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민우의 명품 와인 이야기] 프리미엄 와인의 원조 샤토 라피트 로칠드
입력 : 2020.11.03 14:44:27
-
최근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미국 와인 소비가 크게 늘었다. 통계에 따르면 오는 9월까지 미국 와인의 수입은 금액 기준으로 55.7% 증가하였다. 이는 시장 점유율 1위와 2위로, 각각 2.5%, 7.6% 성장한 프랑스와 칠레 와인과 비교해 뚜렷하게 차이를 보이는 수치이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미국 와인은 이탈리아 와인을 제치고 시장점유율 3위로 올라서게 되었다. 최근 미국 와인의 소비가 저가 와인이 아닌 프리미엄 와인을 중심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것도 흥미로운 특징이다. 과거에는 고급 와인은 당연히 프랑스, 특히 보르도 와인이라는 의식이 강했다. 좋은 와인을 마시는 자리에는 으레 히딩크 와인으로 불리는 ‘샤토 탈보’나 ‘샤토 린쉬 바즈’와 같은 보르도 와인이 빼놓지 않고 등장하였다. 당시 미국 와인 소비는 콩코드 와인이 주도하였는데, 콩코드라고 불리는 북미 자생포도로 양조하여 설탕을 첨가한 스위트 와인이다. 콩코드 와인은 와인 애호가들이 좋아하는 달지 않은 드라이 와인과는 많은 거리가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케이머스’ ‘바소’ ‘오퍼스원’ ‘텍스트북’ 같이 미국 샌프란시스코 인근의 나파 밸리(Napa Valley)에서 생산된 프리미엄 와인들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는 유럽이나 혹은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 보기 힘든 독특한 현상이다.
프랑스 보르도, 칠레, 그리고 미국 나파 밸리로 이어지는 우리나라 프리미엄 와인의 유행은 얼핏 달라 보이지만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바로 카베르네 소비뇽이라고 불리는 포도를 중심으로 한 보르도 블렌딩 와인이라는 점이다. 칠레 프리미엄 와인은 처음부터 프랑스의 영향을 받아 보르도식 블렌딩이 대세였으며, 우리나라에서 인기 있는 나파 밸리산 프리미엄 와인들은 주로 카베르네 소비뇽만으로 만든 와인들이다.
샤토 라피트 로칠드 프리미어
포도의 왕으로 불릴 만한 카베르네 소비뇽도 원조가 있다. 바로 보르도 5대 샤토 중 하나인 ‘샤토 라피트 로칠드(Chateau Lafite Rothschild)’이다. 미국 나파 밸리나 호주에는 카베르네 소비뇽을 90% 이상, 혹은 100%까지 사용하는 와이너리들이 많지만 카베르네 소비뇽의 원산지인 프랑스 보르도에는 오히려 이 포도만 사용하여 와인을 만드는 곳은 그렇게 흔하지 않다. 아마도 기술적인 어려움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오랫동안 내려온 블렌딩의 전통 때문에 보르도 와인은 반드시 블렌딩 와인이어야 한다는 정서가 양조가들 사이에 심어져 있다. 하지만 샤토 라피트 로칠드는 오래전부터 카베르네 소비뇽 위주의 와인을 만들어 왔는데, 특히 최근에는 90% 이상 블렌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역사적으로도 1994년에는 99%, 전설적인 빈티지인 1961년산에는 카베르네 소비뇽을 100% 사용하였다.
카뤼아데 드 라피트
5대 샤토라고 불리는 다섯 개의 1등급 와인 중에서도 샤토 라피트 로칠드가 가장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무엇보다 중국 시장에서의 폭발적인 인기를 높은 가격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을 수 있는데, 그 때문에 샤토 라피트 로칠드의 품질과 명성을 폄하하는 와인 애호가나 전문가들도 있다. 하지만 중국 시장에서의 인기는 결과일 뿐이며, 샤토 라피트 로칠드는 오래전부터 최고의 와인 중에 하나였다. 와이너리를 소유한 로스차일드 가문의 명성, 세계 최고의 양조팀, 세계 최고의 카베르네 소비뇽을 수확할 수 있는 포도밭은 모두 샤토 라피트 로칠드 품질의 원천이다. 샤토 라피트 로칠드는 레드 와인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는 와인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로스차일드 가문이 포도원을 인수한 150주년을 기념하는 만찬에서 1868년산 라피트 로칠드 와인이 서브되어 많은 전문가들을 놀라게 했다. 아마도 전 세계에서 150년 된 와인을 자신 있게 서브할 수 있는 양조장은 거의 찾기 어려울 것이다.
[이민우 와인칼럼니스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2호 (2020년 11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