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usiness Inside] 즉석밥·라면까지 내놓은 닭고기회사 하림 공정위 제재 이어 국세청 세무조사 ‘엎친 데 덮쳐’

    입력 : 2021.11.29 10:28:56

  • 국세청이 닭고기 전문기업 하림그룹 총수인 김홍국 회장의 아들이 지분을 보유한 올품을 상대로 세무조사에 착수하면서 재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최근 관련 업계 등에 따르면 국세청은 최근 올품 본사 등지에 직원을 보내 자료를 확보하는 등 현장 조사를 벌였다. 이번 조사는 탈세 등 혐의가 있을 때 특별 세무조사를 맡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국세청 조사4국은 비정기 특별 세무조사를 전담하는 조직이다. 지난 10월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하림그룹이 김흥국 회장의 장남 준영 씨가 소유한 닭고기 전문회사 올품을 부당지원했다며 약 49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바 있다. 업계에선 공정위 제재가 국세청 세무조사의 발단이 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올품은 김준영 씨가 100% 지분을 가지고 있는 회사로, 올해 5월 기준 하림그룹 지주사인 하림지주 지분 24.6%를 보유 중이다. 하림지주 22.9%를 갖고 있는 김 회장과 준영 씨가 100% 주주인 올품이 하림그룹을 지배하고 있는 셈이다. 그룹의 지주사는 하림지주이지만 그룹 지배구조 정점에는 올품이 있는 셈이다. 준영 씨가 100% 지분을 가진 계열사가 지주사를 지배하는 전형적인 ‘옥상옥’ 구조다. 하림그룹의 현재 자산 규모는 10조원이 넘는다.

    하림그룹 김홍국 회장이 지난 10월 더미식 장인라면 출시를 기념해 열린 미디어 행사에서 직접 끓인 라면을 선보이고 있다.
    하림그룹 김홍국 회장이 지난 10월 더미식 장인라면 출시를 기념해 열린 미디어 행사에서 직접 끓인 라면을 선보이고 있다.
    김 회장은 2012년 1월에 올품 전신인 한국썸벧 판매 지분 100%를 증여하고, 이후 계열회사들은 시장가보다 높은 가격으로 올품에서 제품을 사들이거나 올품을 거쳐 구매하는 등 이익을 안겨주는 방식으로 올품을 부당지원했다고 공정위는 판단했다. 실제 올품은 지분 증여 전인 2011년 709억원이던 매출이 2013년엔 3464억원으로 급등했다. 공정위는 올품이 2012년부터 2016년까지 매년 700억원 이상의 매출을 계열사 간 내부거래를 통해 올렸다고 판단했다. 한편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하림 등 육계업체를 대상으로 치킨 등에 사용되는 육계(일반 닭고기) 가격 담합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지난 10월 삼계탕용 닭고기인 삼계 담합 협의로 하림에 78억74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데 이어 두 번째 닭고기값 제재에 들어간 것이다. 편법승계 문제로 하림그룹 계열사에 48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것까지 포함하면 하림그룹 차원에서는 올해 공정위의 세 번째 제재를 받는 셈이다. 재계에선 하림이 공정위 제재와 국세청 세무조사로 승계과정에 상당한 부담을 안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준영 씨는 하림지주 경영기획실에서 일하다 최근 사모펀드인 JKL파트너스로 회사를 옮긴 바 있다. 하림그룹과 JKL파트너스는 2015년 컨소시엄을 구성해 팬오션을 인수한 바 있다. 하림그룹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공정위 제재를 앞두고 아들 준영 씨가 회사를 옮겼다는 소문이 있었다”면서 “당분간 승계작업을 서두르기보다는 사모펀드에서 경험을 쌓으며 차근차근 경영 경험을 쌓는 데 주력하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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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양재동 도심복합물류센터 개발 놓고도 구설 그룹 승계와는 별도로 최근 하림그룹은 사업 다각화를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양재 도심복합물류센터 개발이 대표적 사례. 하림지주는 최근 자회사인 식품전문 채널 ‘엔에스(NS)쇼핑’과 지분을 맞교환하는 방식으로 NS쇼핑을 완전 자회사로 편입한다고 발표했다.

    하림지주는 자회사가 된 NS쇼핑(사업회사)에서 하림산업을 보유한 투자법인 엔에스(NS)홀딩스(투자법인, 가칭)를 떼어내 하림지주와 합병시킬 계획이다. 이는 하림산업의 양재동 부지를 본격 도시첨단물류단지로 개발하기 위한 사전작업으로 평가된다. 이번 주식교환을 통한 사업구조 재편으로 엔에스쇼핑의 식품전문 플랫폼 구축, 최대 역점 사업인 양재 도시첨단물류단지 조성사업을 신속하게 추진, 강력한 신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이번 합병이 하림그룹 2세 승계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을 내놓는다. 하림지주가 양재동 부지 개발을 맡음으로써 결국 최대 수혜자는 하림지주를 간접 보유하고 있는 준영 씨가 될 수 있다는 게 이유다. 실제 NS쇼핑 주주들은 반발하고 있다. NS쇼핑이 하림지주에 합병될 경우 기존 주주 가치가 희석되기 때문이다. 양재동 물류센터는 부동산 가치만 2016년 당시 대비 2배가량 상승, 그 차익만 NS쇼핑의 시가총액인 4600억원을 상회할 것으로 평가된다.

    하림 서울 신사동 사옥
    하림 서울 신사동 사옥
    한편 하림이 사업 다각화를 위해 라면과 즉석밥 시장 등에 뛰어들었지만, 시장의 반응은 엇갈린다. 먼저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으로 세계적인 스타덤에 오른 이정재가 광고에 출연해 화제를 모은 장인라면은 초고가로 출시됐다. 봉지당 가격은 편의점 기준 2200원이다. 컵라면은 2800원이다. 신라면(900원)보다 2배 이상 높은 가격이자 신라면 블랙(1700원)과 오뚜기 진짬뽕(1700원) 등 기존 프리미엄 라면보다 30% 가까이 비싸다. 대형마트에서 4개 들이 한 팩을 구매한다고 봤을 때 거의 1만원의 가격이다. 하림은 인스턴트식품으로 저평가돼온 가공식품을 장인, 셰프가 제대로 만든 요리 수준으로 끌어올려 가정에서도 미식(美食)을 즐길 수 있도록 하겠다는 목표로 제품을 개발했다고 설명한다.

    판매가가 지나치게 높은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지만 초반 판매량은 나쁘지 않다. 출시 약 한 달 만에 판매량 300만 봉을 넘어섰다. 차별화된 맛과 품질로 소비자들의 제품 선택 폭을 넓혔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받고 있다. 문제는 앞으로다.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라면 같은 제품은 초반 판매가 잘 되더라도 계속 구매로 이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최소 몇 개월간은 지켜봐야 성패를 알 수 있다”면서 “기존 라면에 대비해 큰 차이점을 느끼지 못하겠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계속 재구매로 이어질지 상황을 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림은 지난 3월에도 즉석밥 시장에 진출하며 ‘순밥’ 브랜드를 론칭했지만, 이 역시 경쟁사 제품 대비 높은 가격으로 시장에서 존재감은 미미한 수준이다. 시장 조사업체 닐슨에 따르면, 지난 9월 기준 즉석밥 시장에서 하림 순밥 시장 점유율은 0.1% 수준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시장에서 보기 힘든 상황. 순밥 역시 초반 고품질·고가격 정책을 썼지만, 결국 실패로 이어졌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하림 더미식 백미밥은 6개 들이 기준 1만3300원으로 같은 용량인 CJ제일제당의 햇반(7200원), 오뚜기의 오뚜기밥(5500원)보다 훨씬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하림 측은 순밥이 시장에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자 최근에는 HMR ‘더미식’ 브랜드에 통합시켜 ‘더미식 백미밥’으로 패키지를 바꿔서 판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종합식품기업 전환을 위해 라면과 즉석밥 시장에 진출한 것으로 보이는데, 고가 전략이 쉽게 먹히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김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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