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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진훈 칼럼] ‘갈등 해장국’ 정치인 없나요
입력 : 2019.09.23 14:5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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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여론조사 그래프는 포물선 모양으로 중간층이 두터운 게 정상이다. 기형적으로 ‘M’자형 곡선이 나타났다는 것은 국론이 완전히 두 쪽으로 쪼개졌다는 얘기다. 이런 현상은 조국 법부무 장관 기용이 이슈화하면서 한층 두드러졌다. 실제 조국장관 임명에 대한 찬반여론 자체도 극단적으로 엇갈렸다. ‘매우 잘못했다’(43.2%)나 ‘매우 잘했다’(32.6%)는 응답자가 훨씬 많았다. ‘잘못한 편’(6.4%), ‘잘 한 편’(14%)이라는 중도층은 소수였다. 리얼미터가 조국장관 임명 당일인 9월 9일 하루동안 전국 19세 이상 성인 50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왜 이 같은 양극단의 국론이 나오는 것일까. 첫째, 지지층의 양분과 결집도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문 대통령의 가장 확실한 지지층은 30~40대 여성이다. 국정지지율이 높을 때는 70~75%까지 나온다. ▲주 52시간제 도입과 칼퇴근 ▲출산휴가 등 확대 ▲여성 고위공직자 확대 등 유리천장 깨기 ▲각종 젠더 이슈에서 여성을 우대하는 정책 등이 어필하고 있다는 평가다. 반면 60~70대 이상 노령층은 원래부터 그랬지만 보수성향이 뚜렷하다. 내년 4월 총선에서도 이들 연령층은 각각 진보·보수진영의 콘크리트 지지층 구실을 할 게 뻔하다. 오히려 캐스팅보트는 이슈에 따라 왔다갔다 하는 10~20대 젊은 유권자들이 쥘 가능성이 크다.
특히 20대 남성은 ‘공정과 정의’라는 잣대에 유난히 민감하다고 한다. 헌법재판소의 양심적 병역거부 합헌 결정, 조국 장관 딸의 부정입학 의혹이 문 대통령 지지율 하락의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둘째, 유튜브 등 유사언론의 득세에도 극단화의 책임이 있다. 극단주의는 객관적인 사실(Fact)이 아니라 믿고 싶은 것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오류에서 출발한다. ‘입맛대로 방송’이 범람하는 유튜브 세상에서 지금처럼 모든 세대가 편식만 고집하면 균형 잡힌 시각과 양보를 기대하긴 어렵다. 물론 ‘나의 이기심을 채워 주는 게 정치’라고 했으니 나무랄 일만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이슈에 상관없이 무엇이든 진보·보수로 갈라져 싸우는 것은 너무 후진적이다.
2014년 총선에서 탈원전을 주장했던 스웨덴 진보정당 사민당이 집권 후 유연한 수정책에 합의한 대목은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하다. 원전폐기 대신 10기는 상시 운영하되 낡은 원자로는 10개 범위 안에서 교체해 나가기로 한 것이다. 1970년대 사민당은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거꾸로 친원전 공약을 내놓기도 했다.
인터넷에 올라온 어느 중학교의 ‘작은 혁명’에서도 희망의 불씨를 찾을 수 있다. A여학생이 B여학생의 뒷담화를 하면서 사건이 불거졌다. 당한 여학생은 더 세게 A양을 험담하고 결국 왕따로 만들었다. 사태를 지켜본 선생님이 이런 중재안을 냈다. “계속 보복게임을 하면 우리 교실은 지옥이 된다.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서로 뒷담화를 하지 않기로 약속하면 천국을 만들 수 있다. 어느 쪽을 선택할래.” 다행히 이 교실에는 평화가 찾아왔다고 한다. 우리 정치에도 이 교사처럼 ‘갈등 해장국’을 자처하고 몸을 던지는 지도자가 있다면 기꺼이 한 표를 던질 것이다.
[설진훈 매경LUXMEN 편집인·편집장]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09호 (2019년 10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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