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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진훈 칼럼] 지정학적 리스크와 투자
입력 : 2019.08.27 16: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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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에서 이런 동시다발적 갈등이 터져 나오는 이유가 무엇일까. 첫째, 과거 미국과 소련 같은 절대 강자 또는 이념적 지배국이 사라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군사·경제력에서 미국이 단연 G1이라고 하지만 핵무기는 보유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다. 1940년대 히틀러는 다른 유럽국가들을 다 합쳐도 대적할 만한 군사력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세계 최빈국급이지만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무장한 북한마저 미국과 맞짱을 뜨자고 엄포를 놓는 세상이다. 자본주의 대 공산주의라는 이념의 진영대결이 끝나자 남은 건 국가 간 생존게임뿐이라는 얘기다.
두 번째가 더 골치 아프다. 외부보다 내부의 적이나 갈등이 더 무섭기 때문이다. 2010년대 중반까지 전 세계를 주름잡았던 이른바 신자유주의는 성장의 이면에 빈부격차라는 사생아를 낳았다. 분배문제는 국가를 가리지 않고 ‘넘버 1 선거이슈’로 떠올랐다. 오로지 집권을 위한 정치논리에 외교동맹이나 공생을 위한 ‘비교우위와 자유무역’ 같은 경제논리는 한참 뒷전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전례를 볼 때 이런 큰 갈등의 끝판은 사실상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전쟁이고, 또 하나는 각국이 먹고사는 문제를 타개하기 위한 기술혁명이다. 전쟁은 솔직히 우리가 어찌할 수 있는 여지도 별로 없으니 터진 다음에 걱정하는 게 나을지 모른다. 후자는 현재진행형인 경제전쟁이 그나마 순탄하게 끝났을 때 기대되는 순기능이다. 보호무역으로 점점 심각해질 저상장이나 원가상승을 타개할 방법은 생산성을 대거 끌어올릴 기술혁명뿐이다. 실제 1990년대 말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전 세계적으로 IT(정보기술)혁명이 일어난 게 결코 우연이 아니다. 닷컴버블이라는 후유증을 낳기도 했지만 ‘1인 1PC’ 시대는 노동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린 게 사실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선 사람손이 가장 적게 갈 분야나 기업을 찾아라’라는 말이 증권가의 금언처럼 떠오르고 있다. 택시기사를 대체할 공유서비스 플랫폼, 최저임금 충격을 줄여줄 로봇 기업, 물류·택배비를 획기적으로 절감할 유통테크 기업 등이 대표적이다. 고령화 시대의 유일한 탈출구인 바이오·헬스케어도 길게 보면 성장할 수밖에 없는 산업이다.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위험자산에 투자하겠다면 이런 미래성장주로 범위를 좁히는 게 현명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운이 없게도 정권 사이클과 세계경제 사이클이 맞지 않는다.”
이런 말이 나올 정도로 국제정세와 정반대로 미래보다 과거에서 답을 찾는 대한민국이 영 불안하다면 해외에서 투자처를 물색하는 게 현명할지 모른다. 이것마저 싫다면 자산의 일정부분은 꼭 현금이나 금으로 바꿔놓고 조용히 때를 기다리는 게 나을 것이다. 뻔한 공자님 말씀 아니냐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변곡점에서 아는 답을 실천에 옮기느냐, 마느냐가 진짜 재테크 고수를 가리는 법이다.
[설진훈 매경LUXMEN 편집장]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08호 (2019년 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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