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민우의 명품 와인 이야기] 프랑스 보르도에서 가장 오래된 포도원 샤토 오브리옹

    입력 : 2020.09.02 16:21:59

  • 올해 일반 편의점의 와인 매출이 전년에 비해 3배 이상 성장했다고 한다. 전염병의 공포로 식당보다 집에서 와인을 마시는 사람이 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시에 다양한 와인을 구비한 전문점이 아닌 편의점에서의 와인 매출이 늘었다는 점은 와인 소비가 대중화되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1인당 연간 와인 소비량은 1ℓ를 조금 넘는 정도로 유럽 선진국의 40분의 1, 이웃 일본과 비교해도 3분의 1 정도의 수준이다. 10년 전 세계 유수의 와인 업자들은 한국의 소비자들이 와인 시장의 성장을 주도할 것으로 믿었으나, 그동안 실제 성장속도는 매우 더뎠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편의점을 통한 와인 소비의 증가는 우리나라 와인 시장의 잠재력이 조금씩 구현되고 있는 증거로 볼 수도 있다.

    가정에서의 와인 소비가 크게 늘어난 반면 최근 외식, 특히 기업 행사 등의 B2B 형태의 와인 소비는 크게 줄었다. 와인 구매는 자가 소비 외에도 미술품처럼 교환 가치를 고려한 수집 그리고 선물이나 접대를 위한 용도로도 쓰인다. 가령 중국에서 프랑스산 명품 와인 구매가 늘어난 이유가 불투명한 미래를 위해 재산의 일부로 보관하기 위해서라는 해석이 있을 정도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한때 설과 추석 양대 명절의 선물용 세트가 연간 와인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적도 있다.

    좋은 식당에서 좋은 음식과 와인을 대접하는 일은 서양뿐만 아니라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비즈니스 혹은 정치, 외교적으로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한 용도로 사용된다. 음식과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편안한 분위기에서 친밀한 관계를 쌓기도 하고, 다양한 메시지가 들어가 있는 와인을 설명하면서 자신의 의도를 간접적으로 전달할 수도 있다. 해외의 유명인사가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때, 혹은 국제적인 행사에서 어떤 와인이 서비스되었는지는 언론에 기사화될 정도로 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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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접대는 오스트리아의 재상 메테르니히의 주도로 나폴레옹 이후의 세계 질서를 논의하기 위해 조직되었던 비엔나 회의(Con gress of Vienna)에서 일어났다. 비엔나 회의는 결론 없이 지루하게 진행된 회의를 오스트리아의 장군인 리뉴 공이 비꼬아 말한 “회의는 춤춘다”라는 말로 유명하다. 이 회의에 프랑스를 대표하여 참석한 탈레랑(Talleyrand)은 참석자들에게 훌륭한 요리와 와인을 대접하며 점차 발언권을 높여 패전국인 프랑스를 제외한 4개국의 체계에서, 프랑스가 참여하는 5대 강국의 협조체제로 바꾸는 데 성공하였다. 당시 탈레랑이 준비한 와인이 프랑스 최고의 명품 와인 중 하나인 ‘샤토 오브리옹(Chateau Haut Brion)’이란 이야기가 있으나 확인된 사실은 아니다. 1814년 9월부터 9개월 동안 열린 회의 기간을 고려할 때, 만약 샤토 오브리옹이 서브되었다면 그 비용만 하더라도 오늘날을 기준으로 수십억원에 달했을 것이다.

    능수능란한 외교가였던 탈레랑은 1801년부터 실제로 샤토 오브리옹을 소유하였다. 하지만 나폴레옹이 황제로 등극한 1804년 샤토와 포도밭을 처분하였다. 그가 관직에서 사임하고 나폴레옹의 곁을 떠난 것은 1807년이지만, 이미 당시부터 나폴레옹의 몰락을 예상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후 샤토 오브리옹은 몇 사람의 주인을 거쳐, 1935년 미국의 은행가이자 프랑스 주재 미국 대사를 지낸 클래런스 딜롱에게 인수되었다. 클래런스 딜롱은 그의 딸인 조안이 룩셈부르크 왕자와 결혼할 때, 샤토 오브리옹을 그녀의 결혼 지참금에 포함시켰다. 당시 조안은 두 번째 결혼이었고 룩셈부르크 샤를은 초혼이었다고 전해진다. 현재 샤토 오브리옹은 조안의 아들인 로버트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샤토 오브리옹은 보르도에서 가장 오래된 포도원 중에 하나이다. 샤토 오브리옹의 포도밭은 로마 시대에 조성되었다고 전해지며,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는 1423년에 와인을 만들기 위한 포도나무가 존재하였다고 확인된다. 와이너리로서의 샤토 오브리옹은 그로부터 100년 후인 1533년 장 드 퐁탁(Jean de Pontac)에 의해 설립되었다. 1525년 그의 부인인 잔 드 벨롱(Jeanne de Bellon)이 결혼 지참금으로 가져온 포도밭에 와이너리를 설립하게 되었다고 하니 역사의 반복이 수백 년 만에 재현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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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토 오브리옹은 보르도 안에서도 그라브(Grave) 지역에 위치해 있다. 보르도는 크게 그라브와 메독(Medoc) 그리고 생테밀리옹(Saint Emilion) 3개의 지역으로 나뉘며, 그 거리도 상당히 멀어서 동쪽 생테밀리옹의 끝에서 서쪽 메독의 끝까지 자동차로 2시간 이상 소요된다. 3개의 생산지 중에 가장 유명하고 가장 많이 거래되는 와인들은 메독(Medoc)에서 생산된다. 와인판 미쉐린 가이드인 그랑크뤼 등급의 최상급 포도원 5개 중 4곳이 메독 지역에 위치해 있으며, 유일하게 샤토 오브리옹만 그라브 지역에 위치해 있다. 그라브 지역은 보르도에서 가장 오래된 생산지역으로 보르도 와인의 별명이자 영국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클라레(Claret)의 원조이다. 오늘날 그라브 지역의 위상이 메독보다 떨어지는 이유는 행정구역을 정비하며 품질이 떨어지는 와인을 생산하는 남쪽 지역을 그라브의 생산지 명칭에 포함시켜 그라브 지역의 평균적인 품질과 이미지를 떨어트렸기 때문이다. 이후 북부에 자리 잡은 전통적인 고급 와인 생산자들의 노력에 의해 그라브 지역은 1987년 다시 남쪽의 그라브와 북쪽의 페삭 레오냥(Pessac Leognan) 지역으로 분할되었다. 샤토 오브리옹도 그 이후로 페삭 레오냥의 이름으로 출시되고 있다.

    샤토 오브리옹의 명성은 행정의 혁신과 함께 제2의 샤토 오브리옹을 꿈꾸는 투자가들을 이 지역에 유혹하기도 하였다. 1990년에는 스포츠 용품 사업으로 큰돈을 번 다니엘 카티아르(Daniel Cathiard)가 인근의 샤토 스미스 오 라피트를 인수하였으며, 1998년 미국의 은행가인 밥 윌머스는 샤토 오바이를 인수하였다. 이 포도원들은 품질은 뛰어나지만, 샤토 오브리옹보다는 훨씬 저렴한 가격의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샤토 오브리옹을 좋아하지만, 가격이 부담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선택권이 생긴 셈이다. 또한 지역 전체의 발전은, 메독에 위치한 다른 1등급 포도원에 비해 유행이 지난 와인으로 이야기되었던 샤토 오브리옹에게도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샤토 오브리옹은 매우 부드러운 와인이지만, 이 와인의 진정한 매력은 오랫동안 숙성할 수 있는 잠재력에 있다. 샤토 오브리옹 1959년산은 영화 <매트릭스 리로디드>에도 등장한다. 영화 속에 메로빈지언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샤토 오브리옹 1959년산, 아주 뛰어난 와인이지. 나는 프랑스 와인을 좋아해. 마치 내가 프랑스 말을 좋아하는 것처럼. 프랑스말은 환상적인 말이야. 특히 저주를 할 때는 말이지.”

    [이민우 와인칼럼니스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0호 (2020년 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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