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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는 왜 슈퍼볼 광고를 중단했을까
입력 : 2014.03.10 14:3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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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볼 광고를 지배했던 한국, 발 빼나 슈퍼볼 광고 관련하여 작년만큼 한국에서 관심이 많이 쏠린 적은 없었다. 일단 한국 기업들의 광고 물량이 많았다. 2008년부터 슈퍼볼에 광고를 집행하기 시작한 현대차의 3편을 필두로, 기아차가 2편, 삼성전자는 르브론 제임스를 포함한 스타들을 대거 출연시켰고, 한국 기업의 광고는 아니지만 월드스타가 된 싸이가 피스타치오 광고의 모델로 등장하면서 ‘한국이 슈퍼볼 광고를 지배했다’고 미국 언론이 헤드라인을 쓸 정도였다. 그런데 올해는 현대차가 2편, 기아차가 1편으로 광고 개수를 줄였고, 삼성전자는 아예 슈퍼볼 광고를 중단했다. 왜 그랬을까?
삼성전자가 그만둔 이유부터 알아보자. 언론에 보도된 삼성전자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올해 슈퍼볼 광고는 현지 법인에서 여러 제반사항 요건을 고려한 결과, 실시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래서 비용 절감을 위하여 삼성전자가 이번 슈퍼볼에 광고를 집행하지 않은 것으로 언론은 분석했다. 한편으로는 위에서 본 것처럼 소치 올림픽과 브라질 월드컵 등 다른 스포츠 빅 이벤트를 위하여 비용을 분산하다보니 그렇게 된 것으로 풀이하기도 했다.
작년 삼성이 슈퍼볼 광고 집행을 위하여 방송국에 지불한 광고비가 약 1500만달러라고 한다. 미국에서만 4억달러 이상을 스마트폰 광고에 투자하는 삼성전자로서는 그렇게 큰 금액은 아니다. 비용 측면보다는 시기가 문제 되었을 것이다.
슈퍼볼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소치 동계올림픽이 개막되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삼성전자는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부터 최고 등급의 TOP 올림픽스폰서로 참가했다. 삼성전자의 가장 큰 마케팅 무대로 삼성전자 브랜드 가치를 올리는 데 올림픽은 혁혁한 공헌을 했다. 올림픽 역시 삼성전자를 필두로 한 스폰서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금전적인 것뿐 아니라, 대회 운영을 위한 장비, 자칫 고루할 수 있는 올림픽의 이미지를 젊고 첨단적인 방향으로 유지하는 데 다른 스폰서보다 무선통신 분야의 스폰서로 삼성전자의 역할이 컸다. 다섯 번의 동계올림픽과 네 번의 하계올림픽, 그리고 그룹 총수의 IOC위원으로서의 활동 등이 겹쳐 삼성은 올림픽과 강력한 연대를 형성했다. 마케팅 활동 중에서도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은 올림픽이 주 무대가 되었고, 올림픽과 연관된 테마로 전개했다.
슈퍼볼은 한판으로 승부가 결정되는 한나절 행사인 데 반해서 올림픽은 보름 이상 동안 진행된다. 슈퍼볼에서는 같은 광고가 반복되어 방영되지 않는다. 슈퍼볼에 방영된 광고물이 이후 한 달 정도 계속 집행되는 경우가 많으나 슈퍼볼 때 쏟아지는 관심과 주의에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어찌 보면 슈퍼볼 때 이미 광고에 대한 평가가 내려지고, 이후는 그 상태가 지속될 뿐이다. 이에 비하여 올림픽 광고는 보통 올림픽 기간 동안 하루에도 수차례나 방영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니까 올림픽 광고는 반복하여 노출이 되었을 때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인지 감안하고 제작하여야 한다.
잘 알려진 것처럼 슈퍼볼은 미국 프로 미식축구 결승전이다. 프로 선수들이 경기를 벌인다. 종목 자체가 미국의 프로 스포츠 종목 중 경기당 입장권 요금이나 중계권료 등에서 압도적으로 높은 가장 상업화된 종목이다. 올림픽은 그동안 빛이 많이 바랬고 실제로 많은 프로 선수들이 참가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평화나 우정과 같은 인류의 보편적인 이상을 추구한다.
그래서 올림픽 광고들에서는 노골적인 판매지향형 광고는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고, 기업들도 피하는 편이다. 이에 반해 슈퍼볼의 광고들은 매우 자극적이고 편당 집행액이 높은 만큼 판매와 직결되는 직접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경우가 꽤 된다. 삼성전자도 2012년과 2013년에 연달아서 일종의 비교광고로 경쟁자인 애플에게 직선공격을 퍼부었다.
상업성과 공익성의 사이에서 같은 광고로 올림픽과 슈퍼볼의 균형을 잡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두 대형 이벤트의 시기가 붙어 있고, 같은 광고를 집행하기 힘든 특성의 차이도 있어서 삼성전자는 올해의 슈퍼볼 광고 집행을 포기한 것 같다. 그럼 내년 슈퍼볼에는 다시 광고주로 돌아올까?
가 공통으로 20세기 최고의 광고로 애플의 ‘1984’를 선정했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를 모티브로 한 이 광고는 IBM을 소설 속의 ‘Big Brother’로, 소비자들은 그 굴레 속에 아무 생각 없는 모르모트와 같은 존재로 묘사했다. 그런 상태를 애플의 매킨토시가 깨는 설정으로 유명한 영화감독인 리들리 스콧이 연출을 맡아서 영화와 같은 큰 스케일을 보여주며,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펩시의 CEO였다가 애플에 합류했고 이후 궁정쿠데타처럼 스티브 잡스를 추출하기도 했던 존 스컬리가 ‘그렇게 직접적으로 IBM을 공격할 줄 알았더라면 광고를 내보내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 광고는 1984년 슈퍼볼 때 딱 한 번만 집행이 되었다. 물론 광고물 자체의 내용이나 기법이 충격적이기도 했지만, 슈퍼볼이란 최고의 무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후 애플은 두 번 더 슈퍼볼에 광고를 집행했다. ‘1984’ 바로 다음 해인 1985년에 ‘레밍’이라고 불리는 속편 형식의 광고를 방영한 것이다. 들쥐를 뜻하는 레밍은 한국 현대사의 한 구석을 차지하며 회자되기도 했다.격변의 1980년에 당시 한국 주둔 미군사령관이 한국인은 레밍과 같아서 새로운 독재자(Strong man)를 따를 것이라고 했다.
애플의 1985년 광고에서는 일반 소비자들이 무조건 IBM의 기기를 쓰는 행태를 레밍으로 표현했다. 너무 직접적인 비유였고, 전년의 것과 다를 바가 없어서 실망스런 반응이 쏟아졌다. 이후 한참 슈퍼볼 무대를 떠났던 애플은 스티브 잡스가 돌아온 직후인 1999년에 ‘HAL’이라고 일컬어지는 묵시록과 같은 분위기의 광고로 돌아왔다. IBM과 MS가 초래하고 대응하지 못하는 Y2K의 혼란을 매킨토시가 바로 잡는다는 내용이었다. 소설과 영화로 모두 인기를 끈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에 나오는 악령과 같은 컴퓨터 ‘HAL 9000’을 등장시키며, 소설 <1984>가 준 것과 같은 효과를 기대했지만, 밋밋한 화면과 내레이션에, 일부에 국한된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인지도로 말미암아 의미있는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이후로 애플은 슈퍼볼을 외면하고 있다. 단순히 1984의 후속작들이 차가운 반응을 받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크리에이티브의 질을 떠나서 1984가 성공했던 요인과 어떤 기업들이 슈퍼볼 광고에 참여하며 효과를 거두었는지 분석하면 그 해답이 나온다. 나아가 슈퍼볼과 같은 대형 이벤트에서는 어떤 목적으로 들어가야 하는지도 알 수 있다. GM·펩시가 슈퍼볼광고 다시 시작한 이유 디지털 시장이 열리면서 삼성은 거기에 거의 모든 것을 걸었고, 휴대폰을 위시하여 디지털의 핵심 부분에서 선발업체들을 따라잡았고, 덩달아서 모든 제품들의 품질 수준이 어느 업체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거나 리드하는 지위에 올랐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소비자들은 그렇게 봐주지를 않고, 예전의 싸구려 제품을 팔던 삼성의 이미지를 고스란히 가지고 있었다.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의 담당자로서 마음이 급했다. 뭔가 획기적인 조치가, 충격요법이 필요했다…. 10년 전만 해도 대다수 미국의 소비자들은 삼성 제품이 싸기는 하지만, 샀다가 ‘낭패를 볼 것이다’라는 불안한 심정을 깔고 있었다. 삼성이 거기서 한 단계 나아가 그런 불안감을 없애고, 소니나 다른 기업들의 제품에 전혀 손색이 없다고 생각하게 만들기 시작한 때가 내가 처음 슈퍼볼을 꿈꾸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할 시점이 되었다. 소비자들이 적극적으로 찾는 브랜드로 삼성을 만들어야 할 숙제가 주어진 것이다. 그 또한 단계 뛰어오르기를 위한 충격요법으로 아직도 슈퍼볼만한 것이 없다. 필자가 2006년 슈퍼볼 직후에 2000년 초를 회상하며 쓴 글의 일부이다. 위에서 얘기한대로 슈퍼볼은 품질이 뛰어나지만 인지도가 떨어진다든지, 고정된 과거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브랜드 파워 측면에서 언더독(underdog)인 기업들이 일거에 국면을 전환시키는 용도로 쓰기에 적절하다. 애플의 1984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2008년 현대차가 처음 슈퍼볼 광고를 시작할 때도 비슷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럼 왜 현대차는 계속 슈퍼볼에 광고를 하고 있는가? 슈퍼볼에 광고를 하는 두 번째 그룹의 기업들이 있다.
올해 슈퍼볼 광고에 가장 많은 기업들이 참여한 업종이 있다. 자동차 기업들이다. 절대적인 강자없이 다수의 브랜드들이 치열한 경합을 벌이는 경우에 슈퍼볼에 광고를 하지 않으면 마치 마라톤에서 함께 달리는 선두그룹에서 뒤처지는 느낌을 줄 수 있다. 소비자들에게 그런 인상을 주면 고려대상군에서 제외될 수 있다. 그리고 갑자기 중단하면 뭔가 문제가 있다는 우려도 종업원들을 포함하여 기업 내외에 줄 수 있다. GM이나 펩시가 슈퍼볼 광고를 중단했다가 다시 돌아온 중요한 이유이다. 블록버스터 영화와 통신사들의 광고도 그런 부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경쟁사를 압도하는 물량공세를 하는 기업들도 있다. 버드와이저와 버드라이트의 앤하우저부쉬와 코카콜라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은 마라톤으로 치면 선두그룹보다도 몇 발짝 앞서 있는 그 거리를 유지하거나 조금이라도 더 넓히려는 의도로 슈퍼볼 광고를 한다. 유도로 치면 굳히기용으로 광고에 투자를 하는 기업들이 세 번째 그룹이다.
광고를 포함한 이벤트 스폰서십 여부를 결정하는 출발점은 바로 자신의 위치와 목적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그리고 앞에서 본 것처럼 시기, 지역, 이벤트 성격과 자신의 브랜드와의 적합성을 따져야 한다. 이후에 비용의 적정성을 검토하는 수순이다. 아직 6월의 월드컵과 9월의 아시안게임이 남아 있다. 무엇을 할 것인가?
[박재항 자동차산업연구소 미래연구실장]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2호(2014년 0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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