 뒤 어떻게 사전에 테러를 예측할 수 있을까 고민했고, 데이터로 테러를 예측해보겠다는 계획이 창업의 동기가 됐다. 미국 중앙정보국 CIA가 만든 벤처캐피털인 인큐텔(IQT)이 팔란티어에 자금을 댔다.

    현재 CIA를 비롯해 미국 연방수사국(FBI)와 국가안보국(NSA), 국방부, 영국 비밀정보국(SIS) 등이 주요 정부 고객이고, JP모건을 비롯해 크라이슬러, 에어버스 등이 팔란티어의 민간 고객사다. 현재 회사 인력 4000명의 대부분이 개발자 등 연구개발 인력이다. 전체 임직원 중 세일즈 인력은 3~4% 수준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팔란티어는 지난해 3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0% 증가했고, 순이익도 전년비 2배 이상 늘어났다. 카프 CEO는 “줄지 않는 끊임없는 AI 수요에 의해 분기 성장이 주도됐다”고 밝혔다. 월가에서는 늘 AI가 실제로 회사에 도움을 주느냐를 AI의 버블을 감지하는 지표로 삼아왔다는 점에서 팔란티어는 AI로 돈을 벌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시장에서는 팔란티어의 주가수익비율(PER)이 150배로 너무 높다는 지적과 함께 고점에 다다랐다는 평가가 먼저 나온다. 다만 2025년에도 팔란티어 랠리가 이어질 것이라는 강세론자들의 관측도 많다. 지난해 3분기에 정부부문의 계약으로 성장해 온 회사가 지난 1년간 민간 고객이 51%나 급증했다는 점이 괄목할 만하다. 지난해 마이크로소프트를 비롯해 아마존, 오라클, 메타 등 등 빅테크와 전략적 제휴를 체결한 것도 올해 매출에는 반영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팔란티어의 알렉스 카프 최고경영자가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젤렌스키 대통령과 만나 방위 협력과 전쟁으로 파괴된 우크라이나의 데이터 분석을 논의했다.
    팔란티어의 알렉스 카프 최고경영자가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젤렌스키 대통령과 만나 방위 협력과 전쟁으로 파괴된 우크라이나의 데이터 분석을 논의했다.

    팔란티어의 강세론자를 자처한 댄 아이브스 웨드부시증권 리서치 책임자는 “트럼프 행정부 2기가 본격 출범하면 업체가 정부 부처와 더 많은 계약을 체결할 전망”이라며 “국방부를 포함해 정부의 AI 도입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글로벌 자산운용사인 크레인 셰어즈의 수석 투자 전략가 데렉 얀은 최근 팔란티어의 조정 국면을 보고 “팔란티어는 AI 시대에 정부 기관과 기업에 최고의 운영체제를 제공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 엄청난 잠재력을 갖고 있다”며 “조만간 시가총액 1조달러를 달성할 기회가 있다”고 강조했다.

    ‘효율적 방산’을 기치로 내건 트럼프 정부에서 팔란티어의 빅데이터·AI 솔루션 ‘고담(Gotham)’으로 매출을 더 늘릴 것으로 관측도 있다. 팔란티어가 전 세계 주요 정부에 제공하는 고담 플랫폼은 차량이나 항공기 선박 등에 배치한 센서를 통해 얻은 각종 신호 정보 등 데이터들을 식별하고 정제해 일종의 패턴을 파악한다. 상용 위성과 열 감지기, 정찰 드론, SNS 등 확보 가능한 모든 채널을 통해 확보한 방대한 데이터를 정리한 뒤 AI로 학습해 각종 정보를 시각화한다.

    전쟁에 적용하면 적군의 현재 위치와 잠복 위치, 정밀 타격이 필요한 장소 정보 등을 지도로 한눈에 볼 수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우크라이나가 팔란티어의 플랫폼을 활용하고 있다.

    기업용 플랫폼인 ‘파운드리’도 있다. 재무나 인사, 물류, 재고 등 여러 부서의 데이터를 하나의 플랫폼 위에서 통합 분석해내면서 사내 재정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게 하거나 내부 비리를 감시하는 것이다. HD현대중공업그룹이 인수한 두산인프라코어도 팔란티어 플랫폼을 활용했다. 해외 건설장비에 부착된 센서로 장비 가동시간을 측정하고 분석해 납품 지연을 최소화하는 성과를 낸다.

    [홍성용 기자]

매일경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