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구현 칼럼] 대통령과 골프

    입력 : 2017.06.05 09:10:16

  •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과 골프 사이에는 묘한 상관관계가 엿보인다. 김영삼-이명박-박근혜 대통령 시절과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시절 사이에는 골프산업에 대한 온도 차가 있었다. 보수 쪽 대통령 재임 때는 골프산업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다가 진보 쪽 대통령 때는 골프산업 육성이 이뤄졌다.

    물론 이승만 대통령부터 군사정부 시절까지 권위주의 정권 시절, 골프에 관한 대통령의 일화들은 지금 기준으로 보면 낭만적이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골프에 관심을 갖게 된 건 군사적인 이유에서였다고 한다. 미군 장성들이 일본 오키나와로 골프를 치러 간다는 소리를 듣고 골프코스 조성을 지시했다는 것이다. 미군 장성들이 골프를 치러 일본에 간 사이 북한군이 쳐들어오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수 있다는 현실적인 이유가 작용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필드에서 골프를 즐긴 최초의 대통령이다. 9홀 골프를 마치고 술을 마시며 스트레스를 날렸다고 하는데, 방한 외국 정치인들을 골프장으로 초대해 필드외교를 펼치기도 했다.

    전두환 대통령은 청남대에 간이골프장을 만들 정도로 애호가였다. 앞뒤 홀을 비우거나 측근들을 앞뒤 홀에 배치하는 등 대통령 골프, 황제골프라는 조어를 등장시켰다.

    노태우 대통령 재임 기간은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스포츠 활성화가 이뤄진 시기였다. 골프 역시 각종 규제가 완화됐었지만 너도나도 골프장 건설에 달려들면서 환경문제, 사회문제가 커지자 규제의 올가미가 덧씌워졌다.

    김영삼 대통령 하면 골프장서 이뤄진 3당 합당 퍼포먼스가 떠오른다. 하지만 김 대통령은 취임 직후 “재임 중 골프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청와대 경내 골프연습장도 철거했다. 골프를 사치성으로 분류해 세금을 중과했다.

    반면 김대중 대통령은 골프를 하나의 문화로 수용했다. 보수세력에 대한 유화 제스처로 해석될 수 있을 만큼 골프계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노무현 대통령 역시 초기에는 골프에 대해 부정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집권 후반부 때는 골프 대중화에 힘을 실어주는 모습을 보였다. 김대중-노무현 집권 10년 동안 100개가 안 되던 골프장 수가 227개로 늘었고, 내장객 수는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이후 등장한 보수 정권 9년 동안 골프산업은 세제 등에서 압박을 받았으며 박근혜 대통령의 김영란법으로 결정적인 타격을 입었다.

    골프에 관한 문재인 대통령의 일화가 전해진 건 아직 없다. 다만 문 대통령의 국정 과제 1순위에 일자리 창출이 놓여 있기에 골프업계는 골프산업에 대한 유화 정책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골프업계에 비교적 따듯한 시선을 보냈던 역대 진보 정권의 전통을 잇지 않겠냐는 조심스러운 기대감이 있는 것 같다.

    사실 우리나라 골프산업의 현주소는 그리 내세울 게 없는 수준이다. 경쟁이 심화되는 와중에 내수침체까지 겪고 있는 골프업계에 김영란법이 치명상을 입혔다. 골프용품 업계는 작년 하반기부터 최악의 판매부진을 경험하고 있다. 골프의류 업계 역시 일부 브랜드의 약진 뒤에 대다수 브랜드의 매출 하락이 감춰져 있다. 골프장 역시 내방객은 늘어났지만 객단가가 줄어들면서 매출액이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세계 여자골프를 쥐락펴락하면서 흥행을 선도하고 있는 나라의 골프산업치고는 너무나 초라하다. 우리나라 골프시장 규모는 미국, 유럽, 일본 다음으로 세계 4위다. 중국보다도 더 중요한 시장이다.

    이런 나라가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는 골프 브랜드 하나 창출해 내지 못하고 있는 건 분명 문제가 있다. 일본이 동경올림픽을 계기로 미즈노, 요넥스, 아식스, 야마하 등 세계적인 스포츠 브랜드들을 만들어 낸 것과 너무나도 차이가 나지 않는가.

    골프에 관대했던 진보 진영에서 대통령이 나온 김에 골프산업에 대한 규제 완화 기대감이 커지고 있는 건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 글로벌 브랜드 육성이라는 전략적 의지를 갖고, 골프강국의 힘을 국가경제 발전으로 연결시켜 보자는 희망을 공유했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추가하고 싶다.

    사진설명
    [윤구현 LUXMEN 편집인·편집장(이학박사)]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81호 (2017년 0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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