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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평론가 윤덕노의 음食經제] 토르티야의 영광, 굴욕 그리고 부활
입력 : 2017.01.06 17:4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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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르티야에 고기나 해산물을 얹어서 매운 고추소스를 뿌린 후 오븐에다 구운 요리는 ‘엔칠라다(Enchilada)’라고 하고, 치즈를 듬뿍 넣어서 구우면 ‘케사디아(Quesadilla)’라고 하는데 글로 풀어서 설명하니까 비슷비슷한 것 같지만 묘하게 서로 다른 독특한 맛의 차이가 있다.
토르티야를 재료로 만들면서 우리에게 비교적 익숙한 멕시코 요리의 특징을 지적했는데 이런 멕시코 음식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먼저 멕시코 음식이지만 전통적인 멕시코 음식이라기보다는 주로 미국에서 널리 알려지고 퍼진 요리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음식 이름들이 하나같이 독특하다는 것이다. 먼저 토르티야는 스페인어로 ‘작은 케이크’라는 의미니까 특별할 것도 없지만 토르티야에 여러 재료를 얹어 둘둘 말아 먹는 부리토는 ‘작은 당나귀’라는 뜻이다. 왜 먹는 음식에 당나귀라는 이름을 지었을까? 토르티야를 둘둘 만 모습이 마치 당나귀 등에 얹는 짐처럼 보인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타코는 다양한 어원설이 있기에 확실치는 않지만 멕시코 은 광산에서 사용하는 화약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광산 노동자들이 싸온 도시락이 마치 화약을 종이에 싼 모습과 비슷하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라는 것이다.
과자 이름으로 더 익숙한 나초는 레스토랑 종업원 이름에서 생겨났다. 텍사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멕시코 레스토랑에 주변 미군기지에 사는 장교 부인들이 자주 들렀다. 마침 주방장이 외출하고 없을 때 손님이 갑자기 들이닥치자 이그나치오라는 이름의 종업원이 급하게 요리를 만들어 내온 후 특별히 만든 요리라는 뜻에서 나초 스페셜이라는 이름을 지은 것이 지금의 나초가 됐다. 엔칠라다는 스페인어로 고추를 의미하며 고추로 양념한 음식이란 뜻이다. 칠레에서 비롯된 음식인데, 참고로 나라 이름 칠레(Chile)는 지역 이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어 고추와는 어원이 다르다. 그리고 케사디아는 스페인어로 치즈라는 뜻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그런데 토르티야로 만든 멕시코 음식 이름은 왜 이렇게 당나귀니 화약이니 여러 면에서 독특한 것일까?
우연의 일치 같지만 토르티야의 역사, 그리고 문화와 관련이 있다. 토르티야가 영광과 굴욕으로 얼룩진 음식이기 때문이다. 토르티야는 역사가 무척 오래된 음식이다. 멕시코에서는 무려 1만 년 전부터 토르티야를 먹은 흔적이 있다고 하는데, 고대 마야 전설에서는 농부가 배고픈 왕을 위해 특별히 만들어 바친 요리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일반 백성이 먹는 평범한 음식으로 존경하는 왕에게 바쳤다는 영광의 음식이었음을 상징하는 신화가 아닐까 싶다. 따지고 보면 토르티야를 만드는 원료인 옥수수 자체도 고대 마야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음식이었다. 마야 신화에서 옥수수는 신이 죽어서 부활한 작물이다. 지하 세계의 신과 싸워 죽은 신이 땅에서 옥수수로 다시 태어났으니 마야인들은 신의 육신이 옥수수로 환생했다고 믿었을 만큼 옥수수를 신성시했다. 뿐만 아니라 기독교 성경에서 하느님이 진흙을 빚어 아담을 창조한 것처럼 마야 신화에서는 조물주가 옥수수 반죽을 빚어 인간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런 옥수수로 빚어 만든 음식이 고대 마야시대부터 현재의 멕시코 사람들이 주식으로 삼고 있는 토르티야다.
이렇게 신이 준 음식이었던 토르티야가 16세기 스페인 정복자들이 멕시코를 점령한 다음부터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멕시코를 정복한 스페인 사람들은 옥수수 반죽으로 빚은 토르티야는 원주민이 먹는 천한 음식이라며 멀리했다. 그렇지만 유럽인의 눈에도 맛있어 보이는 토르티야 자체를 무시할 수는 없었던 모양인지 정복자들은 중남미에는 없었던 밀을 유럽에서 가져와 심은 후 옥수수 대신 밀가루로 토르티야를 만들었다. 원주민은 옥수수 토르티야, 백인은 밀가루 토르티야를 먹게 된 것이다. 토르티야를 시작으로 이때부터 멕시코 음식문화는 이중 구조로 계급화해 발달하기 시작했다.
원주민들이 먹는 전통 음식은 서민들의 음식, 하층계급의 음식으로 취급한 반면 유럽에서 건너온 요리는 상류계급의 음식, 지배계층의 음식으로 구분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같은 멕시코 사람이라도 유럽계 조상을 둔 멕시코 백인은 원주민이 먹는 전통음식을 거의 먹지 않았다. 나라를 잃으니 음식마저 천대를 받았던 것인데 멕시코 전통 음식이 다시 멕시코를 상징하는 음식으로 부활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멕시코의 독립과 함께 민족주의가 싹트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그러나 멕시코 전통 음식의 수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멕시코 음식은 미국에서 싸구려 음식의 대명사처럼 여겼는데 일자리를 찾아서 혹은 난민으로 미국에 온 멕시코 출신 히스패닉들이 먹는 음식이었으니 멕시코 음식에 대한 시선 역시 그다지 곱지 않았다. 그래서 원주민의 주식인 토르티야로 만들어 미국에 널리 퍼진 멕시코 전통음식에 작은 당나귀라는 부리토라는 이름에서부터 화약을 싼 종이라는 뜻의 타코, 레스토랑 종업원의 이름인 나초와 고춧가루를 뿌렸다는 엔칠라다 같은 이름이 붙여졌다는 것이다. 이랬던 멕시코 전통음식이지만 지금 미국에서는 멕시코 음식이 가장 인기 있는 패스트푸드로 떠오르고 있다. 멕시코를 비롯한 히스패닉계 인구가 늘어난 이유도 있지만 옥수수나 통밀로 만든 토르티야가 햄버거나 핫도그 같은 전통적인 미국 패스트푸드보다 더 건강한 음식이라는 인식이 퍼진 것도 이유라는 분석이다. 어쨌거나 그 결과로 CNN은 미국 토르티야 산업협회 자료를 인용해 지난 2010년부터 토르티야 소비가 햄버거와 핫도그를 추월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다 보니 토르티야에 어울리는 소스인 전통 멕시코 살사 소스의 소비도 늘어서 2008년부터는 전형적인 미국 소스인 토마토케첩의 소비를 앞질렀다. 멕시코 음식이 미국 패스트푸드 시장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모양새다. 최근 우리나라에 멕시코 레스토랑이 늘어나는 것도 혹시 미국 외식시장의 변화와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지 궁금해진다. 어쩌면 세계 외식시장 트렌드가 프랑스 요리에서 이탈리아 음식으로 그리고 멕시코 음식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76호 (2017년 0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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