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기영 칼럼] 전월세 대란의 경제학

    입력 : 2020.08.25 09:16:38

  • 땜질처방식 부동산 정책실험에 집값, 전·월세 폭등 급격한 전세-월세 전환 땐 무주택 서민 고통만 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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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악의 부동산 대란에 집 없는 서민 마음은 피멍이 든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는 거래절벽, 전·월세 폭등과 규제의 악순환을 낳는다. 무주택자 주거의 질은 나빠진다. 집주인 재산권과 세입자 주거권이 충돌한다. 곳곳에서 대립, 갈등, 마찰이 커진다. 주거취약계층은 월세 전환에 내몰린다. 신혼부부, 사회초년생은 발을 동동 구른다. 내 집 마련 꿈은 점점 멀어진다. 서민의 고통은 분노의 포도가 된다. 전세는 한국의 독특한 주택 임대차 관습이다. 전세는 140여 년 전 한양(서울)에서 태동했다. 산업화, 도시화를 거치며 임대차 시장에서 보편화된 제도가 됐다. 전국 전·월세 가구 중 전세 비율은 39%선이다. 전세는 세입자가 집값의 50~70%를 보증금으로 내고 집을 사용하는 임대방식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전세보증금은 2018년 총 687조원으로 추정된다. 세계적으론 월세가 일반적이다. 인도와 볼리비아에 전세와 유사한 제도가 있지만 미미한 수준이다.

    전세는 사금융이다. 전세는 집주인과 임차인 간 자금 부족을 해소해주는 계약이다. 전세보증금은 집주인이 만기에 돌려줘야할 빚이다. 세입자에게 전세금은 집주인에게 맡긴 무수익 자산이다. 세입자는 집값보다 낮은 가격으로, 월세보다 저렴하게 집을 사용할 수 있다. 주거취약층에겐 전세가 내 집 마련 공식이자 주거 상승의 사다리 역할을 했다. 무주택자가 향후 집을 살 자금을 마련하는 디딤돌로 활용됐다. 많은 서민이 월세를 내다 돈을 모아 전세로 갈아타고 ‘전 생애 적금통장’ 격인 내 집을 마련했다. 세입자는 전세금에 대한 이자를 포기하는 기회비용을 감수한다. 계약기간 뒤 전세금은 모두 돌려받는다. 집값이 안정되고, 금리가 싼 전세 대출을 받아, 오래 살면 살수록 세입자에게 유리하다. 한마디로 ‘꿀복지’라는 얘기다.

    집주인은 집을 수리하고 재산세를 내야 하지만 집값 상승 시 자본이득을 얻을 수 있다. 집주인은 임차료 대신 전세 보증금을 받아 예금이나 투자를 해 금융 수익을 얻는다. 고금리 시대에는 보증금을 굴려 짭짤한 이득을 챙길 수 있었다. 하지만 제로금리 시대 몇 푼 되지 않는 쥐꼬리 예금이자로는 재산세를 내기조차 힘든 상황이다. 세금폭탄을 맞는 집주인은 하우스 푸어 신세가 된다. 그래서 집값 앙등, 보유세 인상에 편승해 집주인이 전세금을 확 올리거나 전세를 반전세·월세로 바꾸려는 현상이 뚜렷해진다.

    월세는 전세보다 세입자 주거비 부담이 1.5~2배 이상 크다. 세입자에게 월세는 다달이 사라지는 ‘피 같은 돈’이다. 월세를 내는 세입자 부담은 일반적으로 소득의 25%에 달한다. 전세금을 월세로 바꿀 때 적용하는 전·월세 전환율은 5월 현재 전국 평균 5.9%다. 은행 전세대출 금리보다 2배 이상 높다. 전세에서 월세로 밀려나는 세입자의 등골이 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시장 가격을 함부로 손대면 탈이 난다. 그 부담은 고스란히 경제적 약자에게 전가된다. 주택 수급 불균형 상태에서 전세를 활용한 갭투자와 가수요, 패닉바잉(공황 매수)이 성행하면서 서울 집값이 앙등했다. 보유세·거래세 인상, 분양가 상한제와 함께 임대차 3법 등 정책실험이 이어졌다. 전세 기본 계약기간이 2+2년으로 늘어난다. 전세금 인상률은 5% 이내로 묶였다. 정부가 정한 전·월세전환율도 4%에서 2.5%로 낮추는 조치가 시행된다. 하지만 정부는 신뢰를 잃었다.

    무모한 땜질처방은 시장을 더 왜곡시킬 뿐이다. 집값은 수리상태나 층, 향에 따라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전·월세전환율을 강제로 내리면 전세금은 더 오른다. 기존 세입자와 새로운 세입자 사이에 이중가격이 형성된다. 중·저가 주택부터 전세가 소멸한다. 전세 매물이 자취를 감추고 전셋값은 더욱 폭등한다. 급격한 전세 소멸-월세 전환에 혼란이 커진다. 해법은 수요억제 정책 남발이 아닌 재건축·재개발 정상화에 있다. 그리고 임대차 시장을 안정시키려면 양질의 임대주택을 충분한 규모로 확대해야만 한다.

    [홍기영 월간국장·경제학 박사 매경LUXMEN 편집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19호 (2020년 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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