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진훈 칼럼] 역주행 신도시

    입력 : 2019.05.27 11:28:54

  • 역대 정권 가운데 신도시 건설에 가장 부정적이었던 건 의외로 보수정권인 김영삼 정부였다. 직전 노태우 정부시절 단행한 분당 일산 평촌 산본 중동 등 1기신도시 200만 호 건설이 당시에는 애물단지 취급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단시일 내 군사작전하듯 때려짓다 보니 자재난에 바닷모래 파동 같은 부정적인 뉴스가 연일 신문을 도배하다시피 했다. YS가 직접 “내 임기 중엔 신도시의 신(新)자도 꺼내지 말라”고 엄명을 내릴 정도였다. 실제 이후 10여 년간 대규모 신도시 건설이 뚝 끊겼다.

    YS와 DJ정권까지만 해도 이 애물단지가 훗날 얼마나 효자노릇을 할지 제대로 깨닫지 못했을는지 모르겠다. 노태우 정권시절인 1990년 37%까지 치솟았던 서울 아파트 값이 1992년 -4.3%, 1993년 -2.8% 등으로 안정세를 보였다. IMF 외환위기가 터진 1997년에는 서울 아파트값이 16.4%나 폭락해 정반대의 집값 파동을 걱정해야 했다.

    이후에도 10년 주기 대형 금융위기 등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부동산시장에서 묘한 역설이 생겨났다. ‘강남 집값과의 전쟁’을 선포한 진보정권 초기에 집값이 오히려 미친 듯 더 뛰었다는 점이다. 집권초기 과욕으로 재건축·재개발 규제나 대출제한 같은 수요억제책을 마구 쏟아부은 게 되레 화근이 됐다. 시장의 반격으로 불길이 정점에 달할 때 마지못해 내놓은 카드가 바로 신도시 건설이었다. “새 아파트 분양가 인상이 집값상승의 주범”이라며 공급확대에 그토록 반대했던 게 진보진영이었다. 하지만 결국은 시장의 수급논리 앞에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2·3기 신도시라는 매머드급 공급계획을 ‘토건족(土建族)’ 보수정권이 아니라 진보정권에서 내놓는 역사의 아이러니가 이래서 탄생했다.

    노무현 정부시절 발표 또는 시작한 2기 신도시만 판교, 동탄, 광교, 위례, 김포 한강, 파주 운정, 인천 검단, 양주 옥정, 평택 고덕 등 무려 10곳에 육박한다. 문재인 정부도 집값정책의 ‘결정적 한방’으로 고양 창릉, 부천 대장, 남양주 왕숙, 하남 교산, 인천 계양 등 5곳에 30만 가구를 짓겠다는 3기 신도시 청사진을 최근 발표했다.

    물론 신도시 건설을 꼭 악수(惡手)라고 보긴 어렵다. YS정부가 신도시 건설을 막자 용인 화성 일대 준농림지에 소위 ‘논바닥 아파트’가 수만 가구씩 우후죽순으로 들어섰다. 학교 도로 통신망 등 기반시설에다 판교 테크노밸리 같은 자족기능까지 갖춘 계획도시가 당시로선 최선이었다고 지적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하지만 이번에 발표한 3기 신도시는 ‘역주행’이라는 비판을 받을 소지가 충분하다. 첫 번째는 서울 연담화 방지 등 기존 수도권 개발 장기플랜과는 동떨어졌다는 점이다. 분당 등 1기 신도시는 서울에서 20~25㎞ 떨어진 곳에, 동탄 등 2기 신도시는 위례를 빼면 대부분 30~50㎞ 떨어진 권역에 지었다. 1기 신도시는 수도권 외곽순환고속도로 주변에, 2기 신도시는 2027년께 완공예정인 제2순환고속도로 근처에 주로 분포돼 있다.

    하지만 이번에 발표된 고양 창릉, 부천 대장신도시 등은 서울 코앞에 붙어있다. 서울의 허파격인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을 상당수 허물어야 하는 것도 문제지만 기존 1,2기 신도시 주민들의 반대가 더 큰 걱정이다. 아직 2기 신도시 분양도 덜 끝났는데 서울과 훨씬 가까운 곳에 새 도시를 발표하면 2·3기 신도시가 동반 몰락할지 모른다.

    두 번째는 고양 부천 남양주 등 지금도 미분양이 넘쳐나는 지역이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그나마 강남 대체지로 주목받았던 광명·시흥지구는 3기 신도시에서 빠졌다. 이명박 정부 당시 신도시급 보금자리주택지구로 지정됐다 주민 반대 등으로 무산된 광명·시흥지구는 800만 평에 9만5000여 가구를 지을 수 있는 매머드급 후보지다. 그린벨트에서 풀리면서 특별관리지역으로 지정되는 등 복잡한 사연이 있지만 무엇보다 지자체의 반발이 신도시에서 빠진 주요인이라고 한다. 결국 강남 집값은 못 잡고 애꿎은 일산 파주 남양주 부천 등 소외지역 집값만 더 떨어뜨리는 부작용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일본도 주민이나 시민단체 등 반대 탓에 도쿄주변에 신도시를 건설하지 못한 게 거의 20년에 달한다고 한다. 직전 박근혜 정부시절 수요와 주민반발을 무시한 채 강행하다 결국 무산된 목동·잠실 행복주택단지의 쓰라린 경험을 되짚어봐야 할 때다.

    사진설명
    [설진훈 매경LUXMEN 편집인·편집장]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05호 (2019년 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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