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탄핵 후폭풍] ③ ‘엎친 데 덮친’ 기업들 | 리밸런싱·현금 확보 사활 알짜기업들 줄줄이 매물로

    입력 : 2024.12.24 15:56:04

  • 롯데월드타워
    롯데월드타워
    사진설명

    내수 부진, 환율 상승, 국제 무역 불확실성 등으로 안그래도 흔들리던 한국 기업들은 혼란에 빠졌다, 가전, 통신기기, 컴퓨터, 화장품, 승용차 등의 상품 소비는 감소하고 차입금은 더욱 더 늘어난다. 재계에서 내로라하는 대기업집단들도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당장의 돈을 끌어올 곳이 없으니 알짜 사업을 매각하거나 우량 부동산을 유동화하는 ‘고육지책’을 선택한다.

    재계 6위 롯데의 유동성 위기

    2024년 하반기 롯데그룹의 유동성 위기가 산업계와 자본시장에 큰 혼란을 줬다. 첫 시작은 ‘롯데그룹 공중분해 위기’란 제목의 지라시(정보지)였다. 2024년 12월 롯데그룹의 모라토리엄(지급유예) 선언 예정, 롯데건설 미분양으로 경려사간 연대보증 치명타, 전체 직원 50% 감원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롯데그룹은 즉각 유동성 위기 루머는 사실무근이라고 밝혔지만 이후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롯데그룹은 렌터가 시장 점유율 1위 업체인 롯데렌탈을 홍콩계 사모펀드인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어피너티)에 매각했다. 거래 대상은 호텔롯데와 부산롯데 호텔이 보유한 롯데렌탈 지분 56.2%였다. 롯데렌탈의 기업가치가 2조8000억원임을 감안하면 롯데그룹은 이번 매각으로 약 1조6000억원의 유동성을 확보하게 됐다.

    롯데렌탈은 영업이익률 10%를 웃도는 등 롯데그룹 내에서의 캐시카우 회사 중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차량을 빌리고 이를 다시 소비자들에게 빌려주는 사업을 하고 있기에 금융비용과 부채비율이 높은 편이다. 그렇다보니 그룹 입장에선 롯데렌탈을 팔면 매각금액을 확보할 수 있는 동시에 부채도 줄어드는 효과를 얻게 된다.

    롯데렌탈뿐 아니라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 자산 매각도 진행하고 있다. 롯데그룹은 부산 벡스코 컨벤션센터 인근의 롯데백화점 센텀시티점을 매각하기로 결정, 최근 공개입찰을 진행했다. 2001년 해당 용지를 사들이면서 화려하게 출발했지만 이후 인근의 신세계백화점과의 경쟁에서 밀리며 롯데쇼핑의 유휴자산이 됐다.

    롯데쇼핑은 매각 후 재임대보다 아예 폐점 후 부동산 개발에 초점을 두고 매각을 진행하고 있다. 부산 지역 시행사들과 국내 자산운용사들이 잠재 원매자로 꼽히며 2000억~3000억원 선에선 거래될 것으로 시장은 예상한다.

    이외에도 롯데그룹은 롯데케미칼 2조원 규모 회사채에서 발생한 기한이익상실(EOD)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그룹의 상징인 롯데월드타워를 담보로 제공한다고 밝혔다. 롯데월드타워의 현재 가치는 6조원을 웃도는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그룹 측은 “롯데월드타워 담보 제공을 통해 시장 우려를 불식시키고 롯데케미칼 유동성에 문제가 없다는 메시지를 시장에 전할 계획”이라며 “롯데케미칼 회사채 이슈와 관련해 그룹 차원의 강력한 시장 안정화 의지를 담은 실질적 대책”이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선 롯데그룹의 자산 매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본다. 실제로 롯데그룹은 2024년 11월 열린 기업설명회에서 호텔롯데의 유동성 우려 해소를 위해 L7과 롯데시티호텔 2~3곳 매각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L7 명동과 홍대, 울산시티호텔이 유력 매물로 거론되고 있다. 업황 회복이 느린 면세 사업의 경우도 해외 부실 면세점 철수를 통한 점포 효율화를 추진할 예정이다.

    SK·CJ·효성 고강도 구조조정
    SK그룹 서린사옥
    SK그룹 서린사옥

    롯데그룹 외 다른 대기업집단들도 현금 확보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SK그룹은 2024년부터 고강도 사업 포트폴리오 리벨런싱(구조조정)을 적극 추진했다.

    SK그룹은 반도체 특수가스 분야 세계 1위 기업인 SK스페셜티의 지분 85%를 국내 사모펀드 한앤컴퍼니에 매각한다. 지분 가치는 약 2조7000억원 규모다.

    SK스페셜티는 반도체 제조 과정 중 웨이퍼에 남아 있는 잔여물을 세척하는 데 사용되는 삼불화질소(NF3)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는 업체다. 세계시장 점유율 40%를 차지하며 주요 고객사는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다.

    SK스페셜티의 2024년 상반기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3553억원, 544억원이다. 이번 매각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면 SK그룹의 지주사인 SK㈜의 부채 규모는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같은 기간 SK㈜의 별도 재무제표 기준 부채 규모는 12조3998억원으로 SK스페셜티 매각 성공 시 부채의 약 3분의 1을 한꺼번에 줄일 수 있게 된다. SK이노베이션과 최근 합병법인을 설립한 SK E&S도 자회사 코원에너지서비스 본사 사옥으로 쓰이는 대치동 부지 매각을 추진했다.

    서울시 강남구 대치동 27-1에 위치한 이 자산은 지하철 3호선 학여울역 인근에 위치한다. 토지면적 4만9109㎡를 감안하면 4000억~5000억원의 가치를 지닌다. SK E&S가 신규 사업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이 사옥을 파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SK그룹의 리밸런싱은 그룹 내 미래 먹거리 사업으로 꼽히는 SK온과 SK에코플렌트를 살리기 위함으로 해석된다. SK온에 힘을 주기 위해 SK이노베이션과 SK E&S를 합병했고 또다른 알짜 회사인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과 SK엔텀을 붙였다. SK㈜의 손자회사인 에센코어와 자회사 SK머티리얼즈에어플러스를 SK에코플랜트의 자회사로 편입시키는 등 그룹 내 알짜회사들을 SK온과 SK에코플랜트 주위에 배치했다.

    효성화학 NF3 공장
    효성화학 NF3 공장

    효성화학은 특스가스사업부를 효성티엔씨에 팔기로 했다. 석유화학 업황 부진으로 11개 분기 연속 영업손실을 기록 중인 효성화학은 신사업 진출, 차입금 상환 등을 위해 현금이 필요한 상황으로 캐시카우인 특수가스사업부를 매각하기로 한 것이다.

    당초 국내 사모펀드 연합인 IMM·스틱 인베스트먼트에 매각하려고 했지만 매각가에 대한 인식 차이로 결렬됐다. 섬유·무역업을 주력으로 하는 효성티앤씨가 중국에서 특수가스 무역을 진행한다는 점에서 일정 부분 효성화학 특수가스사업부와 시너지를 낼 것으로 예상돼 이번 인수가 추진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동욱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효성화학의 NF3 생산능력이 8000톤임을 고려하면 인수 시 연결 NF3 생산능력은 1만1500톤으로 세계 2위 생산능력을 확보하게 된다”며 “효성티앤씨로 편입될 경우 기존 염소가스, D2뿐 아니라 관련 특수가스 사업의 확대도 가능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CJ그룹도 CJ제일제당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바이오사업부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이미 복수의 글로벌 사모펀드와 물밑에서 접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CJ제일제당 바이오사업부는 미생물을 원료로 식품 조미 소재와 사료용 아미노산 등을 생산하는 그린바이오 사업을 주력으로 한다. 사료용 아미노산 부문에선 전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만큼 CJ제일제당 내에선 ‘캐시카우’로 통하는 곳이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를 전후로 실적이 가파르게 개선됐는데 경쟁사가 물류난으로 배송에 어려움을 겪는 사이 CJ제일제당이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점유율을 빠르게 확대했기 때문이다. 2020년 2조9817억원이었던 바이오사업부 매출액은 2021년 3조7312억원, 2022년 4조8540억원으로 증가했다.

    이번 매각은 CJ제일제당이 신사업에 투자하기 위한 실탄 마련을 위해 추진되는 것으로 투자은행 업계 관계자들은 해석한다. 2024년 3분기 CJ제일제당 바이오사업부의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이 4875억원으로 집계되는 만큼 전체 기업가치는 약 5조~6조원대로 평가된다.

    아울러 올초 워크아웃(기업구조재선작업) 여파로 휘청거렸던 태영그룹은 국내 종합폐기물 처리업체 1위인 에코비트를 국내 사모펀드 운용사인 IMM프라이빗에쿼티·IMM인베스트먼트 컨소시엄에 매각하기로 했다. GS건설도 스페인 수처리 자회사인 GS이니마와 GS엘리베이터의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인수합병 바람 거셀듯

    이미 2025년 하반기 인수합병(M&A) 시장에선 거래 금액이 조(兆) 단위에 달하는 이른바 ‘빅딜’ 거래가 성사됐다. 중국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의 일부 사업부 매각이 주를 이뤘다. 중국 기업들이 후발주자로 한국 기업들의 기술력을 따라잡았고 제품의 저가 공세가 이어지자 국내 기업들은 유동성 확보와 신사업 투자를 위해 관련 사업부를 매각한 것이다.

    LG디스플레이는 2024년 9월 대형 LCD 패널과 모듈 공장이 포함된 중국 광저우 법인 지분 100%를 중국 TCL 그룹의 자회사 CSOT에 매각계약을 체결했다. 매각대금은 약 2조300억원이다. LG디스플레이의 중국 LCD 생산 공장은 LG디스플레이가 80%, 광저우개발구가 20%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이번 매각을 통해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중심으로 사업 구조를 재편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매각 자금으로 재무 안정성을 강화하고 안정적인 수익 기반을 구축할 수 있게 됐다.

    삼성그룹의 이차전지 업체인 삼성SDI도 중국 기업 우시헝신광전재료유한공사(우시헝신)에 편광필름사업부를 매각했다. 매각 금액은 약 1조1200억원이다.

    편광필름은 주로 LCD 소재로 사용되는데 그간 중국의 저가공세에 수익성이 하락했다. 삼성SDI는 매각을 통해 마련한 자금을 전고체 배터리를 만들기 위한 차세대 소재 개발과 대규모 설비투자에 투입할 계획이다. 삼성SDI 입장에선 미래 먹거리 산업 구조 재편을 위한 ‘선택과 집중’을 한 셈이다.

    새해에도 국내 경기가 부진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향후 기업들의 유동성 확보를 위한 알짜 사업부, 부동산 유휴 자산 매각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25년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로 제시했다. 기존 2.2%로 제시했지만 대내외적 불확실성 등의 이유로 0.2%포인트(p) 더 내렸다.

    글로벌 투자은행(IB)인 골드만삭스도 2025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1.8%로 전망했다. 2023년에 이어 2년 만에 또다시 1%대 성장을 기록할 것이라 예상했다. 국내 산업 생태계가 자동차, 반도체 등의 일부 품목을 제외하곤 값싼 중국산 제품과의 경쟁에서 밀릴 것이란 이유에서다.

    권구훈 골드만삭스 아시아 담당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수출 약화는 이미 2024년 하반기부터 시작됐고 이에 따라 투자도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며 “미국 정부가 대중국 관세를 올 2분기까지 지금보다 20% 더 올릴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한국 수출에도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홍순빈 기자]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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