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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평론가 윤덕노의 음食經제] 애주가들의 망상 아닌 동양판 엘도라도, 한·중·일에는 왜 주천(酒泉)이란 지명이 있을까
입력 : 2021.05.03 10:3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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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이 꿈꾸는 망상 중 하나는 돈벼락을 맞는 것인데, 애써 현실감 있게 말하면 복권에 당첨되는 것이다. 옛날 사람 역시 터무니없는 꿈을 꿨다. 술 솟는 샘, 주천(酒泉)을 발견하는 것. 혹은 물을 술로 바꿔 준다는 돌, 주석(酒石)을 줍는 상상도 해보고 술이 열리는 술 나무, 주수(酒樹)를 찾거나 하늘의 술별, 주성(酒星)이 별똥별되어 벼락 치듯 몸속에 떨어지는 꿈을 꾸기도 했다.
왜 이런 공상을 했을까? 얼핏 술독에 빠져 살고 싶은 애주가의 실없는 소원 같지만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술 솟는 샘은 옛사람 나름의 이상향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한중일 세 나라에 모두 주천이란 지명이 있다. 술이 솟아나는 샘, 요즘도 주점 간판으로 심심치 않게 보이지만 이게 단순히 술 고픈 손님을 유혹하려고 지은 상호가 아니다. 유서가 깊다. 주천의 출처는 흔히 당나라 시인 이태백의 ‘달빛 아래서 홀로 술을 마신다(月下獨酌)’라는 시에서 찾는다.
“하늘이 술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 하늘에 주성(酒星)이 있을 리 없고 / 땅이 술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 어찌 땅에 주천(酒泉)이 있겠는가.”
술 빚는 별 주성이나 술 솟는 샘 주천 모두 술을 사랑한 낭만 시인이 만든 시적 표현 같지만 실은 이태백보다도 훨씬 앞서 2000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이 꿈꿨던 이상향이었다. <사기>와 <한서>를 비롯한 중국 역사서에는 서쪽 땅에 돈황과 주천(酒泉)이 있다고 나온다. 중국 감숙성에 실재하는 지명이다. 돈황은 서역으로 향하는 실크로드 길목이었으며 주천 역시 실크로드 길목의 오아시스로 지금은 우주발사기지가 있는 곳이다. 주천이라는 지명은 3세기 후한 때 문헌인 <지리풍속기>에 유래가 나오는데, 물맛이 술맛과 같아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실제 물맛이 술맛과 비슷했는지 아니면 사막 땅을 걷다 만난 오아시스의 샘물이 마치 술맛처럼 달았기에 생긴 이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옛날에는 그곳 샘물이 술처럼 귀했을 것임은 틀림없다.
우리나라에도 주천이 있다.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 주천리가 그곳으로 예전 이곳에 술 솟는 샘이 있어 생긴 지명이라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설명이 보인다. “주천은 원주 동쪽 90리에 있는데 본래는 고구려 주연현(酒淵縣)이었다. 신라 때 지금의 이름으로 고쳐졌고 조선에서도 그대로 따랐다.”
고구려 때는 샘(泉) 정도가 아니라 아예 술 연못(淵)이었다는 것이니 주당들에게는 엘도라도였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주천 전설은 단지 술 솟는 샘에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진화하고 발전해 술을 만드는 돌, 주석(酒石) 혹은 주천석(酒泉石)으로까지 이어진다. 역시 <신증동국여지승람> 원주 편에 실려 있는 이야기다. 주천현 남쪽 길가에 마치 반쯤 깨진 술통 모양의 돌이 있었다. “세상에 전해지는 말에, 옛날에 술이 저절로 생기는 돌 술통이 서쪽 냇가에 있었는데 가서 마시는 자에게는 술이 넉넉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읍의 아전이 술 마시려고 왕래하는 것이 귀찮아 여러 사람과 함께 술통을 옮기니, 갑자기 우레가 치고 돌에 벼락이 내리쳐 세 개로 부서졌다. 한 개는 연못에 잠기고, 한 개는 있는 데를 알 수 없으며, 나머지 한 개가 곧 이 돌이다.”
원주에 있었다는 술 빚는 돌, 주석이 조선 후기에는 엉뚱하게 오키나와의 보물로 둔갑한다. 관련 이야기가 이중환의 <택리지>와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실려 있다. 명나라 때 왜가 지금의 오키나와인 유구(琉球)를 공격해 왕을 잡아갔다. 태자가 보물을 들고 아버지를 구하러 가다 풍랑에 휩쓸려 제주에 표류했다. 제주 목사가 배에 실은 물건을 물으니 태자가 주천석(酒泉石)과 만산장(漫山帳)이 있다고 대답했다. 주천석은 보석처럼 생겼는데 가운데가 오목하게 파여 물 한 잔이 고일 정도인데 맑을 물을 채우면 곧 맛있는 술이 되는 보물이다. 이 말을 들은 목사가 보물을 요구하자 태자가 허락하지 않으므로 군사를 내어 배를 에워싸니 태자가 보물을 모두 바다에 버렸고 목사는 태자를 죽였다.
원주의 술 빚는 돌 주석은 아전의 욕심 때문에 없어졌고 유구 왕국의 주천석은 제주 목사의 탐욕으로 사라졌으니 결국 지나친 욕심으로 모든 것이 일장춘몽이 됐다는 것인데, 이야기가 전하는 교훈을 떠나 옛 주당들은 별별 상상의 보물을 다 만들어 냈다.
원숭이가 담그는 술인 원주(猿酒)도 있다. 지금의 중국 광동성 깊은 산중에는 원숭이들이 많이 사는데 이들이 갖가지 꽃을 따서 술을 담근다. 어느 나무꾼이 산에 들어가 나무를 하다 동굴을 발견하고는 다량의 술 항아리를 얻었다. 마셔보니 술맛이 좋고 향기가 지극해 이 술을 원주라고 불렀다. 옛 문헌을 보면 이렇게 특별한 노력 없이 보물 같은 술을 얻은 이야기가 끝없이 이어진다.
돈 벼락 맞는 것처럼 술별이 몸에 내려앉기를 빌기도 했다. 고대인들은 북두칠성을 비롯한 하늘의 별들이 인간사를 주관하는데 하늘에 술별, 주성(酒星)도 있다고 믿었다. 이 별이 인간에게 술 빚는 법을 가르쳐 술이 세상에 퍼졌으니 그만큼 술을 소중하고 신비롭게 여겼다는 소리다. 그런 만큼 술 좋아하고 활달해 세속에 구애받지 않는 사람을 술별이 내려앉았다고 했으니 더 없이 칭찬하는 말이다.
이를테면 <연려실기술>에는 태종과 세종 때의 명신으로 술 좋아하기로 이름난 윤회(尹淮)가 있었다. 태종이 그의 문장을 시대의 으뜸이니 천재라고 칭찬했는데, 사람들이 “글별(文星)과 술별(酒星)이 한곳에 모여서 세상에 나왔다”고 말했다. 학식이 깊고 글을 잘 쓰는 데다 술 잘 마시고 활달해서 사교성까지 좋았으니 글별과 술별의 정기를 받고 태어났다는 말 이상의 칭찬도 드물 것 같다. 어쨌거나 옛날 사람들은 왜 이렇게 황당할 정도로 저절로 술이 생기는 세상을 꿈꿨을까 싶은데 자세히 보면 단지 술 사랑하는 주당들이 맛 좋은 술을 탐하면서 지어낸 이야기만은 아니다. 존재하지 않는 땅이라는 유토피아나, 황금으로 가득 찬 땅이라는 엘도라도처럼 술이 저절로 생기는 곳은 일종의 지상낙원일 수 있는데 얼핏 황당해 보이기도 하지만 달리 보면 상당히 현실적인 측면이 있다. 고대에는 술 빚기가 그렇게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단 곡식을 포함해 술 빚는 원료 구하기도 간단치 않았고 귀한 곡식을 발효시켜 얻는 술의 양도 많지 않았다. 게다가 추수가 끝난 이후인 늦가을에 술을 빚으면 이듬해 봄에야 제대로 익은 술을 마실 수 있었으니 시간도 꽤 필요했다.
이렇듯 술 빚는 데 돈과 공력이 만만치 않게 들었기에 술 솟는 샘이나 술 만드는 돌, 술 열매가 열리는 나무는 서양식으로 말하면 황금이 넘치는 땅, 엘도라도와 다름없었다. 무심코 지나치며 보는 주천이라는 지명과 간판이지만 그 속에 옛사람들의 생활, 문화와 함께 경제사가 담겨 있다.
[윤덕노 음식평론가]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8호 (2021년 5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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