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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모의 미술동네 톺아보기] G7 국가들은 왜 앞다퉈 미술관 만들까
입력 : 2021.05.28 15:4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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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이 불가능하니 더더욱 좀이 쑤셔 상상 속에서 여행을 떠나본다. 여행보다 여행계획을 세울 때 가장 행복하다지만 왜 그렇게 각 나라, 도시마다 미술관은 많은지. 일정상 빼자니 아쉽고 넣자니 빠듯하다. 외국에는 왜 이렇게 미술관이 많을까. 이는 문화예술적 역사와 박물관·미술관 역사가 깊기 때문이지만, 제국주의 시절 약탈 유물까지 포함하면 많을 법도 하다. 우리나라도 반만년 역사라면 더 많은 박물관·미술관이 있어야 할 것이다. 제법 문화인프라가 잘 갖춰졌다는 서울만 해도 등록된 박물관과 미술관 수가 총 175개소(2020년 기준)로 인구 100만 명당 17개소에 지나지 않는다. 런던이 총 215개소로 100만 명당 26개, 미국의 LA가 총 231개소로 100만 명당 61개, 파리가 총 313개소로 100만 명당 149개소인 것에 비하면 여전히 열악한데, 이는 양만 따진 것으로 질적인 비교를 더한다면 훨씬 더 후진국 수준이다.
뒤셀도르프 20세기 미술관
또 귀하고 중요한 문화재와 예술품을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감상하면서 지배계층이나 부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우리의 것’이라는 공감대를 통해 지역, 나이, 성별, 빈부, 학력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자국의 문화재와 예술품뿐만 아니라 인류의 문화예술적 자산을 ‘우리’가 보관하고 관리한다는 문화수호자로서의 자긍심을 국민에게 심어주어 나라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한편, 문화산업적 측면에서 많은 관광객을 불러 모아 재정적인 수입을 높일 수 있고 문화국가로서 국격 또한 높여준다. 따라서 선진국들은 고대에서 봉건시대를 다루는 박물관과 산업혁명 이후 근대(Modern)에 근거한 근대미술관, 20세기(Contemporary)를 다루는 현대미술관 외에 동시대미술(Temporary)을 다루는 미술관 등 4관 체제를 갖추고 상호 보완적이며 공통적인 조사와 연구를 통해 미술의 역사를 다룬다. 특히 역사, 미술사적인 미술관 구성은 미술이 단지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감상하는 것을 넘어 복식, 풍습 등 당시의 사회, 역사를 증언해 역사를 재구성하고 복원할 수 있는 사료적 가치로서 중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21세기 들어 박물관과 미술관의 기능과 역할을 새롭게 인식한 선진국들은 많은 미술관을 개관했고 또 팬데믹 이후를 대비해 거금을 투자, 새로운 미술관 개관을 준비 중이다. 프랑스 파리는 2017년 공사를 시작해 2021년 5월 파리의 옛 상업거래소(Bourse de Com merce)에 1000여 평 규모의 전시실을 갖춘 피노컬렉션을 개관했다. 루브르, 퐁피두와 도보로 10분 이내 거리에 있다. 퐁피두센터는 보수를 위해 2023년 말부터 약 2700억원을 투입해 리모델링 공사를 시작한다. 2027년 초 재개관할 예정이다.
뉴욕 MoMA는 1983년에 이어 1997년 약 1조원을 들여 공간을 1만8000여 평으로 늘리는 확장공사를 했고, 그로부터 7년 후인 2014년부터 5082억원을 들여 전시면적을 30%나 확장해 2020년 10월 새롭게 문을 열었다. 허드슨 야드에는 힙합에서 클래식, 회화에서 디지털 미디어, 연극에서 문학, 조각에서 댄스까지, 모든 장르의 예술을 다루는 복합문화공간 ‘창고(The Shed)’가 2019년 4월 개관했다. 5300억원의 공사비가 들었다. 필리델피아미술관은 2002년부터 계획한 확장공사를 게리(Gehry,1929~ )의 설계로 2200억원을 투입해 2500평의 면적을 확장, 2021년 5월 개관했다. LA의 대표적인 미술관 LA CMA는 스위스 건축가 페터 줌토르(Peter Zumthor, 1943~ )를 초빙해 2020년부터 2023년 완공을 목표로 7300억원의 공사비가 들어가는 공사를 진행 중이다. LA에는 이미 1581억원을 투입해 2015년 개관한 브로드미술관과 2017년 패션브랜드 게스(Guess)의 창업주 형제가 윌셔에 개관한 마르시아노 파운데이션이 있음에도 말이다.
중국과 호주의 미술관 건립 붐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정정이 불안한 홍콩도 2014년 착공한 20세기, 21세기 미술을 다루는 M+를 2020년 완공하고 올해 말 개관한다. M+는 총 2만여 평 중 5000평에 33개의 갤러리와 3개의 극장, 미디어테크, 연구센터, 레스토랑, 바 그리고 옥상 정원을 갖추고 있다. 이 외에도 아부다비의 루브르 분관(2017년 개관), 이집트의 대이집트박물관(2021년 개관 예정) 등 최근 개관하거나 개관 예정인 박물관과 미술관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이는 박물관과 미술관을 확대해 경제강국에서 문화강국으로 국가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새로운 국가전략이 한몫하고 있다. 특히 근대미술(Modern Art)과 20세기 미술에 중점을 두는 것은 오늘날 자국의 정체성을 구축하는 데 가장 많은 영향력을 끼친 시대를 국내외로 알려 현재 자국의 번영과 부가 대대로 물려받은 유산임을 기정사실로 정착시키려는 움직임이다.
K20 전시관
특히 지방자치가 발달한 독일은 주마다 주도에 시대별 미술관을 둔다.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주의 주도인 뒤셀도르프에는 고미술을 다루는 예술궁전(Kunst Plast)과 근대미술관인 K20, 현대미술관인 K21이 있고 동시대를 쿤스트 포럼(Kunst Forum)이 담당하고 있다. 바이에른의 주도 뮌헨에는 고회화관(Alte Pinakot hek), 신회화관(Neue Pinakothek), 현대회화관(Moderne Pinakothek)이 있어 고대, 근대, 현대를 다루고 동시대미술은 예술의 집(Haus der Kunst)이 분담한다. 세상이 워낙 빠르게 변하다 보니 이를 따라가려고 미술관도 바쁘게 분화한다. 여기에 국가나 도시에 따라 사진, 건축, 공예, 디자인, 실용미술, 미디어 등 장르별 미술관까지 있으니 우리의 여행 일정이 버거울 수밖에…. 우리나라도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이런 문화적 부담(?)을 양념처럼 좀 줘도 되는 것 아닐까.
[정준모]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9호 (2021년 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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