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구현 칼럼] 국가경쟁력 도외시한 해운 구조조정

    입력 : 2017.01.06 17:40:23

  • 법정관리에 들어간 한진해운이 갖고 있던 미주 노선 물동량의 절반 이상이 외국 해운사로 넘어갔음을 보여주는 숫자가 나왔다.

    미국의 저널오브커머스에 따르면 11월 기준 스위스 선사인 MSC의 미주 서안노선 물동량은 1만6018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로 작년 11월에 비해 60.6% 증가했다.

    덴마크 선사인 머스크도 11월 미주노선 물동량이 1만4637TEU로 작년 같은 달에 비해 18.9% 늘어났다.

    MSC와 머스크의 미주 서안노선 증가분은 7711TEU로 현대상선 증가분인 5586TEU를 크게 웃돌았다. 한진해운에서 이탈한 물동량의 60% 이상이 외국 선사로 유출된 셈이다.

    국내 1위 선사였던 한진해운의 좌초로 미주노선에 대한 지배권을 외국 선사들에게 뺏길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화됐다고 볼 수 있다.

    글로벌 물동량 감소, 컨테이너 과잉 등으로 글로벌 해운선사들 간에는 ‘죽느냐 사느냐’의 전쟁이 벌어져 왔었다. 자국 선사가 없는 미국과 달리 유럽 각국은 수익성이 검증된 미주 노선에서 강점을 보여 온 한국 해운사에 대해 지속적으로 공격을 했었다.

    우리 해운사들도 나름의 버티기를 했지만 결정적 약점이 있었다. 바로 장기 용선계약이다. 용선료 계약이라는 게 부동산 계약과 비슷해서 재조정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진해운은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현대상선은 산업은행 자회사가 되기까지 두 회사는 피를 말리는 시간들을 보내야 했다.

    논란은 이 대목에서 다시 시작되는 양상이다. 과연 정부의 판단은 옳았던 것인가. 기업은 자구노력을 제대로 했던 것인가. 정부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입장인 것 같다. 마부가 말을 물가까지 데려갈 수는 있지만 물을 먹는 건 결국 말이 아니냐는 논리다. 현대상선의 경쟁력을 강화해서 글로벌 해운경쟁력을 되살리겠다는 복안도 내놓았다.

    하지만 현대상선이 글로벌 선사들 간의 동맹인 2M에 정식으로 가입하지 못하면서 정부의 자신감에 대한 불신은 다시 커지는 양상이다. 2M은 머스크와 MSC가 주도하는 해운동맹을 가리킨다.

    기업들에 대해서도 좋은 평가는 없는 것 같다. 최후의 수단까지 동원해 기업을 살리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았다는 얘기다. 잡아먹지 못해서 안달이 난 글로벌 해운공룡에 맞서 서로 협력하는 모습을 보인 일본 선사들과도 다른 양상을 보였다.

    일본의 3대 선사는 컨테이너선 부문을 3~4년 전부터 합치겠다는 방안을 내놓았다. 우리 선사들의 경우 그와 같은 시늉만 했어도 외국 경쟁자들로부터 지금처럼 얕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제 배는 떠났다. 하지만 교훈은 분명히 남겨야 한다. 대한민국은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다. 수출을 하려면 배가 필요하다. 국적선사의 힘이 약한 상황에서 글로벌 해운선사들이 운임료를 크게 올린다면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 당국의 입김이 먹힐 리가 없고, 먹힐 정도로 강하게 하면 틀림없이 반발할 것이다. 글로벌 선사들이 부산까지 못 오겠다고 버티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 경제의 앞날에 비상등이 켜진 상황이다. 해운업 구조조정을 포함해 크고 작은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국가경쟁력에 악영향은 없는지 곰곰이 따져보면서 진행해 나갔으면 좋겠다. 수출물량이 많지도 않은 덴마크나 스위스가 세계 1위, 2위를 달리는 자국 선사에 대한 지원을 주저하지 않은 이유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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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구현 LUXMEN 편집인·편집장(이학박사)]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76호 (2017년 0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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