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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스타들은 한국을 좋아해!
입력 : 2013.08.09 16:5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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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할리우드 스타들이 한국을 직접 방문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한국 바로 옆에 규모가 훨씬 큰 영화 시장인 일본 열도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귀하신 몸’인 할리우드 스타들의 빽빽한 스케줄을 고려할 때 굳이 일본과 한국 양쪽에서 두 번 프로모션을 펼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동안 뻔질나게 일본을 드나든 <해리 포터> 시리즈의 주인공 3인방이나 <섹스 앤 더 시티>의 블링블링한 4명의 뉴요커를 한국에서 볼 수 없었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상황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성공적인 안착으로 한국이 중국과 일본을 제치고 아시아 영화의 맹주로 떠올랐다. 또 박찬욱, 홍상수, 봉준호, 김기덕 등 한국 감독들이 칸과 베니스, 베를린 등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으며 한국 영화의 위상이 부쩍 향상됐다. 2007년 서울에서 할리우드 영화의 아시아 최초 정킷 프레스(Junket Press)를 열었던 <트랜스포머>는 할리우드의 눈을 한국으로 돌리게 만든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이후 숫자가 모든 것을 설명했다. 극장 개봉 수익만 놓고 본다면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 지역을 제외하고 한국이 <트랜스포머>를 가장 많이 본 나라가 됐다. 이를 계기로 할리우드 스타들의 방한이 조금씩 많아진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후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개봉되는 영화도 많아졌다. 물론 해외 스타들의 방한이 100% 영화 흥행으로 이어지는 보증수표는 아니다. 대표적인 친한파 배우 톰 크루즈는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의 엄청난 성공을 목격했지만, <작전명 발키리>나 <잭 리처> 등 기대 이하의 흥행을 기록한 영화들도 제법 있다. 윌 스미스의 <애프터 어스>는 미국에서도 흥행에 참패하더니 한국에서도 전국 관객 100만명을 넘기지 못하는 ‘대망(大亡)’ 영화가 됐다. 또 방한 태도 문제를 지적당했던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2008년 작 <스트리트 킹>도 흥행에 참패했으며, 카메론 디아즈가 내한했던 <슈렉 3>와 키퍼 서덜랜드를 한국으로 불러들인 <몬스터 vs 에이리언>은 ‘잔잔’한 흥행에 그쳤다. 이용철 영화평론가는 “과거와 비교하면 할리우드와의 작업이 수월해졌다. 한국 감독과 배우들이 할리우드에 진출해 좋은 성과를 올리고 한국 시장이 커지면서 세계적으로 중요한 영화 마케팅의 중심으로 떠올랐다”면서 “해외 스타들의 방한이 늘어나면서 그들의 희소성이 사라지고 있는 것은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한다. 할리우드 스타의 내한 여부와는 상관없이 재미와 완성도를 담보한 영화가 흥행에 성공한다는 말이다.
또 올해 3월까지 분기별 역대 최고치인 5500만명의 관객이 영화관을 찾았다. 실제 한국에서 개봉돼 흥행에 성공한 외국 영화들을 살펴보면 한국에서의 수익이 높았던 것을 알 수 있다.
지난해 말 개봉돼 590만명의 전국 관객을 동원한 휴 잭맨, 앤 해서웨이 주연의 <레미제라블>은 국가별 수익을 살펴봤을 때 한국이 미국과 영국, 일본 다음으로 4위를 차지했다. 또 <트랜스포머> 1편에 이어 2편인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과 <트랜스포머 3>도 각각 네 번째, 세 번째로 수익이 많았다. 이처럼 한국은 아시아에서 중국, 일본에 버금가는 영화시장으로 성장했다. 중국의 전체 인구가 13억명, 일본이 1억명 이상임을 고려한다면 한국의 영화 시장이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최근 2~3년간 한국 영화의 강세로 외국 영화가 흥행에서 큰 재미를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막상 흥행작이 터지기만 하면 기대를 뛰어넘는 높은 스코어를 기록하는 것도 할리우드가 한국을 유독 주목하는 이유가 됐다.
할리우드의 메이저 스튜디오인 20세기 폭스가 올 초 개봉한 한국 영화 <런닝맨>에 투자를 시도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할리우드에서 <박쥐>와 <황해> 등 한국 영화에 일부 투자한 적은 있지만, 제작비 전액을 투자하고 제작과 배급까지 100% 총괄한 것은 <런닝맨>이 최초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한국의 영화 시장이 매력적인 것”이라며 “일본과 인도 등 기존 강국들의 영화 시장은 불황이지만 한국의 영화 산업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티켓 가격이 낮고 인구가 작지만 의미 있는 수익이 발생하는 한국을 할리우드가 그냥 놔둘 리 없다”고 분석했다.
인구 5000만명의 한국이 인구 13억명의 중국 시장에 비해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것은 이채롭다. 물론 이는 할리우드 스타들이 중국보다는 한국을 더 많이 찾고 있다는 관점에서의 이야기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개봉 영화 한 편의 입장료가 한국 물가로 뮤지컬 한 편 보는 고가인 탓에 중국인들은 개봉관에서 영화를 그리 자주 보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익히 잘 알려진 것처럼 중국이 영화 불법 다운로드의 천국이라는 점이다. 모두가 중국을 황금알을 낳는 시장으로 여기고 있지만 아직은 성공적인 부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눈물을 머금고 그들은 중국 시장을 일정 부분 포기하고 간다.
그러나 한국이 일본을 넘어서면 이 모든 상황은 자연스럽게 뒤바뀔 수 있다. 전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인 한국을 전쟁이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는 엄청나게 위험한 나라로 인식하고 있는 그들의 선입견도 문제다. 조금 더 체계적이고 구체화된 국가의 이미지 메이킹이 절실하다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열혈 영화 네티즌들에게 임무가 남았다. 마약처럼 달콤하고 손쉬운 영화 불법 다운로드에서 과감하게 손을 뺄 것을 ‘강권’한다. 계속 이런 식이 이어진다면 그들에게 한국은 중국 시장의 또 다른 버전으로 격하되며 ‘없는 시장’으로 여겨질 가능성도 다분하기 때문이다.
[태상준 영화칼럼니스트]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5호(2013년 0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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