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세청·감사원에 공정위까지 롯데그룹 손보기 정조준…그 끝은?

    입력 : 2013.08.09 17: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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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 갇혀 있는 기분이다.” 롯데그룹 한 계열사 임원은 기자와의 만남에서 이렇게 토로했다. 올 2월부터 시작된 사정당국의 조사가 재계서열 5위의 롯데그룹을 조여오고 있다. 그룹 내부에서는 새 정부가 롯데그룹을 정조준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MB정부 최대 수혜기업이었던 롯데그룹은 현재 정부의 3대 사정기관(국세청, 감사원, 공정위)으로부터 모두 조사를 받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 한 달 만인 지난 2월 시작된 국세청 조사를 시작으로 감사원과 공정거래위원회까지 돌아가며 롯데그룹을 털고 있다.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사정당국의 조사가 이번으로 끝날 것 같지 않다는 데 있다. 특히 국세청이 롯데쇼핑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그룹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고 있는 정책본부까지 조사한 것으로 알려져 롯데그룹 임직원들의 불안감은 높아지고 있다.

    재계 역시 비슷한 반응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국세청부터 시작된 조사가 감사원과 공정위를 거쳐 다시 국세청으로 이어지고 있다”면서 “마지막에는 검찰이 나서 오너 일가를 겨냥하지 않겠느냐”고 분석했다.

    사정기관의 이례적 ‘릴레이’ 조사 시작은 롯데호텔이었다. 한국롯데와 일본롯데의 가교 역할을 하며 롯데그룹에서 사실상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는 롯데호텔은 지난 2월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받았다. 롯데호텔은 호텔·면세점·잠실롯데월드어드벤처테마파크·골프장 사업 등을 맡고 있으며 일본 롯데 계열사들이 지분을 대부분 소유하고 있다. 국세청은 이런 이유로 롯데호텔의 세무조사에 조사 1, 2국이 아닌 국제거래조사국을 투입했다.

    이와 동시에 그룹 내부거래와 전산자료를 관리하는 롯데정보통신 역시 국세청의 조사를 받았다. 이곳에는 특별 세무조사를 주로 담당하는 국세청 조사 4국이 투입됐다. 이 과정에서 롯데호텔 자료 일체를 확보해 국세청은 20여억원의 과징금을 추징했다.

    국세청의 태풍이 한 차례 지나간 뒤에는 감사원의 돌풍이 불어 닥쳤다. 지난 4월 감사원이 국세청과 기획재정부 등을 감사하는 과정에서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배우자·자녀·손자 등이 회사(유원실업, 시네마통상, 시네마푸드)를 설립한 후 롯데그룹이 운영하는 직영 영화관 내의 수의계약을 통해 낮은 임대료로 매장을 낸 사실을 적발했기 때문이다.

    감사원의 지적에 롯데그룹은 지난 2월 말 이들 3개 회사와의 임대차 계약을 해지하고 52개 직영 영화관 내 매점을 직영운영으로 변경했다.

    이로부터 한 달도 되지 않아 공정위가 롯데그룹을 다시 조여왔다. 롯데그룹의 광고를 담당하는 대홍기획을 현장 조사한 것. 대홍기획은 지난해 매출액 2759억원 중 2040억원을 그룹 내 계열사에 올려 일감 몰아주기 혐의를 받고 있다. 공정위는 또 4월부터는 롯데제과의 납품업체 단가 후려치기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으며, 편의점 부당행위 조사 명단에도 세븐일레븐이 포함됐다.

    이런 가운데 다시 한번 국세청이 나섰다. 지난 7월 16일 롯데쇼핑에 대해 전격적인 세무조사를 시작한 것. 이번 조사에서는 롯데쇼핑과 관계없는 롯데그룹 정책본부까지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해 롯데그룹의 불안감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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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국세청 조사 다음은 검찰? 롯데그룹에 대한 사정당국의 조사가 릴레이식으로 이어지면서 재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말부터 재계에서 떠돌던 ‘롯데 손보기’가 실제 진행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롯데그룹 내부에서도 이런 상황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롯데그룹의 한 계열사 임원은 “새 정부 들어 대기업에 대한 압박 수위가 높아진 상황에 비자금을 주로 조사하는 조사 4국이 직접 롯데쇼핑을 조사하고 있는 만큼 조사결과에 모두가 주목하고 있다”고 전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번 사정당국의 다음 행보다. 롯데그룹 임직원들 사이에서는 “롯데쇼핑 이후 사정당국의 레이더에 걸릴 계열사는 어디일까”라는 추측이 나돌고 있을 정도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재계에 퍼지고 있는 ‘검찰 수사설’이다.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감사원과 국세청, 공정위가 지금까지 했던 조사는 검찰의 수사를 위한 ‘사전 손보기’일 수 있다”고 귀띔했다.

    각 계열사에 대한 조사를 미리 마친 상황에서 국세청이 다시 롯데그룹의 핵심 주력사인 롯데쇼핑을 이제야 조사하는 것은 그룹 총수를 직접 겨냥한 신호탄이라는 분석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번 국세청 조사에서 오너 일가에 관한 내용이 나올 경우 검찰이 직접 수사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롯데쇼핑이 2009년 받았던 정기 세무조사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강도 높은 조사가 진행 중이라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사정당국이 롯데그룹의 핵심 사업주체인 롯데쇼핑을 큰 맥으로 잡고 계열사 부당지원 일감 몰아주기, 해외법인에 대한 조사 등의 수순으로 엮어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국정감사 불출석으로 인해 검찰에서 약식기소를 받은 후 법원에 출두한 신동빈 회장
    국정감사 불출석으로 인해 검찰에서 약식기소를 받은 후 법원에 출두한 신동빈 회장
    제2롯데월드 인허가 의혹도 롯데그룹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이런 점 때문에 최악의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청와대가 롯데 사정을 기획하고 하명했을 것이란 소문이 정치권에 퍼진 가운데, 사정당국이 반년이 넘도록 릴레이식 조사를 진행하자 MB정부 시절 진행했던 사업들에 대한 전방위 조사가 진행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어서다.

    특히 제2롯데월드 신축 허가와 관련 검찰의 수사가 진행될 경우 롯데그룹은 엄청난 시련을 겪을 것으로 재계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초고층 빌딩을 통해 호텔과 복합문화시설을 짓는 이 사업은 롯데그룹이 이전부터 사활을 걸고 추진해온 것으로 지난 MB정부 시절 허가가 떨어졌다.

    문제는 이에 앞서 김영삼-김대중-노무현 대통령 등이 군사적인 이유로 이 사업을 거부해왔다는 점이다. 이런 점 때문에 재계에서는 제2롯데월드 신축 허가와 관련 롯데그룹의 로비가 있었을 것이란 추측이 퍼지기도 했다. 재계에서는 3명의 전임 대통령이 군사적인 문제로 반대했지만, MB정부에서 갑자기 허가가 떨어졌다는 점 때문에 검찰의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인허가 과정에서 정치권에 대한 로비 정황이 밝혀질 경우 롯데그룹 오너 일가를 포함해 정치권 전체를 강타할 수 있는 ‘게이트’급 사건으로 비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롯데그룹은 “국세청의 이번 롯데쇼핑 조사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며 “최대한 협조하며 차분하게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는 입장이다. 사정당국들 역시 재계의 우려스런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롯데그룹에 대한 조사 결과를 아직 발표하지 않고 있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사정당국의 릴레이 조사를 받고 있는 롯데그룹. 사방이 꽉 막힌 듯한 작금의 상황을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어떻게 해결할까.

    [서종열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5호(2013년 0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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