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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2기] 투자 생존 전략 | 공격형 ‘AI·에너지·조선주’ 수비형 금·채권 분산투자 유망
입력 : 2025.02.03 17: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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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2기 행정부가 공식 출범하면서 글로벌 경제와 투자 시장에 또 한 번의 거센 파고가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때부터 세계 모든 수입품에 일괄적으로 일정 수준의 관세를 매기겠다는 ‘보편관세’ 아이디어를 공공연히 언급해왔다. 2기 행정부에서도 이 구상을 핵심 카드로 거론하고 있다. 최근 시진핑 주석과 통화를 통해 잠시 유화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지만 무역 경쟁 상대국인 중국을 겨냥한 관세 부과 가능성은 언제든 살아있는 상황이다.
이 정책이 현실화되면, 중국에 대한 타격이 가장 크겠지만 한국산 수출품도 타격을 피할 순 없다. 미국이 한국을 동맹국으로 분류하더라도, 제도적으로 ‘모든 수입품’을 관세 부과 대상에 포함하는 방향이 공식화되면 예외 조항을 얼마나 부여받을 수 있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다만 과거 트럼프 1기 때도 관세를 전면적으로 한 번에 20%씩 매기기보다는 2~5%씩 단계적으로 인상하는 흐름을 보였기에, 이번에도 동일 패턴이 예상된다는 견해가 있다.
통상업계 한 전문가는 “단번에 관세 폭탄을 투하하기보다, 분기별·월별로 점진적 인상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해도 궁극적인 부담이 결코 작아지는 것은 아니므로, 기업과 투자자는 수출 전략을 빠르게 재정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IRA·칩스법 변화: 자동차·배터리·반도체 ‘초긴장’트럼프 행정부 2기가 예고한 또 하나의 변수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수정이다. IRA를 통해 전기차 구매 시 7500달러 세액공제를 적용(30D 조항)하는 제도가 지금까지 미국 전기차 시장 성장을 이끌었다. 그러나 공화당이 상·하원까지 장악한 상황에서, 재정 부담이 큰 IRA를 전면 재검토할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전기차 구매 보조금이 축소 혹은 폐지 수순을 밟게 되면, 현대차·기아·배터리 3사 등 우리 업체들이 조지아·테네시·인디애나·오하이오주에서 신·증설 중인 프로젝트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
물론 전면 폐지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도 있다. 미국 남부·중서부에 주로 배치된 전기차·배터리 생산시설이 공화당 우세 지역의 일자리 창출에 크게 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치 환경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불안감이 업체들을 짓누른다. 금융투자업계에서도 “IRA 관련 정책이 수시로 변동될 수 있다는 점이 투자심리에 부정적으로 작용한다”고 분석한다.
반도체 지원책 축소 우려 투자전략은반도체 분야는 ‘칩스법(반도체지원법)’ 보조금이 줄어드는 시나리오가 거론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 캠페인 과정에서 칩스법의 재정 부담을 여러 차례 지적해왔고, “고관세로 반도체 기업을 미국에 끌어들이겠다”는 의사를 내비친 바 있어, 현재 텍사스주에서 대규모 공장을 짓고 있는 삼성전자, 인디애나주의 SK하이닉스도 정책 변수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여기에 대중 반도체 규제가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 내 생산공장을 운영하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로서는 중국 제조분에 대한 관세 부담이 커지면 수익성 하락이 불가피하다. 결국 반도체 업체들은 미주 생산라인 증설 외에도 제3국 진출로 중국 리스크를 분산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中 둔화 vs 韓 반사이익 복합적 파장보편관세와 칩스법 재조정 등이 시행되면, 중국은 대미 수출과 외국인직접투자(FDI) 유입에서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지난 1기 때 대중 제재가 시작된 뒤로 중국산 전자·IT 제품의 미국 시장 점유율이 줄고, FDI 성장률도 둔화되는 흐름이 감지됐다. 2기에서 더욱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된다면 중국 GDP 성장 엔진이 더 뚜렷하게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반면 중국과 직접 경쟁하는 한국 기업에게는 반사이익이 생길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이 장악했던 저가·중간재 시장을 한국이 일정 부분 대체할 여지가 있다”라는 시각이 그것이다. 다만 한국이 아직도 중국을 주요 생산·소비 거점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 경제가 위축되면 한국 역시 파급효과를 피하기 어렵다. 결국 “대중 시장 둔화로 일어날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 동시에 미국 시장에서 반사 이익을 챙길 수 있는 ‘투 트랙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목소리가 커진다.
에너지·조선: 화석연료 확대와 군함 협력 기대감트럼프 대통령은 과거부터 석탄, 석유,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 산업을 지원해왔다. 2기에서도 수압파쇄(Fracking)와 시추 허용 지역을 확대한다면 천연가스 생산량이 늘어날 공산이 크다. 이에 따라 LNG(액화천연가스) 운반선 수요가 늘어나면서 한국 조선업계가 혜택을 볼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미 조선 3사는 세계 최강의 LNG운반선 건조기술을 갖춰, 관련 발주가 몰릴 경우 대규모 수주가 가능할 전망이다.
해군 함정 사업 협력도 기대되는 부분이다. 미 해군은 중국 해군의 부상에 대응해 군함 건조·정비(MRO) 능력을 확대해야 한다는 요구를 받고 있는데, 미국 내 조선소만으로는 감당이 쉽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트럼프 2기는 동맹국과의 협력을 언급하면서 한국 조선사를 활용하겠다는 가능성을 열어둔 상태다. 군용 선박은 미국법상 해외 건조가 제한돼 있다는 장벽이 있지만, 행정명령 등으로 예외 조항을 둘 수 있다는 시나리오가 나온다. 이를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투자자들은 조선·방산주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는 모습이다.
투자전략 1: 채권·금, 안전판 역할 주목트럼프 2기에서 투자자들이 늘 염두에 두는 것은 금리와 물가 흐름이다. 1기 때는 저금리·저물가 환경이 뒷받침되면서 증시가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기도 했지만, 현재는 전 세계가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 부담을 동시에 안고 있다. “트럼프 정부가 보편관세를 밀어붙이면, 수입 물가가 뛰면서 물가 압력이 다시 높아질 수 있다”는 경고도 무시하기 어렵다. 다른 한편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경기 부양과 연준(Fed) 압박을 통해 금리인하를 유도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실제로 1기 시절 트럼프는 연준의 금리 정책에 대해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시하며, 금리인하를 강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신호가 다시 이어진다면, 장기적으로는 미국 채권금리가 떨어지고 채권 가치가 오를 수 있다는 시나리오가 유효하다. 따라서 금융 전문가들은 위험자산과 안전자산을 병행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SC은행은 보고서를 통해 “관세 리스크가 터지면 주식시장이 출렁이겠지만, 한편으로는 트럼프식 감세·규제 완화가 나오면 증시가 반등할 수도 있다”라며 “변동성을 헤지(hedge)해줄 자산으로 금이나 채권 보유가 도움이 될 것”이라는 조언을 내놓기도 했다.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은 선진국 하이일드 채권에 주목하라는 시각도 내놓는다. 금은 대체로 물가가 치솟을 때 인플레이션 방어 수단으로, 또는 지정학적 리스크가 폭발할 때 투자자들의 안전 도피처로 활약해왔기 때문이다.
투자전략 2: 증시 전략
분산투자·정책 모니터링·K-차별화과거 트럼프 1기 시절, 행정명령이 한꺼번에 쏟아지면서 업종·테마가 급등락을 반복한 사례가 많았다. 이번에도 취임 초반 100일 동안 빗발칠 행정명령이 증시 변동성을 흔들 가능성이 크다. 이에 특정 업종에 ‘몰빵’하기보다, 여러 지역과 자산군에 나눠서 투자하라는 분산투자 원칙이 다시금 강조된다. 예컨대 미국 에너지·전력망·전통 산업주 일부, 인도 등 신흥국 성장주 일부, 그리고 채권·금 등 안전자산에 분산 투자하는 방식이다.
트럼프는 1기 때 세금 감면과 규제 완화를 통해 금융·IT·헬스케어 섹터를 강하게 밀어줬다. 이번에도 제조업 리쇼어링과 에너지 확대 등 ‘미국 우선주의’ 기조가 잡히면, 석유·가스·전력 인프라 기업이 직접 혜택을 누릴 가능성이 높다.
관련 기업에 투자할 수 있는 상장지수펀드(ETF)나 테마 펀드를 활용하는 것도 전략이 될 수 있다. 한편 보편관세는 기본적으로 재화(제품)에 초점을 맞추기에, 상대적으로 서비스나 디지털 콘텐츠 영역은 타격이 덜할 수 있다. K-엔터테인먼트, K-푸드, K-뷰티 등은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독특한 브랜드 파워를 인정받고 있고, 일부 제품의 경우 가격 상승분을 팬덤이나 소비자에게 전가하기가 용이하다. 이러한 이유로 K-컬처가 전 세계로 확장되는 구간에 장기적으로 투자 모멘텀이 유효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신승진 삼성증권 연구원은 “한국 기업만이 갖고 있는 독창적인 비즈니스에 투자해야 한다”라며 “삼양식품은 제품 경쟁력을 바탕으로 아시아를 넘어 미국·유럽 등 선진 시장으로의 수출 확대를 본격화하고 있다고 한국의 에스테틱 경쟁력도 독보적인데 한국적인 것이 곧 글로벌 No.1이 될 수 있는 기업을 주목해야 한다”라고 진단했다.
덧붙여 그는 “세계 1위 수준의 성형·미용기술을 보유한 병원이나 관련 업계 등은 한·미 간 무역분쟁과 무관하게 여전히 성장 가능성이 크다”라고 분석했다.
AI·반도체 핵심기술, 장기 투자 전략 유효반도체·AI·자율주행 등은 미·중 갈등이 오히려 투자기회를 만들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트럼프 2기가 중국을 더욱 봉쇄하려 들수록, 대안으로 미국이나 다른 우호국에서 반도체 생산이 확대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기술 패권이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시대이므로, 혁신 기업의 밸류에이션(가치)은 장기적으로 계속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는 게 시장 중론이다.
김대준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무역 시장에서 중국과 극한 경쟁을 이어가고 있는 한국 기업에 긍정적인 재료가 될 여지가 크다”라며 “미국 정부가 대중 제재 강도를 강화한다면 그 빈 자리를 한국 기업이 일부 메울 수 있기 때문”이라고 우리 경제의 반사이익이 가능성을 예상했다.
그러면서 “고대역폭메모리(HBM) 외에 미국 정책 기대를 호재로 인식하는 조선, 전력, 원전, 바이오 종목의 상승 기여도가 높았다”라며 “미국 신정부 수립과 함께 대중 제재가 예상되는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바이오산업을 계속해서 지켜볼 필요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결국 트럼프 2기 시대가 열리면서 단기적으로는 보편관세와 무역 분쟁, IRA 수정, 칩스법 재정비 등의 이슈가 한국 경제에 부담 요인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강경한 보호무역주의를 펼칠수록 기업들의 대미 수출 채널이 흔들리고, 대중 시장에서도 추가 제재에 따른 변수가 커진다. 그러나 1기 사례를 돌이켜보면, 정책 불확실성이 극에 달했을 때도 예상 외로 미국 증시가 높은 상승률을 보였고, 국내 증시 또한 산업별 옥석가리기에 성공한 투자자들은 수익 기회를 얻은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시장 분석가들은 불확실성이 높을수록 ‘기초 체력이 튼튼하고, 정책 수혜를 명확히 받을 기업’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투자전략 3: 공격과 방어금리와 물가 흐름이 여전히 안갯속인 점을 감안하면, 채권이나 금 같은 안전자산을 적절한 비중으로 편입해 변동성을 방어하면서도, 방산·조선·에너지·전력망 등 트럼프 행정부 수혜주와 한국 고유 경쟁력을 가진 기업에 투자해 성장성을 노리는 ‘투 트랙 전략’이 유효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1기 시절 트럼프 대통령이 여러 차례 보인 ‘돌발 발언과 행동’은 2기에서도 재현될 가능성이 크다. 출범 초반부터 하루가 멀다 하고 서명할 각종 행정명령은 전 세계 증시를 출렁이게 만들 것이다. 하지만 이런 단기 파고를 헤쳐나갈 땐 산업 트렌드와 정책 흐름을 함께 고려한 종목 선정, 그리고 글로벌 분산투자 원칙이 생존율을 높여줄 것으로 보인다.
[박지훈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73호 (2024년 2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