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구현 칼럼] 세상과 단절되는 세종시 공무원

    입력 : 2016.09.02 16:24:14

  • IMF 직후 과천 정부종합청사 과장급 가운데 민간으로 나온 공무원들이 꽤 있었다. 그중 A서기관이 한 말이 새롭다.

    “현실 세계로 나와 보니 과천에 있을 때는 뭘 몰랐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공무원들이 현장을 제대로 파악하고 행정을 하려면 재경부나 산업부가 과천이 아니라 광화문이나 여의도에 있어야 할 것 같다.”

    지금 세종시에 내려가 있는 공무원들이 들으면 기가 찰 테지만 서울 도심에서 한 시간 거리 떨어진 과천에 있을 때도 현실 세계에서 유리되기 십상이었다는 얘기다. 그래서 많은 리더들이 세종시 이전에 그토록 반대했던 셈인데, 요새 그 부작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대한민국 중앙행정이 수요자가 몰려있는 현장과 갈수록 멀어지고 있다. 매일경제신문이 조사한 세종시의 현실은 충격적이다.

    세종시 사무관·서기관 세 명 가운데 두 명은 최근 한 달 새 민간인과 단 한 차례의 업무협의도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친구를 비롯한 민간인과의 사적 만남조차 극히 제한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열 명 가운데 세 명은 한 달 동안 친구와의 식사나 동문회 참석 등 사적인 만남을 단 한 차례도 갖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 정도면 거의 완벽한 단절이다. 세상 돌아가는 걸 파악하고 정책을 만드는 건지 심히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 필시 민간인과의 접촉이 더 줄어들 텐데, 그렇게 되면 세상을 등진 것 같은 상황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실국장과 과장, 사무관 사이의 내부 소통 부재 문제도 심각하다. 서로 얼굴을 맞대고 긴밀하게 얘기할 수 있는 기회는 사실상 봉쇄됐다. 국장은 일주일에 사나흘씩 서울에 있고, 그나마 세종에 머물 때는 급한 일부터 처리하느라 사무관 대면보고 기회는 거의 없다.

    앞으로 우리나라 행정을 이끌어 나갈 사무관들이 국장이나 과장으로부터 도제식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든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서울에 있는 국과장 입장에서는 카카오톡으로 보고를 받다 보니 보고서에 문제가 많아도 일일이 가르쳐줄 시간이 있을 리 없다. 행정의 수요자와 공무원 사이의 물리적 거리가 모든 걸 망가뜨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판이니 미세먼지 원인에 고등어가 들어가고, ‘민중은 개·돼지’라는 현실과 동떨어진 발언이나 정책이 튀어나오는 게 아닌가 싶다. 공공연하게 드러난 것 말고도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만들어진 형편없는 정책들이 얼마나 많을지 생각해보면 아찔하다.

    가뜩이나 역량 발휘가 힘들어진 공무원들을 코너로 몰아세우고 있는 건 국회다. 시도 때도 없이 불러대는 국회의원과 보좌관 탓에 간단한 현안 설명을 위해 세종시에서 여의도로 오가느라 정작 중요한 본업을 미뤄야 하는 게 요즘 공무원들의 현실이다. 과거 과천 청사 시절만 해도 국회에 갔다가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밤늦게라도 업무를 이어갈 수 있었지만, 세종시로 옮겨진 뒤로는 국회에 가면 하루를 꼬박 날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국행정학회 추산에 의하면 정부 부처의 세종시 이전에 따른 공무원 출장 비용만 연간 1200억원이다. 광의의 행정·사회적 비효율 비용은 2조8000억~4조8800억원에 이른다.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처럼 다사다난한 나라에서 중앙 행정이 무너져 내리는 걸 방치했다간 어떤 국가적 손실을 입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세종시로 내려간 중앙행정 기능을 다시 서울로 되돌리거나, 그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국회가 세종시로 내려가야 한다. 다가오는 대선에 나서는 후보가 국가 전체에 도움이 되는 방안을 공약으로 내걸고 국민적 합의를 모아봐야 할 과제다.

    사진설명
    [윤구현 LUXMEN 편집인·편집장(이학박사)]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72호 (2016년 0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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