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진훈 칼럼] 메뚜기 알바와 요트稅

    입력 : 2019.04.25 16:44:11

  • 야간대 등록금을 벌기 위해 몇 년째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A군(22). 그는 요즘 집 근처 편의점 세 곳을 돌며 파트타임을 뛰는 소위 ‘메뚜기 알바’를 하느라 쉴 틈이 없다. 작년 초까지만 해도 점주와 사이가 좋았던 편의점 한 곳에서 정직원처럼 낮 시간대 하루 8시간씩 주 5일을 일했다. 그래도 국민연금 등 4대보험 혜택은 물론 주휴수당까지 합해 월 150만~160만원은 벌었다. 하지만 정부가 올해 법정 최저임금을 시간당 8350원으로 10.9% 인상한 뒤 월수입이 오히려 140만원선으로 줄었다. 그것도 매일 7시간씩 주 6일간 하루 더 일하는데도 형편이 오히려 나빠진 것이다. 점주들이 주휴수당을 피하려 알바생 1인당 주당 14시간씩만 칼같이 일을 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주휴수당이란 주당 근로시간이 15시간 이상이면 하루치 월급을 더 주도록 하는 제도를 말한다.

    여기에다 하루 근무시간이 8시간을 넘으면 1시간 휴식을 의무적으로 줘야한다는 규정도 있다. 이 때문에 실제 현장에선 매일 7시간마다 알바생을 바꾸는 곳이 많다. 아는 점주 몇 명이 의논해 주 이틀씩 돌려쓴다고 해서 ‘돌려막기 알바’라는 웃픈 용어까지 생겨났다. 최저임금 인상 이후 알바생, 점주는 물론 편의점 본사까지 하나같이 소득이 줄었다고들 하소연한다. 누군가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면 나눌 파이 자체가 쪼그라들어 경제주체 모두가 손해를 보는 ‘루저-루저’ 게임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1990년 미국 의회는 이른바 ‘요트세(稅)’라 불리는 사치세를 도입했다. 요트 자가용비행기 외제차 등 호화사치품에는 옛 우리나라 ‘특별소비세’처럼 유난히 많은 세금을 매겼다. 부유층에게서 더 많은 세금을 거둬 서민지원에 쓰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결과는 전혀 엉뚱한 방향이었다. 10만달러 이상 고가요트에 세금을 부과했는데, 이후 몇 년간 거둬들인 세수가 고작 700만달러에 불과했다. 반면 요트산업 일자리 수는 25%나 급감했다. 부자들이 아니라 거꾸로 서민층 요트공들이 호화세를 없애달라고 의회에 호소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부유층이 요트 대신 골프나 유럽여행 쪽으로 발길을 돌려 버렸기 때문이었다. 결국 의회는 3년 만에 백기를 들고 호화세를 사실상 철폐했다.

    최저임금과 요트세. 정책의 타깃면에서 극과극처럼 보이지만 묘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 시장의 실패를 개선한다는 명분으로 정부가 개입했지만 오히려 의도치 않은 부작용만 더 키웠다는 점이다. 과한 의욕이 소위 ‘정부의 실패’를 부른 셈이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긴 것일까. 첫째, 경제원론 교과서에도 나오는 수요·공급의 탄력성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편의점 알바, 음식점 종업원, 사무보조원 등 단순노무직들은 수요와 공급 모두 상당히 탄력적이다. 임금이 조금만 올라도 고용을 줄이고 키오스크 등 자동화기기로 대체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요트세도 수요가 매우 탄력적이어서 비싼 세금을 내느니 골프 등 대체재로 돌리겠다는 부유층이 많아서 실패한 것이다.

    둘째, 가격인상 폭이 너무 가팔랐다는 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당시 ‘임기 내 최저임금 1만원 시대’를 공약했다. 약속했던 인상률 55% 가운데 절반이 조금 넘는 29%를 취임 후 2년 동안 올렸다. 유례없는 개혁이었지만 하위계층의 소득이 늘어 빈부격차가 줄었다는 통계는 아직 어디에도 없다. 고용을 유지한 일부 근로자의 소득은 늘었을지 몰라도, 최저임금 탓에 음식·숙박업 등 골목상권의 일자리 감소폭이 이보다 더 클 것으로 추정된다.

    정통경제학의 대가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 교수도 최저임금의 소득재분배 효과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냈다. 그는 저서 <맨큐의 경제학>에서 “(미국에서)최저임금을 받는 근로자 가운데 빈곤층 가구원은 3분의 1에 불과하다”며 “실제 대부분은 용돈을 벌기 위해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중산층 가정의 10대 청소년”이라고 꼬집었다. 해서 저소득층의 고용을 유지하면서 임금을 보전해 주는 소위 ‘선택적 복지’가 훨씬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일자리 감소라는 부작용을 뻔히 예견하면서도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고집하는 것은 경제가 아니라 표에 매달리는 포퓰리즘이라 비판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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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진훈 매경LUXMEN 편집장]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04호 (2019년 5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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