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구현 칼럼] 예술가에게서 배우는 창조의 비밀

    입력 : 2016.06.17 17:00:24

  • 창조적 인간은 따로 있는 걸까, 아니면 누구나 창조적 인간이 될 수 있는 걸까? 우리 안에 존재하는 창조성을 어떻게 끄집어낼 수 있을까? 창조가 화두인 시대를 맞아 종종 품게 되는 의문이다. 최근 발간된 <발칙한 예술가들>(윌 곰퍼스 저)을 읽다 보면 창의성을 발휘해 인류 문명을 바꾼 역사적 인물들에 눈길이 가게 된다. 예술가들의 창의성이 어디서 나오고, 어떻게 키워졌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저자는 훔치는 예술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예술가 등으로 나누어 그 비밀을 파헤친다. 책에 나온 사례 가운데 몇 가지를 메모하자면 다음과 같다. 먼저 피카소. 저자는 피카소를 통해서 거장들을 모방하다가 결국 자기 것으로 훔쳐내는 거장의 탄생을 그려낸다. 무명이었지만 촉망받는 화가이던 1901년의 작품들이 대상이다. 당시 피카소는 고야 같은 스페인 화가들, 인상주의나 후기인상주의 화가들을 모방했다. 드가, 세잔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들도 그려냈다.

    저자는 피카소가 그 전시회가 끝난 뒤 죽었더라면 미술사적 의미를 두기 어려운 수준이었다고 정리한다. 하지만 피카소는 피카소 자신이 되고 싶어서 과감한 변신을 하게 된다. 모방을 그만두고 훔치기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모방과 훔치는 건 큰 차이가 있다. 모방하는 건 기술이 필요하지만 상상력은 필요하지 않다. 창조성도 필요하지 않다. 그래서 기계가 그토록 잘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훔치는 건 완전히 다르다. 훔치는 건 내 것으로 만드는 일이다.’ 피카소는 거장들의 작품에서 자신이 훔친 것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결정해야 했다. 그 번민 속에서 ‘우울한 파랑색’이라는 미술사에 남을 변화가 나왔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내가 남들보다 좀 더 멀리 내다볼 수 있었다면 그것은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선 덕분”이라는 아이작 뉴턴의 말이나, “창조성이라는 건 무엇인가를 어디서 알게 되었는지 숨길 줄 아는 것”이라는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말이 연상되는 대목이다. 뒤집어 얘기하면 대가들의 업적을 충분히 마스터한 뒤에야 비로소 창조의 길이 열린다는 얘기다. 뉴턴이나 아인슈타인 모두 당대의 과학적 업적을 잘 아는 상태에서 당대의 과학적 이슈에 새로운 답을 내놓은 사람들이니 말이다.

    독일 표현주의의 거장, 오토 딕스의 사례 역시 시사적이다. 전쟁의 참상을 그린 프란스시코 고야의 작품을 본 오토 딕스는 고야가 전쟁에 관해 말한 것이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꼈다고 한다. 고야가 전쟁의 극단적 폭력행위에 대해 좀 더 사실적인 묘사를 한 반면, 딕스는 그 폭력행위의 결과에 주목했다. 똑같은 주제에 대해 새롭거나 다른 것을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이 창조에 있어 중요하다는 얘기다. 말은 쉽지만 사실 표현하고 싶은 나만의 생각을 품는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비단 예술가뿐만이 아니다. 어떤 분야건 나아갈 바를 찾지 못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겪게 되는 일이다.

    작가는 여기서 한 가지 팁을 제시한다. 장소를 이동하라는 것이다. 갑자기 다른 곳에 있게 되면 낯선 것에 자극을 받아 우리의 감각이 활성화되고, 이때 우리는 자신의 감정을 포착해 표현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고 한다. 우리가 집에서 멀리 떠나면 사진을 찍고 싶어지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라는데 고개가 끄덕여진다.

    디지털혁명 시대를 맞아 모든 게 변해가고 있다. 인터넷 덕분에 우리는 수많은 자료를 순식간에 얻을 수 있고, 더 많은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할 수 있으며 물건을 쉽게 사고팔 수 있게 됐다.

    인공지능은 우리의 일상을 장악할 게 분명해지고 있다. 특별한 사람만 할 수 있었던 일들이 벌써부터 인공지능에게로 넘어가고 있다. 인간에게 남은 것은 어쩌면 상상력뿐인지도 모른다.

    위인들의 삶에서 그들이 뭘 했는지보다는 어떻게 했는지를 더 자세히 봐야 한다는 작가의 조언은 그래서 설득력이 강하다.

    사진설명
    [윤구현 LUXMEN 편집인·편집장(이학박사)]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69호 (2016년 0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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