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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연의 인문학산책] 아름다움과 한(恨), 가야금은 영물이다… 오동나무가 만들어내는 신비스러운 소리
입력 : 2021.03.08 16:5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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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가야금 소리를 들어 본 적 없던 사람도 연주 현장에서 들으면 대부분 그 아름다운 음색에 깜짝 놀란다. 아름다우면서도 부드럽고 은은하며, 마음을 건드리는 듯 깊은 가야금 소리는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 알고 보니 가야금 소리에는 과학적 근거가 있었다.
모 대학 연구소에서 가야금 소리를 연구한 적이 있었다.
분석결과 가야금은 현(絃)과 울림통이 같은 주파수 대역에서 반응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쉽게 말해 현이 떨릴 때 울림통도 같이 떨린다는 것이다. 사람 귀에 가장 듣기 좋은 맑은 소리가 만들어지려면 현과 울림통이 같은 주파수에서 떨려야 하는데 가야금은 이미 그 조건을 갖추고 있었던 셈이다.
가야금 소리에 숨어있는 또 하나의 비밀은 나무다. 가야금은 오동나무로 만드는데 세포구조가 독특하다. 오동나무의 상피세포를 현미경으로 관찰해보면 세포가 성글고 벽이 얇으며 유연한 것이 확인된다. 오동나무는 비중도 0.35로 다른 나무들에 비해 매우 낮다. 이 때문에 부드럽고 잔잔하며 깊고 고운 소리가 나는 것이다.
서양악기인 바이올린 소리가 날카로운 것은 세포가 촘촘한 가문비나무로 만들기 때문이다. 가야금 울림통 외부에 옻칠을 하는 것도 가야금 특유의 소리를 만들어내는 비결이다. 옻칠은 현악기를 공기와 습기에서 보호한다. 옻칠은 처음 만들어졌을 때와 같은 수준의 나무 품질이 오래 유지될 수 있게 해준다. 나무의 품질이 변하지 않으니 소리도 오랫동안 변하지 않고 유지됐다. 옻칠이 연주할 때마다 균일한 음색이 나올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이다.
▶청록파 조지훈이 노래한 가야금의 눈물 청록파 시인이었던 조지훈은 가야금의 아름다운 음색을 듣고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1
휘영청 달 밝은 제 창을 열고 홀로 앉다
품에 가득 국화 향기 외로움이 병이어라.
푸른 담배 연기 하늘에 바람 차고
붉은 술 그림자 두 뺨이 더워 온다.
천지가 괴괴한데 찾아올 이 하나 없다
우주가 망망해도 옛 생각은 새로워라.
달 아래 쓰러지니 깊은 밤은 바다 런 듯
창망(蒼茫)한 물결소리 초옥(草屋)이 떠나간다.
2
조각배 노 젓듯이 가얏고를 앞에 놓고
열 두 줄 고른 다음 벽에 기대 말이 없다.
눈 스르르 감고 나니 흥이 먼저 앞서노라
춤추는 열 손가락 제대로 맡길랐다.
구름 끝 드높은 길 외기러기 울고 가네
은하 맑은 물에 뭇별이 잠기다니.
내 무슨 한이 있어 흥망도 꿈속으로
잊은 듯 되살아서 임 이름 부르는 고.
3
풍류 가얏고에 이는 꿈이 가이 없다
열 두 줄 다 끊어도 울리고 말 이 심사라.
줄줄이 고로 눌러 맺힌 시름 풀이랏다
머리를 끄덕이고 손을 잠깐 쓸쩍 들어
뚱뚱 뚱 두두 뚱뚱 흥흥 응 두두뚱뚱
조격(調格)을 다 잊으니 손끝에 피맺힌다.
구름은 왜 안 가고 달빛은 무삼일 저리 흰고
높아 가는 물소리에 청산이 무너진다.
- 조지훈 作 <가야금> 가야금 소리의 또 하나의 매력은 한(恨)이다. 가야금의 아름다운 소리에는 가슴을 떨리게 하는 한(恨)이 있다. ‘아름다움과 한’. 서로 어울리지 않는 조합 같지만 가야금은 그 둘을 완벽하게 담아낸다. 가야금은 그래서 사람의 지혜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영물(靈物)이다.
춤추는 열 손가락에 가야금을 맡기니 은하수 맑은 물에 뭇별이 잠기고, 흥망성쇠마저 꿈속으로 사라진다. 시인은 가야금이 가져다 준 경지에 고개를 숙인다. 한 발 더 나아가 시인은 열두 줄이 다 끊어져도 소리가 울릴 것이라고 말한다. 맺힌 시름은 흰 달빛 아래서 반짝이고 물소리에는 청산이 무너진다.
가야금에는 오래된 전설이 있다. 악성 우륵에 얽힌 전설이다. 우륵은 원래 가야(伽倻)국 가실왕의 궁중 악사였다. 가실왕은 한국형 가야금을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인물이다. 우륵은 왕의 딸인 연지공주의 가야금 선생님이 되는데, 이때 우륵과 연지공주는 사랑에 빠졌다고 전한다.
우륵은 후원자였던 가실왕이 사망하자 정치적 위기에 처한다. 우륵은 결국 가야를 떠나 신라로 망명을 가고 그곳에서 신라 진흥왕에게 실력을 인정받아 전통 음악 발전에 큰 공을 세운다.
세월이 흘러 가야는 신라에 멸망해 예속되고 우륵은 뒤늦게 연지공주를 찾아 헤맨다. 하지만 연지공주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았다. 우륵은 연지공주에 대한 그리움을 가야금으로 연주했는데 그 선율이 망한 가야국 사람들의 심금을 오랫동안 울렸다고 한다.
의정부 가야금 축제
북으로
울고 간다 기러기
남방의
대숲 밑
뉘 휘여 날켰느뇨
앞서고 뒤섰다
어지럴 리 없으나
가냘픈 실오라기
네 목숨이 조매로아
- 김영랑 作 <가야금> 김영랑이 1939년에 발표한 시다. 김영랑은 가야금 소리를 들으며 남방의 대숲을 떠나 북으로 울고 가는 기러기를 떠올린다. 가야금의 음색은 영랑에게 쓸쓸함과 가련함의 상징으로 남았나 보다. 이 시에서 눈길을 끄는 표현이 ‘조매로아’라는 표현인데 국어사전에도 안 나오는 단어다. 몇몇 국문학 연구자료를 살펴보니 이 표현을 영랑이 즐겨썼는데 ‘조마조마하다’는 뜻으로 풀이하고 있었다. 가냘픈 가야금 열두 줄이 흔들리는 걸 보면서 영랑의 마음은 조마조마했던 것이다. 가야금에 얽힌 비운의 사연은 또 있다. 가야금과 쌍벽을 이류는 현악기인 거문고는 고악보가 상당히 많이 남아 있다. 하지만 가야금 고악보는 10종 내외만 남아있을 뿐이다. 이유가 뭘까.
▶여성의 악기였던 가야금의 슬픈 비사 거문고는 남성의 악기였지만 가야금은 여성의 악기였기 때문이다. 거문고는 양반과 중인 남성들의 악기였던 반면 가야금은 주로 기생 등 여성의 악기였다. 이 때문에 가야금은 남성중심 사회에서 주류가 될 수 없었다. 기록이나 계승, 연구, 악기 계발 등 모든 면에서 뒷전일 수밖에 없었다. 여성들의 구전과 손기술로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온 것이 가야금의 역사였던 셈이다.
하지만 가야금 소리는 단 한 번도 끊이지 않고 면면히 이어져왔다. 어떤 역사적 고난도 박대도 그 아름답고 한스러운 소리의 맥을 끊지 못했다. 현대를 대표하는 가야금 연주자 황병기 선생을 생전에 몇 번 뵌 적이 있었다. 선생은 필자에게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가야금 소리를 듣자마자 가야금을 꼭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단 한 번의 연주로 법관을 꿈꾸던 촉망받는 소년을 매혹시킬 만큼 가야금에는 간단치 않는 마력이 있었다.
선생은 “가야금 소리 속에는 우리 옛 어른들의 한과 이야기가 있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가야금은 바로 그 ‘한과 이야기’로 지금도 우리를 흔든다.
[허연 매일경제 문화스포츠부 선임기자·시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6호 (2021년 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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