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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 Story] 우여곡절 하이닉스 M&A 변수
입력 : 2011.09.15 16: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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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말 많고 탈 많았던 반도체 빅딜에 따라 현대전자와 LG반도체가 통합돼 탄생됐던 이 회사는 설립 당시 15조8000억원의 부채를 짊어진 골칫거리였다. 하이닉스는 합병 이듬해 반도체 값 하락과 유동성 위기를 맞으면서 2001년 10월 채권 금융기관의 공동관리에 들어갔다. 이때부터 새 주인 찾기에 골몰했지만 메모리 반도체 사업의 특성상 사이클이 심하고 투자비가 막대한 장치 산업의 특성상 그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시련의 계절을 견디면서 자가 생존의 노력을 계속했던 이 회사는 지난 2004년 처음으로 흑자 전환했다. 이후 반도체 업체가 ‘치킨게임’으로 내몰렸던 2008년을 빼고는 연 단위로도 꾸준한 흑자를 내왔다.
지난해에는 매출 12조990억원에 영업이익 3조2730억원의 사상 최대 실적을 이끌어 내며 ‘백조’의 자태를 뽐냈다.
지난 2분기 기준으로 부채도 8조9000억원 수준으로 낮아진 상태다. 하이닉스가 건강한 몸 상태를 갖추자 채권단은 새 주인이 찾기에 나섰다. SK그룹과 STX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돼 한참 치열한 인수전이 벌어지고 있다.
세 번의 매각 왜 실패했나?경기도 이천시의 하이닉스 전경
이후로도 눈물겨운 구조조정은 계속됐다. 2000년 2만2000여 명이던 직원은 4년 만인 지난 10월 초 절반 이하인 1만여 명까지 줄었다. 그 사이 계열사 13개를 팔고, 11개 사업부를 분사시켰다. 하이닉스는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주력사업인 메모리반도체를 제외한 비주력 사업을 모조리 정리해 2조4000억원의 자금을 마련했다.
하지만 어려움 속에서도 하이닉스는 이를 임직원들의 아이디어와 땀으로 메워가기 시작했다. 그 결과 경쟁사보다 3분의 1의 투자로 90나노(10억 분의 1m) 공정을 성공시키는 기적을 일궜다. 알토란 같던 현대큐리텔이나 TFT-LCD(초박막액정표시장치)사업부, 비메모리사업부도 모두 팔았다. 그 결과 2004년 흑자 전환과 2005년 7월 워크아웃을 조기에 졸업을 이뤄냈다.
이후 지속적인 사업은 지속적인 흑자를 기록했지만 과감한 투자 결정을 내려야 하는 등 사업상의 특성상 새 주인 찾기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히 느껴졌다.
지난 2009년 채권단은 하이닉스의 매각 대상을 찾아 나섰다. 당시 효성이 인수의향서를 단독으로 냈다. 당시 효성은 블랙스톤, KKR 등 사모펀드를 FI로 유치해 2조원의 자금을 조달하고, 차입과 회사채를 발행해 추가 2조원을 확보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연 매출 5조원, 순이익 1000억원 수준의 효성이 연간 2조원 규모의 설비투자가 필요한 하이닉스를 사들이긴 다소 버거웠다. 인수자금 4조원으로 인한 이자비용과 부채비율 상승 우려도 부각됐다.
효성은 마침내 인수를 포기했다. 만약 효성이 무리해서라도 하이닉스를 인수했다면 순차입금이 2배로 늘어나 부채비율이 150%에서 270%로 껑충 뛰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효성은 자금조달 능력 논란과 함께 대통령 사돈 특혜 시비와 비자금 문제 등이 겹치면서 인수 계획을 접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하이닉스 채권단은 같은 해 11월 매각 공고를 다시 냈지만 어떤 업체도 인수의향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시장에서는 하이닉스에 대해 연간 2조원의 추가 설비투자가 필요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는데 이러한 하이닉스의 덩치와 사업의 특성은 인수에 참여할 업체들에게는 적지 않은 부담이 됐다.
경쟁까지 붙은 입찰전 하지만 이번 인수전은 단독 입찰이 아닌 경쟁 입찰이라는 점에서 시장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국내 통신산업이 포화상태에 이른 SK텔레콤(SKT)과 조선해운산업만으로는 불안한 STX는 반도체산업에 미래를 걸고 이번 인수전에 임하고 있다. 사실상 기업의 미래가 달린 대형 인수전의 승자가 누가 될 것인지 또 이 승자가 마실 잔은 축배인지 독배가 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입찰전의 열기는 뜨겁다. SK그룹과 STX그룹 모두 대규모 인수자문단 구성을 마치고 실사를 통해 막판 주판알을 튕기고 있다. 상대방 카드에 예의 주시하면서 인수전 경쟁자의 약점을 부각시키는 데도 골몰하고 있다.
하이닉스 본계약을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는 9월 중순 선정된다. 인수대금은 2조원대로 추정되지만 경쟁에 따라서는 가격이 크게 올라갈 수도 있다. SK그룹은 계열사인 SKT 단독으로 자금을 조달해 하이닉스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이미 법률 자문사로 김앤장, 회계 자문사로 삼정KPMG, 재무 자문사로는 메릴린치와 맥쿼리증권을 각각 선정해 30여 명의 인수팀을 꾸렸다.
SK그룹은 석유화학과 통신으로 양분된 사업 구조에서 벗어나 반도체로 다각화를 추진하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고심 끝에 하이닉스 인수전 참여를 승인하며 손수 챙기고 있는 만큼 반드시 M&A를 성사시킨다는 각오다.
최근 STX그룹은 금융 등 전체 자문사로 JP모간, 회계 자문에 딜로이트안진, 법률자문으로 율촌을 선정했다. 여기에 STX미래연구원과 각 계열사에서 파견된 인력 등을 포함해 모두 40명으로 하이닉스 인수자문단을 구성하고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강덕수 회장은 조선·해운에 집중된 그룹 사업 구도를 다각화하기 위해서는 하이닉스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임직원을 독려하고 있다.
하이닉스의 매력 포인트 전혀 다른 업종의 양사가 하이닉스의 인수에 열을 올리는 데는 이 회사의 가치가 지난 어느 때보다도 높아졌기 때문이다. 하이닉스는 불황 중에서도 흑자를 낼 수 있는 기업으로 탈바꿈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0년 권오철 사장 취임 이후 일본 및 대만과의 피 말리는 치킨게임 속에서도 지난 2분기 다시 흑자를 기록하며 8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 이는 D램 가격 하락 속에서 기록한 흑자이기에 더욱 빛났다.
하이닉스의 이 같은 성장은 피나는 연구개발의 결과다. 미세공정이란 반도체 회로 사이 폭을 줄이는 것으로 10나노를 단축하면 칩 생산량이 60%가량 늘어난다.
하이닉스는 한 때 삼성전자의 미세공정 기술을 따라잡았다고 평가됐을 정도로 빠른 기술 개발을 통해 치열한 경쟁시장에서 살아남는 길을 마련했다. 2009년 성공적인 미세공정화로 삼성전자를 위협한데 이어 현재도 30나노 비중 확대로 여전히 40나노대 진입 수준에 머물고 있는 글로벌 경쟁업체를 크게 따돌리고 있다. 일본의 엘피다와 미국의 마이크론 등 경쟁업체는 50, 40나노 비중이 절대적이다.
미세공정 전환 비율이 늘어날수록 수익성이 향상되기 때문에 경기 불황에도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반대로 전환이 늦어지면 올해와 같이 D램 가격이 생산원가 수준까지 떨어질 때 만들 수록 손해를 보기 때문에 감산에 들어갈 수 밖에 없다.
김장열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D램의 가격이 떨어져 업계의 감산이 임박했지만 하이닉스는 미세 공정화를 꾸준히 진행 시켜 상대적인 수혜도 기대된다”고 말했다.
하이닉스의 또 다른 강점은 조기에 중국 진출해 성공적인 사업으로 안착했다는 점이다. 하이닉스는 지난 2004년 중국 우시 공장을 세웠다. 급성장하는 중국 수요에 맞춰 월 1억7000만개(1Gb 기준) 생산 규모의 D램 반도체 라인이 풀가동으로 생산된다. 세계 D램 생산량의 11%를 차지하는 중국 최대의 반도체 생산기지다.
우시 공장은 하이닉스뿐만 아니라 우시 시정부에도 큰 자랑거리다. 장쑤성 최대 외자 유치기업이면서 중국 최대 반도체 제조 기업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원자바오 총리, 우방궈 전인대위원장 , 자칭린 중국정협 수석, 시진핑 국가부주석, 리커창 상무부 총리 등 중국 상무위원 9명 중 5명이 우시 공장을 직접 방문했을 정도다.
인수에 나선 업체들도 이런 점에 초점을 맞추는 분위기다.
SKT는 그동안 중국 사업의 문을 계속 두드려 왔다. SK그룹 전체로 봐도 통신, 에너지 등 내수 규제 산업 위주로 사업 포트폴리오가 짜여 있어 새로운 성장 동력 확보가 절실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특히 SKT는 그간 이동통신 1등 지위에도 불구하고 내수 시장에서 각종 규제와 치열한 경쟁으로 이제 성장의 한계에 보이기 시작했다는 지적을 받아왔기에 돌파구가 필요했다.
STX도 중국 다롄 공장을 비롯해 중국 사업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STX는 기존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등이 점하고 있는 해양플랜트 분야와 달리 차별화 전략으로 중국 시장을 특화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매각 작업의 최대 변수2004년 하이닉스는 중국 장쑤성에 최대 규모의 반도체 공장을 세웠다.
채권단으로서는 구주를 높은 가격에 많이 팔수록 매각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반대로 인수 희망 기업은 신주 발행을 통해 시설 투자비로 사용할 금액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양측의 이해관계가 엇갈리고 있다. 최근 하이닉스채권단을 이끌어온 유재한 사장이 돌연 사의를 표명해 매각 작업에 또 다른 변수로 평가되고 있다.
이 밖에 최근 들어 반도체 시장이 급락하는 것도 입찰 참여업체들의 하이닉스 인수 의지를 약화하는 원인이 될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시장의 변화와 대외적인 금융환경이 하이닉스의 이익률 뿐 아니라 인수의향 기업의 자금조달에 차질을 초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하이닉스의 주가 하락에 따라 인수 총액이 내려가는 효과를 고려하면 하이닉스 매각 추진 자체가 오히려 탄력을 받을 수도 있는 상황으로 전개될 수도 있다.
이 밖에 자금 조달 시 국내 기업이 경영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조항과 해외 기술 유출에 대한 우려 등이 막판까지 인수와 매각을 장담할 수 없는 변수가 될 가능성이 남아있다.
SKT와 STX는 지난달 27일부터 6주 일정으로 예비 실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내달 중순 본입찰을 실시해 우선 협상자가 선정되면 11월 중 매각 절차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이동인 / 매일경제 산업부 기자 moveman@mk.co.kr]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12호(2011년 0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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