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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영 칼럼] 전월세 대란의 경제학
입력 : 2020.08.25 09: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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땜질처방식 부동산 정책실험에 집값, 전·월세 폭등 급격한 전세-월세 전환 땐 무주택 서민 고통만 커져
전세는 사금융이다. 전세는 집주인과 임차인 간 자금 부족을 해소해주는 계약이다. 전세보증금은 집주인이 만기에 돌려줘야할 빚이다. 세입자에게 전세금은 집주인에게 맡긴 무수익 자산이다. 세입자는 집값보다 낮은 가격으로, 월세보다 저렴하게 집을 사용할 수 있다. 주거취약층에겐 전세가 내 집 마련 공식이자 주거 상승의 사다리 역할을 했다. 무주택자가 향후 집을 살 자금을 마련하는 디딤돌로 활용됐다. 많은 서민이 월세를 내다 돈을 모아 전세로 갈아타고 ‘전 생애 적금통장’ 격인 내 집을 마련했다. 세입자는 전세금에 대한 이자를 포기하는 기회비용을 감수한다. 계약기간 뒤 전세금은 모두 돌려받는다. 집값이 안정되고, 금리가 싼 전세 대출을 받아, 오래 살면 살수록 세입자에게 유리하다. 한마디로 ‘꿀복지’라는 얘기다.
집주인은 집을 수리하고 재산세를 내야 하지만 집값 상승 시 자본이득을 얻을 수 있다. 집주인은 임차료 대신 전세 보증금을 받아 예금이나 투자를 해 금융 수익을 얻는다. 고금리 시대에는 보증금을 굴려 짭짤한 이득을 챙길 수 있었다. 하지만 제로금리 시대 몇 푼 되지 않는 쥐꼬리 예금이자로는 재산세를 내기조차 힘든 상황이다. 세금폭탄을 맞는 집주인은 하우스 푸어 신세가 된다. 그래서 집값 앙등, 보유세 인상에 편승해 집주인이 전세금을 확 올리거나 전세를 반전세·월세로 바꾸려는 현상이 뚜렷해진다.
월세는 전세보다 세입자 주거비 부담이 1.5~2배 이상 크다. 세입자에게 월세는 다달이 사라지는 ‘피 같은 돈’이다. 월세를 내는 세입자 부담은 일반적으로 소득의 25%에 달한다. 전세금을 월세로 바꿀 때 적용하는 전·월세 전환율은 5월 현재 전국 평균 5.9%다. 은행 전세대출 금리보다 2배 이상 높다. 전세에서 월세로 밀려나는 세입자의 등골이 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시장 가격을 함부로 손대면 탈이 난다. 그 부담은 고스란히 경제적 약자에게 전가된다. 주택 수급 불균형 상태에서 전세를 활용한 갭투자와 가수요, 패닉바잉(공황 매수)이 성행하면서 서울 집값이 앙등했다. 보유세·거래세 인상, 분양가 상한제와 함께 임대차 3법 등 정책실험이 이어졌다. 전세 기본 계약기간이 2+2년으로 늘어난다. 전세금 인상률은 5% 이내로 묶였다. 정부가 정한 전·월세전환율도 4%에서 2.5%로 낮추는 조치가 시행된다. 하지만 정부는 신뢰를 잃었다.
무모한 땜질처방은 시장을 더 왜곡시킬 뿐이다. 집값은 수리상태나 층, 향에 따라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전·월세전환율을 강제로 내리면 전세금은 더 오른다. 기존 세입자와 새로운 세입자 사이에 이중가격이 형성된다. 중·저가 주택부터 전세가 소멸한다. 전세 매물이 자취를 감추고 전셋값은 더욱 폭등한다. 급격한 전세 소멸-월세 전환에 혼란이 커진다. 해법은 수요억제 정책 남발이 아닌 재건축·재개발 정상화에 있다. 그리고 임대차 시장을 안정시키려면 양질의 임대주택을 충분한 규모로 확대해야만 한다.
[홍기영 월간국장·경제학 박사 매경LUXMEN 편집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19호 (2020년 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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