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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마음산책] 경포대 신사임당길을 걸으며
입력 : 2019.08.01 15: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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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입니다. 시원한 피서도 좋지만 휴가 때 하루나 이틀 땀을 흘리며 먼 길을 걸어 보는 것도 참 좋습니다. 강릉 바우길에 ‘신사임당길’이 있습니다. 강릉시 위촌리 송양초등학교에서부터 오죽헌과 경포대를 지나 허난설헌과 허균이 태어난 초당마을까지 걸어가는 길입니다.
이 길이 시작되는 위촌리 마을은 대관령 자락의 가장 아래쪽에 있는, 강릉에서는 시골동네의 대명사와 같은 마을입니다. 400년 전통의 향약을 아직도 지키며 온 마을이 촌장님을 모시고 사는 마을입니다. 이 작은 시골 마을에 초등학교가 있습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전교 학생 수가 20명쯤 되나마나 해서 면소재지의 학교에 곧 흡수돼 없어질 학교처럼 여겨지던 이 학교의 학생 수가 최근 100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이 마을에 금광이라도 발견되었다면 모르겠습니다만, 이유는 우리나라의 이상한 영어열풍 때문이었습니다. 예전에 학생 수가 자꾸 줄어들자 이 학교의 졸업생들이 이러다가 학교가 아주 없어질까봐 후배들을 위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원어민 선생 한 명을 배치해주었습니다. 아이들은 방과 후 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해가 질 때까지 늘 이 원어민 선생과 함께 놀았고, 그게 몇 년이 지나자 시골학교 아이들이 유창하게 영어로 말하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이 학교의 저학년 아이가 영어책은 읽지 못하는데 영어로 온갖 말을 다하는 모습이 방송에 나왔습니다. 그게 소문이 나고 텔레비전에 나오자 강릉시내에서 엄마들이 이 학교에만 아이를 보내면 저절로 영어가 되는 것처럼 아이들을 우르르 전학시킨 것입니다. 외지에서 아이를 데리고 들어온 맹모도 있습니다. 조금은 씁쓸한 모습이긴 하지만, 어쩌면 이 엄마들 모두 오늘날 교육열에 있어서는 자신을 또 다른 사임당으로 생각할지도 모르지요. 아침마다 시내에서 이곳 시골학교로 아이를 등교시키는 엄마들도 있겠지요.
사임당은 오죽헌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결혼하고 서른여덟 살 때 서울 시댁으로 갔습니다. 그 길을 걸어 강릉 친정 오죽헌에서 이제 아주 서울 시댁으로 살러 가며 이런 시를 남겼습니다.
慈親鶴髮在臨瀛(자친학발재임영) 身向長安獨去情(신향장안독거정)
回首北坪時一望(회수북평시일망)白雲飛下暮山靑(백운비하모산청)
늙으신 부모님을 임영에 두고홀로 서울로 떠나는 이 마음 때때로
고개 돌려 북평촌을 바라보니 저문 산에 흰 구름만 날아 내리네.
시에 나오는 임영은 강릉의 옛 이름이고, 북평은 오죽헌이 있는 마을의 옛 이름입니다. 오죽헌에서 어머니 신사임당이 태어나고, 어머니가 태어난 집에서 다시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사람들은 오죽헌이 국가 보물(165호)로 지정된 것이 신사임당과 율곡 선생처럼 훌륭한 분이 태어난 집이라 그리 된 줄 아는데, 원래 이 집은 조선시대 문신이었던 최치운이 지었습니다. 규모도 그리 크지 않아 앞면 3칸 옆면 2칸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여덟 팔(八)자 모양의 팔작지붕에 겹처마 집으로 그 시대의 건축양식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집이어서 보물로 지정된 것입니다.
오죽헌 다음 들르는 곳이 강릉 선교장입니다.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저택으로 왕이 아닌 사람이 지을 수 있는 최대 규모의 99칸짜리 집인데, 규모야 둘러보면 아는 것이고 한 가지 재미있는 것 알려드리지요.
옛날에 이런 큰집엔 손님이 늘 들기 마련이고, 그러면 손님 신분과 친소관계에 따라 상중하로 분류해서 하급 손님은 행랑에 재워 보내고, 고급 손님은 당연히 사랑채(열화당)에 모셨지요. 예전에 이런 집들은 계절을 넘기는 손님들이 많았습니다. 금강산 유람을 가도 짧으면 반 년, 보통은 오가는 길까지 합하여 1년씩 걸렸으니까요. 선교장이 바로 금강산으로 가는 길손들의 베이스캠프와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집이나 오래 묵다 보면 그만 갔으면 싶은 손님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렇다고 점잖은 체면이 “이제 떠나시오” 하고 말할 수도 없는 일이고 이때 손님을 내보내는 방법이 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상을 들여갈 때 상 위에도 법도가 있어 밥, 국, 반찬을 올리는 자리가 다 정해져 있는데, 어느 날 반찬 자리를 서로 바꾸어 올리는 것이죠. 그러면 나그네도 눈치를 알고 그 집에서 나오는 거지요.
사임당길의 마지막 종착지는 허균 허난설헌 유적공원이 있는 초당마을인데 조선 중기에 강릉에 큰 인재들이 많이 태어났습니다. 오죽헌에서 신사임당과 율곡이 태어나고, 호수 건너에서 허난설헌 허균이 태어났는데, 사임당과 허난설헌을 비교하면 사임당이 70년 정도 빠르고, 율곡과 허균을 비교하면 율곡이 30년 정도 빠릅니다. 인생도 참 정반대로 살았던 사람들이지요.
이 사임당길은 마지막까지도 온통 소나무뿐입니다. 허균 허난설헌 유적공원을 둘러싸고 있는 소나무 숲을 강릉사람들은 예부터 ‘초당솔밭’이라고 불렀습니다. 경포팔경 중의 하나로 ‘초당취연’이라는 게 있는데, 경포대 누각에 올라 멀리 이곳을 바라볼 때 초당마을에서 저녁 밥 짓는 연기가 이 솔숲 사이에 구름처럼 낮게 깔려 퍼지는 모습이 한 절경을 이루었다는 것인데, 이제는 그 모습을 볼 수 없지만 사람들은 늘 이 솔숲에 감탄합니다.
대체 여섯 시간 소나무 숲 사이로만 지나는 길은 어떤 길일까? 만약 오신다면 여러분은 생애에 그 하루 동안 가장 많은 소나무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날 밤 꿈에서 대관령 옛길을 모자가 다정하게 손을 잡고 걷는 신사임당과 율곡을 만나게 될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모두 멋진 휴가계획 세우시기 바랍니다. 저는 여름마다 고향 강릉에 가면 이 길을 꼭 한번 걷고 옵니다.
[소설가 이순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07호 (2019년 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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