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인 사면의 효용

    입력 : 2015.07.27 17:50:50

  • 대기업 총수의 범죄에 대한 처벌에서 3·5 공식이라는 게 있었다. 3년 징역에 5년 집행유예를 통해 구속을 면하게 해주는 걸 가리킨다. 유전무죄라는 불평이 따라붙었지만 그럭저럭 넘어갔었다.

    2012년 A대기업 B총수를 법원이 풀어줬을 때 사회적 공분은 불타올랐다. 점점 더 강해지던 경제민주화의 바람은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한껏 끌어올렸다. 당시 대법원장 회식에서 해당 재판장이 배제되는 일도 생겼다고 한다.

    이후 태광, 한화 등의 재판에서 재벌 총수에 대해 엄격한 판결이 쏟아졌다.

    부자, 모자, 형제를 동시에 구속하지 않는다는 통념도 깨졌다. 모자가 함께 구속됐고, 형제를 동시에 구속하는 일도 일반화됐다. 따듯한 인간사회를 희망하는 일반적인 통념 하에 부모, 형제를 동시에 사회에서 격리하는 건 피해오던 관행이 철저히 배제됐다.

    태광 이호진 회장의 경우 함께 구속됐던 모친이 운명을 달리했지만 지병이 악화돼 장례식장에도 가지 못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최근 법조계에서 기업인에 대한 과도한 처벌을 보정하는 일종의 상쇄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는 배경이다. 담당 재판부들이 틀렸다는 건 아니지만 일종의 과도기적 시대에 이뤄진 엄단에 대한 복기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정부가 광복 70주년을 앞두고 광범위한 사면을 구상하는 가운데 기업인에 대한 사면도 이뤄질 거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경제상황이 대내외를 막론하고 어려워지면서 경제 활성화를 위해 기업인 사면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반대론도 만만치 않다. 기업의 활동이 적법한 범위 내에서 차근차근 절차를 밟아 이뤄져야 하고,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는 마당에 이를 중간에 끊어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기업현실을 조금이라도 맞닥뜨려 본 사람들은 전문경영인에게 힘을 실어주고, 방향을 설정하는 기업총수의 역할을 배제했을 때 투자 같은 주요 의사결정이 사실상 스톱되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특히 이미 상당한 처벌을 받았고, 그 기간 동안 법 집행을 성실히 따른 이상, 경제위기 극복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경제인 사면이 실제 경제 활성화에 어느 정도 기여를 했는지 여부는 과학적인 통계치로 설명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다. 하지만 과거를 떠올려 보면 기업 활동이 즉각 활성화됐던 다수의 사례들을 우리는 경험해 왔던 것도 사실이다.

    SK그룹 최태원 회장의 경우 모든 피해가 복구됐고, 이미 형기의 65%(광복절 기준)를 복역했다. 법무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복역 기간 중 반성하면서 자숙의 시간을 갖고 있다. 이 정도면 경영 현장으로 보내는 게 우리 사회나 경제에 실질적인 이익이라는 목소리가 많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가 가석방의 관행적 기준으로 제시한 최소한의 복역기간이 형기의 3분의 2인 점을 감안하면 이미 이에 상당하는 형기를 보낸 최 회장을 사면해도 무리가 아니라는 얘기도 있다.

    기업인 사면은 이 정부 들어서 원칙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부지불식간에 형성된 기업과 정부 사이의 불편한 상호인식을 조금이나마 변화시킬 수 있는 효과도 있다는 지적이다. 강화된 세무조사에다 사정 기류까지 겹치면서 대규모 투자 같은 의사결정을 하기 보다는 다음에 보자는 쪽으로 기업 활동이 위축돼 온 게 현실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전경련은 최근 30대 그룹 사장단 조찬회동에서 “광복 70주년을 맞아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국가적 역량을 총집결하기 위해서 실질적으로 투자를 결정할 수 있는 기업인들이 현장에서 다시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를 간곡히 호소한다”고 밝혔다.

    30대 그룹 사장단이 공식 활동을 갖고 경제상황에 대한 우려를 공유하고 공식적인 건의사항을 발표한 것은 10년 만이다.

    정부의 8·15 기업인 사면은 정부가 기업인들의 목소리를 철저하게 외면하는 건 아니라는 메시지를 경제 현장에 전달하는 의미도 클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설명
    [윤구현 LUXMEN 편집인·편집장(이학박사)]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9호 (2015년 0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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