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EO 혁신 라운지 ③ 테일러리즘과 스마트팩토리 | 스마트팩토리도 테일러리즘 연장선상, 제조현장 생산성 관리의 본질은 그대로

    입력 : 2020.05.29 17:18:39

  •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방식의 탄생과 본질

    19세기 후반은,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의 바람이 전신, 철도, 전기, 석유, 제철 및 기계 산업을 중심으로 미국에서 꽃을 피운 시기였다. 훗날 테일러리즘이라 불리는 과학적 관리법을 창안한 프레드릭 테일러는 이 시기에 필라델피아의 부유한 변호사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하버드 법대에 합격했으나 시력이 나빠 진학을 포기하고 기술자의 길을 걷는다. 어린 시절 학교 가는 길에 발걸음 수를 세어 가장 효율적인 보폭을 찾아냈고, 게으름을 참지 못했다.

    태일러는 펌프제조 공장의 견습공을 거쳐 22살이 되던 1874년 미드베일 철강회사에 입사한다. 당시 미국의 기업들은 노동시간이 아니라, 노동자의 성과에 따라 임금을 지급했다. 하지만 열심히 일해 노동성과를 높이면 단위 생산량당 임금을 줄여 임금 총액이 늘지 않는 악행이 있었고, 노동자들은 적당히 일하면서 생산량을 통제하는 은밀한 태업으로 대응했다. 작업조장이 된 테일러는 생산량 증대를 위해 노동자들을 강압해야 하는 상황을 겪으면서 큰 갈등을 경험한다. 결국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합리적인 하루 노동량을 알지 못하고 강압적으로 생산량을 늘리려는 경영방식에 있고, 이는 기업주와 노동자에게 모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합리적 작업량에 관심을 갖게 된 그는 노동자의 작업을 기본동작으로 분해하고, 불필요한 동작을 제거한 후 스톱워치로 작업시간을 측정했다. 이를 통해 효율적인 작업방법과 작업시간이 파악되고, 노동자에게 부과되는 합리적인 생산목표를 설정할 수 있었다. 생산목표를 제시할 수 있게 되자 이를 달성하는 노동자에게 높은 임금을 지급하는 차별적 성과급제를 도입했다. 결과적으로 기업주가 원하는 생산량은 증대되고 태업이 사라졌으며 노동자의 임금은 더 높아졌다. 최초의 표준작업시간이고, 과학적 생산관리의 시작이었다.

    테일러리즘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있다. 무엇보다 노동자의 지성, 상상력, 창의력을 파괴하고 인간노동을 기계적, 신체적 태도로만 보게 만든다는 것이다. 노동 자체를 단순화하고, 작업을 규격화하여 결국 노동자는 쉽게 교체 가능한 규격화된 상품처럼 취급된다는 것이다. 일부 비판적 시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제조현장에서의 표준작업시간은 절대적이고 필수불가결한 경영관리의 핵심 요소다. 표준작업시간은 우선, 생산목표와 생산계획을 수립하고 관리 가능하게 한다. 작업의 난이도와 숙련도에 따른 합리적인 작업배치가 가능해지고, 기계와 사람을 조합한 경제적인 제작방법을 결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외주제작을 위한 적정한 부하산출과 계약의 기준이 되며, 원가관리의 기초자료를 제공한다.

    사진설명
    ▶모답스, 시간측정에서 동작분석으로

    테일러 이후, 표준시간 설정을 위한 다양한 방법들이 발전했다. 모답스(MODAPTS)는 MODular Arrangement for Predet erminded Time Standards의 머리글자이며 1966년 호주에서 개발된 표준시간 측정방식이다. 일정한 작업조건 속에서 같은 신체동작을 하는 경우 누가 하더라도 유사한 시간에 수행한다는 점에 착안해서 개발됐다. 인간의 손가락, 손, 팔의 운동에 소요되는 시간은 이 동작에 필요한 신체부위와 관계가 있고, 인간의 신체는 서로 조화와 조정을 통해 동작하는 것이므로, 전형적인 수작업에 필요한 신체동작은 모두 ‘손가락 운동의 배수’로 측정 가능하다는 과학적 접근이다. 정상적인 작업자는 손가락 운동에 1/7초, 손 운동에 2/7초, 어깨가 같이 움직여야 하는 팔 운동에는 5/7초가 소요된다. 이를 손가락 운동을 기준으로 표현하면 손가락 운동 1MOD, 손 운동 2MOD, 팔 운동은 5MOD가 된다. 손가락, 손, 팔 등 5가지 기본동작 외에 물건을 잡는 동작 3가지, 물건을 놓는 동작 3가지 및 8가지의 보조동작, 2가지의 몸동작 등을 손가락 운동의 배수인 MOD로 산출한다.

    제조를 위한 작업이 결정되면, 작업에 필요한 동작을 요소동작으로 분해·분석하고, 각 요소동작별 MOD를 합산하여 작업에 필요한 시간을 산출할 수 있다. 이때 모답스를 통해서 만들어진 작업시간은 해당 동작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정미작업시간이다. 즉, 일체의 잉여동작이나 휴식, 지연이 없는 절대적 시간이다. 모답스를 통해 산출된 작업시간은 작업 중 발생하는 실수를 보상하는 작업여유, 작업관리상 발생하는 지연을 보상하는 직장여유, 생리적 현상에 따른 지연을 보상하는 생리여유, 작업의 피로에 따른 지연을 보상하는 피로여유 등을 감안해 인간이 지속할 수 있는 작업시간으로 표준화한다.

    필자는 최근 국내 최대 규모의 물류전문기업과 표준시간 재설정을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해당 기업은 이미 모답스를 통해 설정된 표준작업시간을 활용하고 있지만 운영전반에 걸친 관리정교화를 위해 표준시간 재정립이 필요하다는 판단이었다. 첫째, 표준시간을 설정한 이후, 상품의 종류와 수량이 바뀌고, 고객사의 요구와 조건, 보관 및 입·출하, 운송, 운반 방식 등 전반적인 변화가 누적되어 표준시간의 정확성이 저하됐다는 우려가 있었다. 둘째, 외주업체를 활용한 물류센터의 추가에 따라 숙련도의 차이, 물류합리화의 격차가 있으며, 이에 따라 적정한 외주단가의 산출과 계획관리에 어려움이 있었다. 셋째, 본격적인 스마트 물류체계 구축을 위한 합리적 투자결정의 기준이 필요하고, 동시에 구체적인 스마트 물류과제의 도출이 필요했다. 당연히 표준시간의 재정립이 필요한 상황이고, 스마트 물류 구축을 위해서도 필연적인 과정이다. 어쩌면 평범하게 지나칠 수도 있는 일이지만 21세기 최첨단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스마트 물류체계 구축을 위해 1960년대에 개발된 모답스 방식이 50여 년의 시차를 건너 서로를 필요로 하는 상황이 새삼스러웠다.

    독일 암베르크의 지멘스 공장 내부. 지멘스는 스마트공장화를 통해 제조 기업에서 IT 기업으로 변신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독일 암베르크의 지멘스 공장 내부. 지멘스는 스마트공장화를 통해 제조 기업에서 IT 기업으로 변신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제조현장의 작업시간과 스마트팩토리

    제조현장이건 물류현장이건 현장에서의 작업시간은 사람에 의한 작업시간과 설비·기계에 의한 작업시간으로 구성된다. 생산성 향상, 생산방식의 발전은 인간의 노동력과 판단을 기계에 이전하는 과정이었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스마트팩토리, 스마트 물류 또한 설비, 기계, 장비가 노동의 비율을 더 많이 감당하게 되는 과정이다. 더 빠르고 정확하며 실수하지 않고 24시간 지치지 않고 일하는 노동력이다. 더구나 디지털 기반의 스마트 기술은 인간의 물리적 노동력을 대체하는 데 그치지도 않는다. 반복적인 서류작업은 스마트 RPA(사무자동화로봇)가 대체하고,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은 판단과 의사결정 등 인간의 지능 영역까지 기계화시키고 있다.

    1950년대 산업용 PID제어기가 광범위하게 활용되기 시작했었다. 그때까지 온도계, 압력계의 눈금을 보면서 사람이 조절하던 공정제어를 PID제어기가 훨씬 높은 정확도로 자동적으로 실행하게 되었다. 숙련된 작업자의 손끝 기술이 무색해지고 인간의 지능을 대체하는 신기술이라며 산업계가 들썩였다. 인간의 노동력을 기계에 이전하는 새로운 기술이 도입될 때마다 일자리 상실의 걱정이 뒤따른다. 1950년대의 노동자들도 그랬다. 하지만 새로운 기술은 산업을 더욱 발전시키고, 기업의 규모와 수를 늘리면서 일자리는 더욱 늘어났다.

    50년 시차를 넘어 모답스와 스마트 기술이 만나야 하듯, 제조현장에는 변하지 않는 원칙이 있다. 현장의 노동은 사람의 작업시간과 설비·기계·장치의 작업시간으로 이루어져 있고, 상호 의존적인 협동과 협력에 의해 제품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높은 기계력(力)에 맞는 높은 인간력이 동일한 수준에서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의도한 성과와 효율이 창출된다.

    어떤 스마트 기술을 어떻게 활용하여 차별적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지는 스마트 솔루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이다. 일회적이고,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문제는 인공지능이 감당하지 못한다. 인간의 어떤 노동력을 어떤 기술로 대체하여 경영성과를 높일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일은 고스란히 인간의 몫이다. 기계에 맡길 수 있는 판단의 정도와 신뢰성을 인간이 결정해 줘야 하고, 훈련시켜야 한다. 인공지능의 훈련된 범위와 신뢰도 수준을 판단하며 그 결과를 수용하고 활용 가능한지를 결정하는 것도 인간의 몫이다. 스마트팩토리 구축은 이미 개발된 스마트 솔루션을 도입하는 프로젝트가 아니다.

    ▶스마트팩토리는 인재가 핵심

    대기업 계열사인 한 중장비업체에서 스마트팩토리 구축을 위한 방법론을 소개해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해당기업은 스마트 기술 도입에 선두적인 위치에 있는 기업이고, 세미나와 콘퍼런스를 통해 스마트팩토리 구축 성공사례로 익히 알려진 기업이었다. 어떤 상황인지 의구심을 갖고 만난 자리에서 “스마트팩토리 구축 전략을 전면 재검토”하고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지난 수년간 선도적 위치를 지키며 스마트팩토리 구축을 위한 여러 프로젝트를 추진해왔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물류, 생산 등 여러 영역에 경제성 검토를 거쳐 스마트 솔루션을 도입, 적용했고, 그 과정에 스마트 역량은 높아졌다고 생각하지만, 기대했던 성과에 미치지 못하는 프로젝트가 많고, 최고 경영진으로부터 전면적인 재검토를 지시 받은 상황이라고 했다. 스마트 기술은 도입되어 있지만 스마트 경쟁력은 미완성인 상황이었다.

    스마트팩토리 구축에 선도적이고 적극적인 기업들이 시행착오를 겪는 이유는 다양하다. 딱히 몇 가지로 요약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비교적 유사한 공통점을 발견할 수는 있다.

    첫째, 스마트 솔루션이 차별적 경쟁력을 만들지 못한다는 점을 간과한다. 솔루션의 도입이 스마트팩토리를 구축해 가는 하나의 방편이긴 하지만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다. 전문 업체에 의해 개발된 스마트 솔루션은 누구에게나 유사한 성과를 만들어 준다. 스마트 기술 자체는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공통의 도구다. 솔루션의 완성도가 아니라 성과의 완성도를 추구하기 위해 활용 가능한 보편적 기술이다.

    둘째, 스마트 기술이 스마트팩토리 구축의 중추적 기술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스마트 기술은 그 자체가 비즈니스 가치를 가지지 않는다. 스마트 기술이 아니라, 비즈니스 프로세스에서 성과가 창출된다. 업에 관한 지식, 도메인 지식이 핵심이다.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고민하고, 업의 특성과 회사의 비즈니스 현황을 토대로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성과를 지향할 수 있는 로직을 만들어내는 것이 성과의 출발이다. 업의 특성에 기반한 확실한 성과 모델이 만들어지면 이를 구현해내는 것이 스마트 기술이다.

    셋째, 새로운 기술의 발전 속도를 간과한다. 스마트 기술은 정체되어 있지 않다. 현재의 스마트 기술발전 속도는 이를 활용하고 응용하는 기업의 적용속도보다 빠르다. 조직 전체의 지속적이고 끊임없는 학습과 이를 활용한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 일회적으로 완성되는 솔루션의 도입이나 성과를 내는 프로젝트의 완성이 스마트 경쟁력의 본질이 아니다. 기업의 진정한 스마트 경쟁력은 완성된 스마트팩토리의 모습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스마트 기술을 도입하고 시행착오를 통해 성과를 높여가는 조직 전체의 스마트 기술 활용 역량이다.

    스마트팩토리는 과거와 단절된 새로운 개념의 탄생이 아니다. 테일러리즘의 연장선이고, 자동화의 연장선이며, 공정최적화의 연장선이다. 제조현장의 생산성 관리는 테일러 이후 크게 바뀌지 않았다.

    [김기홍 가온파트너스 대표]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17호 (2020년 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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