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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의 어떤 생각] 성격이 운명?
입력 : 2016.07.26 15:4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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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디는 이런 소박한 운명론을 향해 말하는 것 같다. 그들은 비행기가 무역센터 빌딩에 돌진하는 일은 없는 세계, 식당과 백화점과 역사에서 기관총을 난사하고 폭탄을 터뜨리는 일은 생각할 수 없는 세계, 이름도 성분도 독성도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은 화학물질들이 수만 종 넘게 존재하는 세계를 알지 못했다고. 왜냐하면 그런 세계는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인간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에 유전자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유전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헤라클레이토스와 루시디의 시대와 같을 수 없다는 사실 또한 부정할 수 없다. 오늘날은 성격이 곧바로 운명이 되지 않는다. 태어난 대로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어졌다. 외부요소가 압도적으로 많고, 변덕스럽기 때문이며 예측할 수도 없다.
우리는 외부를 인간의 삶을 풍요롭고 쾌적하게 만들고자 하는 구상에 의해 이뤄낸 인간의 업적쯤으로 생각해왔다. 외부의 다양하고 빠른 변화가 발전과 진보의 다른 이름으로 이해되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외부는 단순한 풍경이나 배경이 아니다. 그 (만들어진) 외부가 인간의 운명을 만든다는 생각은 신중하게 하지 않은 것이 아닐까.
외부는 부각되고 내부는 축소되어 간다. 외부는 더 잘 보이고, 내부는 더 안 보이게 되어 간다. 유전자가 요구하는 삶을 살고, 타고난 체질에 맞는 음식을 먹으며 사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는 세상을 향해 세계가 나아가고 있다. 인류가 오랫동안 섭취해온 음식에 의해 천천히 만들어진 유전자를 오늘날의 소량의 화학 물질들이 한순간에 바꿔 버리기도 한다.
인간을 형성하는 것은 무엇인가? 미당은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다’라고 고백했다. 그는 종이었던 애비와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풋살구가 먹고 싶다 했던 어매와 숱 많은 머리털의 외할아버지를 불러낸 다음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다’(<자화상>)라고 노래했다. 오늘날 누가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을까. 우리의 아이들을 키우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접촉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부정할 수 없다. 본 것, 만나는 사람, 들은 노래, 읽은 책이 다 우리를 형성한다. 태어나면서부터 흙과 물 대신 텔레비전·자동차·인터넷·스마트폰에 의해 길들여지는 우리 아이들은 어떤 시를 쓸까. 우리는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이 인간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알고 있다. 텔레비전이 만들어진 다음에도 텔레비전이 없는 것처럼 살 수 없다. 인터넷이 생긴 다음에는 인터넷이 없는 것처럼 살 수 없다. 텔레비전을 보지 않고,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으려고 결단할 수는 있지만, 그것들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외부는 단순한 풍경이나 배경이 아니다. 우리를 구성하고 우리의 일부를 이루고 우리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우리, 즉 인간, 나아가 인류의 운명을 만들기 때문이다. 피할 수 없기 때문에 무관심하거나 방치하지 말아야 한다.
살만 루시디는 같은 인터뷰에서, 한 지역에서 일어난 일은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당연한 말이다. 멀리서 일어나는 일이 그곳에 그치지 않고, 여기 이곳에 사는 개인의 사생활에까지 침투한다. 가령 아프리카 어디에서 발생한 바이러스는 당장 각국 공항의 검색시스템을 강화하게 하고, 개인의 여행 스케줄을 조정하게 하며, 여행사·항공사·환율에 영향을 미친다. 타인이 나의 외부인 것처럼 우리가 또 다른 사람의 외부이다. 바르고 진지하게 살아야 하는 또 다른 이유이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70호 (2016년 0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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