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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마음산책] 어머니의 길
입력 : 2020.08.03 15:4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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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내 고향 강릉에 ‘어머니의 길’이라는, 이름부터 매우 의미 있는 걷는 길 하나가 만들어졌다. 우리말로 하면 어머니의 길이고, 영어로 하면 ‘The Mother’s Road’이다. 세계 어느 나라 어느 인물을 꼽든 어머니보다 더 위대한 인물이 어디 있는가. 어머니들이야말로 자기 자식의 가장 훌륭한 스승이고 친구이며 위로자이고 동반자이다. 살아계실 때에도 그렇고 돌아가신 다음에도 자식의 마음 안에서 떠나지 않고 고이 간직되어 자식의 삶이 다하는 날까지 지켜보며 동반한다.
이렇게 모든 어머니가 다 귀하고 훌륭하지만 그래도 나라마다 그 나라를 대표하는 어머니가 있다. 우리나라에 역사적으로 겨레의 어머니라고 불릴 만한 인물로는 어떤 사람이 있을까. 많고 많으신 어머니 가운데, 어릴 때부터의 교육 때문이든 다른 연유이든 누구나 오래 생각하지 않고도 바로 떠오르는 인물 중에 신사임당이 계시다. 신사임당은 1504년(연산군 10년) 강릉 북평촌 오죽헌에서 태어나 열아홉 살 때 자신이 자란 집 마당에서 혼례를 올렸다. 그 집은 특이하게 어머니가 태어난 집에서 자식도 태어났다. 사임당 자신이 태어난 곳도 오죽헌이고, 혼례를 올린 곳도 오죽헌이며, 아들 율곡 선생을 낳은 곳도 오죽헌이다. 그래서 지금도 많은 신혼부부들이 오죽헌에 와서 자신들도 사임당과 율곡선생과 같은 2세를 낳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경내를 둘러본다. 오죽헌에서 태어난 사임당은 서른여덟 살까지 그곳에서 여섯 명의 아들딸을 낳을 때까지(일곱째인 막내만 서울에서 낳았다) 오죽헌에서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율곡의 나이 여섯 살이었다. 서울에 계신 시어머니가 사임당을 불렀다. 이제 당신은 연로하니 서울에 와서 며느리에게 시댁의 살림을 맡으라고 했다.
‘핸다리’라는 마을 이름이 재미있다. 어느 마을이나 냇물이 있으면 다리를 놓아야 한다. 그런데 마을에 놓은 다리의 색깔이 먼 데서 보았을 때 하얗게 빛난다고 해서 그 마을의 다리를 ‘백교’ 혹은 ‘흰다리’라고 불렀다. 마을의 상징과도 같은 이 ‘흰다리’가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오르내리며 핸다리로 변하여 지금도 이곳 마을을 한자로는 백교(白橋) 우리말로는 핸다리라고 부른다.
핸다리 아래로 흐르는 물을 따라 사임당과 율곡은 위촌리를 지나 대관령으로 나아간다. 핸다리에서 물을 따라 곧장 서쪽으로 가면 위촌리가 나오고, 북쪽으로 가면 도로표지판에도 ‘즈므’라고 적혀 있어서 혹시 ‘주무’라는 글자에서 아래 획이 떨어져 ‘즈므’가 된 게 아닌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마을이 나온다. 이곳 ‘즈므’ 마을도 사임당과 사임당 어머니에게는 깊은 사연이 있는 곳이다. 사임당이 결혼하기 바로 한 해 전, 열여덟 살 때의 일이었다. 오죽헌에서 함께 살고 있는 아내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기별을 받고 서울에서 강릉으로 오던 사임당의 아버지가 걸음을 재촉하다가 길 위에서 큰 병을 얻었다. 거의 죽을 목숨이 다 되어 대관령을 넘어온 아버지를 사임당의 어머니가 대관령 아래까지 마중을 나가 북평촌에 있는 오죽헌으로 모셔오지 않고 즈므로 모셨다.
이제 저 고개를 마저 넘어가면 다시 돌아보기 어려운 고향이다. 우리 마음에 고향이 어디던가. 그곳은 바로 어머니가 계신 곳이 아니던가. 그러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그때는 마음속의 고향마저 사라지고 마는 것이 아니던가. 그러자 왠지 왈칵 서럽고도 슬픈 생각이 밀려들었다. 거기에 흰 구름까지 몇 점 대관령 굽잇길에 흰 띠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사임당은 산 아래 저 멀리 북평촌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시 한 수를 지었다.
늙으신 어머니를 강릉에 두고
홀로 외로이 서울을 향하는 이 마음
돌아보니 북촌은 아득도 한데
흰 구름만 저문 산을 날아 내리네.
정말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돌아가더라도 어머니 살아계실 때 돌아가 뵐 수 있을까? 그 많은 생각이 담긴 오죽헌에서부터 핸다리 마을까지, 그리고 사임당의 어머니가 단지한 즈므 마을까지의 길이 바로 어머니의 길이다.
[소설가 이순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19호 (2020년 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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