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민우의 명품 와인 이야기] 리더들에게 추천하는 올해의 10대 명품 와인

    입력 : 2020.10.12 15:57:32

  • 코로나19가 지속되면서 와인 소비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얼마 전 어느 국내 언론이 와인 판매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프랑스의 한 농가가 와인을 손세정제로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고 보도한 일이 있다. 뉴욕타임즈를 인용한 이 기사는 사실 조금 과장된 면이 있다. 유럽의 어느 와이너리도 와인을 손세정제로 만들지 않는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 전 세계의 와인 생산량이 증가하며 심지어 공급이 수요를 넘어가는 현상이 발생하면서, 유럽연합은 CAP(Common Agricultural Policy)라는 농업 정책을 통해 와인 생산을 규제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유럽의 와인 생산자들은 단위 면적에서 생산된 와인이 그해 유럽 연합의 기준을 넘을 경우, 남는 와인을 증류 공장에 저렴한 가격에 팔아야 한다. 이 와인들은 순수한 알코올로 만들어져 여러 용도로 사용되는데, 아마도 이 중의 일부가 손세정제로 만들어질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소비자들이 불특정 다수가 모이는 자리를 피하게 되면서, 음식점과 술집 모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반대로 가정에서의 주류 소비가 늘면서 어떤 섹터에서는 와인 판매가 증가하기도 하였다. 프랑스 아그리메르라는 정부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4월까지 프랑스 와인의 수출액은 전년 대비 36% 하락하였다고 한다. 반면 우리나라의 와인수입은 전년 대비 5.6% 증가하였다. 와인의 종류나 유통구조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코로나19가 와인의 소비를 늘렸다거나 혹은 줄였다고 판단하기는 아직 어렵다. 하지만 단 몇 병이라도 집에 보관하며 시간을 두고 즐기는 컬렉터들에게는 주목할 만한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지난 몇 년간 이어진 세계적인 와인 트렌드를 꼽는다면, 프랑스 부르고뉴산 고급 와인 수요가 크게 늘면서 가격이 상승하였다는 점과 지난 2012년 코펜하겐의 노마 레스토랑에서 시작한 내추럴 와인 붐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세계의 고급 와인은 크게 프랑스 보르도 스타일의 블렌딩 와인과 부르고뉴 스타일의 싱글 빈야드 와인으로 나뉘게 된다. 만약 내가 1000병의 와인을 생산할 수 있는 포도밭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보르도에서는 이곳에서 단 한 가지 와인 혹은 두 가지의 와인을 각각 500병씩 만들지만, 부르고뉴에서는 포도밭의 미세한 차이에 따라 많으면 10가지 이상의 서로 다른 와인을 조금씩 만든다는 차이가 있다. 그러다보니 부르고뉴의 와인들은 종류마다 소량 생산되며 우리나라에도 매우 적게 심지어 종류당 대여섯 병만 수입되는 와인도 있다. 희소한 와인들은 향후 가격이 오를 가능성도 높지만, 지난 몇 년간 부르고뉴 와인의 가격이 많이 올랐기 때문에 이미 한계에 왔다는 의견도 있다.

    최근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내추럴 와인은 그 이름 때문에 종종 유기농 와인과 혼동될 때가 많다. 유기농 와인이란 다른 유기농 농작물들처럼 화학약품을 사용하지 않고 재배한 포도로 만든 와인을 의미한다. 반면 내추럴 와인은 양조 과정에서 이산화황을 거의 쓰지 않은 와인을 뜻한다. 내추럴 와인은 모두 유기농 와인이지만, 유기농 와인은 내추럴 와인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이산화황은 아주 오래전부터 와인의 발효를 멈추고 부패되는 것을 방지하는 데에 사용되어 왔다. 포도를 수확한 후 양조장에 가져갈 때부터 와인을 다 만들고 병입할 때까지 양조 과정에서 가장 요긴하게 쓰이는 첨가제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요리에서 불(火)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산화황을 첨가하는 것이 건강에 좋지 않다고 이야기하지만, 어떤 전문가들은 건강과 전혀 상관이 없다고 한다. 이산화황이 알코올보다 건강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내추럴 와인은 독특한 맛과 향기 때문에 싫어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사람으로 극명하게 나뉘는 편이다. 메르씨엘의 윤화영 셰프에 따르면, 내추럴 와인은 발효음식과 잘 어울리는 편인데 유럽에서도 발효음식이 늘면서 내추럴 와인이 인기를 끌게 되었다고 한다.

    올해 우리나라 와인 시장의 독특한 특징으로는 와인 대중화와 미국 와인의 성장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와인 시장의 성장을 주도하고 있는 와인은 미국산 와인이다. 올 7월까지 미국 와인수입은 작년 대비 53.7%나 증가하였다. 와인은 문화적인 상품으로, 대체로 아시아 시장에서 미국 와인은 유럽 와인에 비해 별로 인기가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소비자들은 미국 와인을 편견 없이 받아들이는 편이다. 전 세계와 우리나라의 와인 트렌드를 반영하여 ‘리더에게 추천하는 올해의 10가지 와인’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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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얀 뒤리유 레 퐁(Yann Durieux Les Ponts) 2018년 작고한 프랑스의 양조가 앙리 프레데릭 로크는 부르고뉴 내추럴 와인의 아버지라고 부를 만하다. 내추럴 와인은 비교적으로 덜 알려진 와인 생산지인 오스트리아나 슬로베니아 혹은 프랑스 안에서도 쥐라 지역이나 보졸래 등의 와인이 유명하다. 하지만 앙리 프레데릭은 세계 최고의 와인 중 하나인 로마네 콩티의 공동 소유주인 동시에, 본인이 직접 부르고뉴에 프리외레 로크라고 하는 내추럴 와인을 만들어 내추럴 와인의 품격을 높였다.

    프레데릭 로크의 와인은 가격도 비싸지만, 국내에 수입되는 수량도 몹시 적어 구하기 어려운 희귀 와인이다. 얀 뒤리유는 앙리 프레데릭 로크의 정신적인 계승자로 그의 밑에서 일을 배운 후 지난 2010년 독립하여 본인의 와인을 만들고 있다. ‘레 퐁’은 다리라는 뜻의 프랑스어다. 프랑스 부르고뉴산 레드 와인으로, 내추럴 와인 전문 수입회사인 뱅베에서 수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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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르그 브레츠 바이스브루군더(Jorg Bretz Weissburgunder) 오스트리아에서 만드는 내추럴 오렌지 와인이다. 와인은 색에 따라 레드와 화이트로 크게 나뉜다. 색깔의 차이는 원료인 포도와 와인 양조 방식의 차이에서 온다. 포도를 수확하여 바로 즙을 짜 와인을 만들면 화이트 와인이 된다.

    청포도뿐만 아니라 적포도 역시 바로 짜 와인을 만들면 하얀색을 띠는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샴페인이다. 거꾸로 적포도를 수확하여, 적당한 온도에 두면 포도껍질의 색과 맛이 포도즙에 녹아들어 레드 와인이 만들어진다. 오렌지 와인은 청포도를 수확하여 마치 레드 와인을 만드는 것처럼 껍질과 함께 양조한 와인으로 누구나 편하게 즐길 수 있다.

    내추럴 와인 전문회사인 네이처 와인에서 수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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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에르-뱅상 지라르댕 뫼르소(Pierre-Vincent Girardin Meursault) 우리나라에서도 개봉한 <부르고뉴에서 찾은 인생>이란 영화는 뫼르소의 와인 메이커인 훌로 와이너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뫼르소는 세계 최고급 화이트 와인 생산지로, 최근 와인 경매 시장을 가장 뜨겁게 달구고 있는 지역이다. 훌로를 포함하여 코슈 듀리, 라퐁, 아르노 엉트 등에서 만드는 와인들은 가격도 몹시 비쌀 뿐만 아니라 현지에서도 구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다행히 뫼르소에는 그 외에도 좋은 생산자들이 아직 많다. 피에르 뱅상은 2017년에 처음 자신의 와인을 만들기 시작한 약관의 와인 메이커로, 그의 아버지인 뱅상 지라르댕의 뒤를 잇고 있다. 뱅상 지라르댕은 뛰어난 양조가이자 비즈니스맨으로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2012년 포도밭과 비즈니스 대부분을 모두 장피에르 니에에게 넘기고 은퇴하였다. 당시 언젠가 자신의 뒤를 이어 와인 메이커가 될지 모르는 아들을 위해 4.5ha의 포도밭을 남겨두었는데, 피에르 뱅상은 멋지게 성장하여 아버지의 뒤를 잇게 되었다.

    부티크 와인 전문수입사인 댓와인에서 수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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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텍스트북 나파 밸리 카베르네 소비뇽(Textbook Napa Valley Cabernet Sauvignon) 올해 미국 와인의 수요가 크게 늘면서 수입되는 와인들도 매우 다양해졌다. 과거에는 콩코드 와인이나 화이트 진판델처럼 달콤하고 저렴한 와인들이 많이 판매되었다면, 최근에는 프리미엄 와인들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2004년 조나단 페이 부부에 의해 설립된 텍스트북은 유럽 와인 풍미의 캘리포니아 와인을 표방하고 있다. 텍스트북의 와인들은 산도가 좋아 탄닌과의 균형이 좋다. 매년 고속 성장을 거듭하여 작년에는 마크햄 와이너리를 소유한 ‘디스팅귀시드 빈야드’에 인수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작년에 비해 2배 이상 성장하였다고 한다. 고급 와인 전문 수입사인 CSR에서 수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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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크 패밀리 나파 밸리 카베르네 소비뇽(Frank Family Napa Valley Cabernet Sauvignon)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을 모두 잘 만드는 생산자는 유럽이나 신대륙 모두에서 찾기가 쉽지 않다. 오랜 역사를 가진 경험 많은 와이너리 중에서는 두 와인을 모두 잘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으나, 역사가 짧은 와인 생산자들은 아쉬움이 느껴질 때가 많다.

    프랑크 패밀리는 디즈니의 임원이었던 리치 프랑크가 1993년에 설립한 와이너리로 유럽 와이너리들에 비해 비교적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레드 와인과 화이트 모두 좋은 품질의 와인을 만들고 있다.

    미국 와인 전문회사인 와인투유 코리아에서 수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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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에티 바롤로 로케 디 카스티글리오네(Vietti Barolo Rocche di Castiglione) 이탈리아의 피에몬테 지역은 네비올로 포도로 만드는 바롤로 와인으로 유명하다. 네비올로는 안개라는 뜻을 가진 이탈리아어 네비아에서 온 이름이다. 이 지역들의 포도밭에는 가을부터 짙은 안개가 끼는데, 이 안개가 뜨거운 태양을 막아주어 포도의 페놀 성분이 잘 익게 해준다고 한다.

    덕분에 바롤로는 현대의 고급 와인에서 요구되는 가치를 잘 표현해준다. 비에티는 바롤로 지역에 처음으로 싱글 빈야드 개념을 도입하여 세계시장에 선보인 포도원이다.

    로케 디 카스티글리오네라는 와인이 유명하지만, 이곳에서 생산되는 바롤로 와인들은 모두 일정한 품질을 유지하고 있다. 몬테스와 조셉 펠프스 등을 수입하는 중견 수입사인 나라셀라에서 수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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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토 팔머(Chateau Palmer) 프랑스 보르도의 와인 등급인 그랑크뤼 등급은 1855년 나폴레옹 3세에 의해 처음 만들어진 이후 지금까지 큰 변화 없이 이어지고 있다. 1등급에 속한 5개의 와인들은 5대 샤토라고 불리며, 전 세계 최고급 와인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품질뿐만 아니라 5대 샤토 대표들의 인품이 와인 가격에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샤토 마고의 사장 폴 몽탈리에가 지난 2016년 사망하고, 샤토 라피트 로칠드를 이끌어온 크리스토프 살랑도 2017년 은퇴하면서, 5대 샤토의 이미지에도 조금씩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 최근 프랑스 부르고뉴산 고급 와인들의 경매 가격이 보르도 와인을 추월한 배경에 5대 샤토의 카리스마가 예전만 못하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 명성이 당장 무너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슈퍼 세컨드라고 불리는 2등급 혹은 3등급의 고급 와인들에게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샤토 팔머는 샤토 마고에 바로 이웃한 포도원으로 종종 샤토 마고보다 좋은 품질의 와인을 만들어 왔다. 2004년 34살의 나이로 샤토 팔머 사장에 취임한 토마 뒤루는 보르도의 가장 혁신적이고 진취적인 인물 중 하나이다. 샤토 팔머는 오픈 마켓 와인으로 신세계 LNB, 롯데주류 등 보르도 와인을 수입하는 대형 회사에서 수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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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 핸즈 벨라스 가든(Two Hands Bella’s Garden)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와인 평론가였던 로버트 파커는 지난 2019년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하였다. 2012년 그의 회사인 와인 어드보켓을 싱가포르의 투자자에게 넘기면서 예정된 결과였다. 로버트 파커의 점수에 따라 전 세계 와인 가격이 출렁이기도 하였는데, 그의 은퇴는 와인 시장의 가장 중요한 가이드라인이 사라진 것과 같았다. 최근에는 앨런 미도우처럼 와인 생산지역에 따라 전문화된 평론가들이 인기가 있으나 미국의 와인 잡지 와인 스펙테이터는 여전히 전 분야에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매년 발표하는 와인 스펙테이터의 Top100 와인은 와인 애호가들의 수집 기준이 되어 왔다. 1999년에 설립된 호주의 신생 와이너리 투핸즈는 설립 후 4년째인 2003년부터 2012년까지 10년 연속으로 와인 스펙테이터 100대 와인에 이름을 올리며 세계 시장에 이름을 알렸다. 신세계 LNB에서 수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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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샴페인 레클레르 브리엉(Champagne Leclerc Briant) 1872년 처음 설립된 레클레르 브리엉은, 샴페인 지역에서 가장 먼저 유기농을 시작한 샴페인 하우스이다. 하지만 2010년 회사를 이끌던 파스칼 레클레르가 사고로 사망한 뒤, 그가 남긴 포도밭은 상속 과정에서 다른 샴페인 하우스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2012년 지금의 소유주이자 하버드 대학교수인 드니즈 뒤프레 부부가 껍데기만 남은 레클레르 브리엉을 인수하였고, 최고의 유기농 샴페인 컨설턴트인 에르베 제스탕과 돔 페리뇽의 포도 구매 책임자였던 프레데릭 자이메를 스톡옵션을 주며 고용하였다. 이것이 신의 한 수가 되었다. 프레데릭 자이메가 인근의 유기농 재배자로부터 최고 품질의 포도를 구매하며 시간을 버는 사이에 에르베 제스탕은 새로운 유기농 포도밭을 일구며 레클레르 브리엉의 미래를 준비해 왔다. 샴페인 및 부르고뉴 와인 전문 수입사인 비티스에서 수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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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이엉스 크레망 드 디(Jaillance Cremant de Die) 와인 속의 거품들은 마치 별들이 반짝이는 것처럼 아름답게 빛난다. 그래서 이런 거품이 들어간 와인들은 스파클링 와인이라고 부른다. 이 대명사는 샴페인이지만 모든 스파클링 와인을 샴페인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샴페인 생산자 연합에서 오로지 샴페인 지역에서만 나온 와인을 샴페인이라 부를 수 있게 상표로 등록했기 때문이다. 프랑스에는 샴페인과 똑같이 2차 발효를 통해 스파클링 와인을 만드는 지역들이 있다. 그 중 뛰어난 품질의 스파클링 와인을 크레망이라고 부른다. 자이엉스 크레망 드 디는 프렌치 알프스에 속하는 ‘디’ 마을에서 생산된 와인으로, 자이엉스는 지역 농부들이 뜻을 모아 설립한다. 이 지역에서는 클래렛이라는 와인도 생산되는데, 클래렛은 포도의 이름으로 다른 곳에서는 모스카토 혹은 뮈스카라고 불린다. 클래렛 와인은 모스카토 다스티의 고급형이라고도 볼 수 있다. 비노테크에서 수입하고 있다.

    [이민우 와인칼럼니스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1호 (2020년 10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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