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구현 칼럼]서울공대의 귀환

    입력 : 2015.04.03 14:58:39

  • 사법고시 대신 로스쿨을 도입하기로 한 건 노무현 전 대통령 때의 일이다. 판사·검사·변호사로 구성된 법조 3륜이 끼리끼리 기득권화함으로써 법률서비스의 문턱이 너무 높게 형성돼 있다는 문제의식이 작용했다.

    노 전 대통령은 막상 로스쿨 제도가 결정된 뒤에는 후회를 했다는 후문이 있다. 법률서비스의 문턱은 낮아지겠지만 로스쿨 3년의 막대한 비용을 감당하려면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집에서만 법률가가 나오게 되는 문제점을 뒤늦게 알아챘기 때문이다.

    여하간 로스쿨 도입 취지에 걸맞게 변호사가 대거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전에는 한 해에 500명 정도가 변호사 시장에 합류했다면 지금은 1200명이 넘는다. 작년 서울변호사회에 속한 변호사 수는 1만1600여 명으로 5년 전인 2009년의 6800여 명에 비해 70%나 늘었다.

    변호사 사회의 그늘도 짙어지고 있다. 변호사 시장이 연간 3조~4조원으로 크게 늘지 않는 상황에서 변호사 수가 급증했으니 사정은 안 봐도 뻔하다. 상당수 중소로펌은 사무실 유지조차 벅찬 상황이라고 한다.

    불법 광고, 브로커 범죄, 고객 돈 횡령 등 생계형 범죄가 늘고 있다고, 형사 합의금이나 승소금을 반환하지 않아 진정이 제기되는 판이다.

    로스쿨을 거쳐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고도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변호사들이 한둘이 아니다. 판사로 가는 길인 로클러크, 검사, 대형로펌 등 이른바 잘나가는 직장에 취업하는 경우는 극히 소수다. 서울대 로스쿨 졸업자 가운데 로클러크, 검사, 대형로펌 변호사로 가는 비중은 3분의 1이라고 한다. 나머지 대부분은 개업을 하거나 중소법률사무소에 취직해야 하는데, 처우가 형편없다고 난리다. 지방정부 6급 공채에 변호사가 몰리는 현상이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의 현주소를 대변한다.

    변호사와 함께 전문직을 대표하는 의사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잔인할 정도의 학습량, 하루 24시간 움직여야 하는 인턴-레지던트 생활을 마쳐도 36개월의 군 생활이 기다린다. 전문의 자격증을 딴 이후에도 안정적 직장을 잡지 못한 대다수 의사들은 개업을 택하지만 비싼 임대료에 높은 임금을 부담하지 못해 폐업하거나 심지어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기도 한다. 직장인들이 쉬는 토요일, 일요일에도 병원 문을 열고 저녁 7~8시까지 일하기도 한다. 은행 대출 때 의사 우대는 사라졌고, 일반 자영업자 수준으로 취급받는 게 오늘날의 의사사회다.

    공대와 의대에 동시에 합격한 아이들이 공대를 택하는 경우가 크게 늘고 있다는 최근 매일경제의 단독보도는 이런 시대 흐름을 단적으로 드러낸 기사였다. 이 보도에 의하면 2015년 정시모집으로 입학한 서울대 공대 신입생 675명 가운데 17%에 해당하는 115명이 다른 대학 의대, 치대, 한의대에 중복하고도 서울대 공대를 선택했다.

    전국의 의대를 다 채우고 나머지 성적 우수자들이 서울대 공대에 가고 있다는 세간의 인식을 확 뒤바꾸는 얘기다.

    의사가 되더라도 안정적인 인생이 보장되는 게 아닌데다 선진국으로 갈수록 엔지니어 연봉이 상당하고, 창업은 물론 연구원, 금융권 입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다는 장점이 부각되면서 의대 선호현상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IMF 전까지만 해도 의대선호 현상이 지금처럼 두드러지지 않았다. 수석합격자가 이과는 물리학과, 문과는 경제학과에서 나오던 시절이었다. IMF 이후 엔지니어들이 대거 직장에서 밀려나면서 안정적 미래가 보이는 의대, 법대에 성적우수자들이 몰렸던 셈인데, 그런 과도한 쏠림현상이 해소되는 과정이 요새 진행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국가적으로 볼 때 바람직한 의대·공대 밸런스가 어디에 있는지 쉽게 정답을 내릴 수는 없을 것이다. 바이오 분야가 반도체·자동차·석유화학을 합친 시장과 맞먹을 정도로 커질 것이라는 전망을 감안하면 의료·바이오 분야에서도 분명 많은 인재가 필요할 테니 말이다.

    분명해진 것은 전문자격증 하나로 평생 안정적인 인생이 보장받던 시대는 지나갔다는 점이다. 삼성고시라고 불릴 정도로 선망의 대상인 삼성에 어렵사리 들어가더라도 임원이 되는 비율은 1%도 되지 않는다.

    자격증 하나, 합격증 하나로 편안한 삶을 보장받던 시절은 지나갔고, 공부 잘하고 똑똑한 아이들도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현실을 이번 서울공대 통계는 냉정하게 말하고 있다.

    사진설명
    [윤구현 LUXMEN 편집장(이학박사)]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5호(2015년 0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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