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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구현 칼럼] 추일승 감독이 보여준 승리하는 팀의 조건
입력 : 2016.05.13 17:3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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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프로농구 챔피언에 오른 오리온의 추일승 감독은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중학교 시절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했다. 운동을 잘했지만 운동에 매진한 것도 아니었다. 그가 다니던 중학교에는 운동부가 없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에 들어가 농구를 한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좀 의아해했다. 엘리트 스포츠가 판을 치는 한국에서 뒤늦게 시작해서 성공할 가능성은 낮았다. 보통 사람보다는 키가 컸지만, 농구를 하기에는 그리 큰 키도 아니었다. 농구선수, 그것도 센터를 맡기로 했다는 소리를 듣고는 안타까울 정도였다. 당연히 고등학교나 대학교 시절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 그가 다닌 대학교는 농구 명문은 더더욱 아니었다. 농구계 권력구조상 지도자나 행정가로 크는 데 불리한 백그라운드다.
그가 KTF 감독이 됐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의외라는 반응이 나올 정도였다. 성적도 그저 그랬다. 그나마 다행인 건 공부하는 감독이라는 평가를 듣는다는 점이었다. 농구 전술에 관한 미국의 책들을 섭렵했다는 소리도 들렸다. 그중에서 가장 귀에 솔깃한 대목은 선수들과의 끈끈한 관계였다. 한번은 다친 선수를 위해 최고의 명의를 찾고 다닌다는 소리가 들렸다. 구단 프런트가 나서서 하고는 있지만 감독 스스로 더 좋은 의사를 만나게 해주고 싶다는 열정이 느껴졌다. KTF 구단에서 나온 뒤 오리온 감독이 될 때까지 농구와 관련한 비중 있는 자리에는 근처에도 못 갔다. 아마 공부나 열심히 했을 것이다. 외국인 선수들이 핵심을 차지하는 요즘 농구 경기에서 작전지시를 영어로 하는 걸 보니 영어공부도 꽤 한 듯하다. 떠듬떠듬, 문장도 엉망인 영어지만 외국인 선수들 귀에는 이 세상 어느 통역이 해주는 전달보다 더 명확하게 들렸을 터다.
어쨌든 올해 추 감독은 일을 냈다. 전통의 강자인 KCC 현대모비스 인삼공사 등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챔피언에 오른 것이다.
그가 말한 우승 비결은 이렇다. 우선 선수들과의 신뢰관계다. 자신이 뽑은 선수들이라 피차 강력한 믿음이 있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손발이 맞으니 긴 말이 필요 없었다는 얘기다. 하버드대학 경영대학원에서 정리한 대로 맨체스터유나이티드를 세계 최고의 축구 구단으로 끌어올린 알렉스 퍼거슨 경의 성공요인과 다름없다. 헤어드라이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퍼거슨 감독은 라커룸에서 선수들을 강하게 몰아붙였다. 강한 카리스마를 가진 감독이 운영하는 데도 잡음이 없는 상태에 도달한 팀은 무적이다.
선수 선발에 관한 한 추 감독의 안목이 이번에 빛을 발했다. 어느 팀도 눈길을 주기 않던 단신 외국인 가드는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펄펄 날았다.
농구 경기를 보는 사람들은 눈치챘겠지만, 추 감독은 올해 경기 중에 거의 얼굴을 찡그리지 않았다. 추 감독은 “올해부터는 놨다”고 말한다.
한국 프로팀의 선수들은 성장기와 완숙기 사이에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성장기 선수들의 경우 감독이 일일이 지적을 해주는데, 이를 따라오지 못하면 당연히 실망감이 얼굴에 드러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완숙기에 접어든 선수들에게는 감독이 하나하나 꼬집으면 창의성이 나오지 않는단다.
물론 선수들에 대한 강력한 주문은 불가피하다. 다만 과거에는 7대 3으로 하나하나 지시하는 데 더 주력했다면 올해는 3대 7로 바꿨다는데, 그 결과가 우승이라니 효험을 톡톡히 본 셈이다.
프로스포츠 감독의 스토리가 호소력을 갖는 이유는 국가와 사회 곳곳에서 리더십이 흔들리는 모습이 노정되면서 나라의 앞날에 대한 걱정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스포츠 구단의 세계를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국가나 기업, 사회 각계의 조직과 일률적으로 비교하기는 힘들다. 다만 스포츠 세계의 승부는 즉각적인 메시지로 치환되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열광도 하고 탄식도 하면서 현실 세계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추일승 감독의 우승에서 읽히는 메시지는 신뢰와 유연성, 그리고 겸허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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