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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각도로 보아야 할 기업의 배당정책
입력 : 2015.01.28 14: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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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투자자들은 기업들이 배당을 늘려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는 걸 반기는 분위기다. 주가가 장기간 횡보를 지속해 어떤 형태로든 보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시점에서 배당 수입의 증가뿐 아니라 주가상승까지 기대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배당금 지급이 적정할까? 경영자나 학자들이 오랫동안 고민해 온 문제지만 불행하게도 아직 어느 것이 정답이라고 규정할 만한 명쾌한 이론은 없다. 학계에서 가장 설득력이 있다고 인정하는 이론을 먼저 소개한다.
기업이 고속성장을 하는 동안에는 배당금을 한 푼도 지급하지 않아도 불평할 주주는 없다. 왜냐하면 동일한 금액을 주주가 배당으로 받아 운용해봤자 기업이 벌어주는 만큼의 수익률을 올릴 수 없기 때문이다. 애플과 같은 회사가 고속성장 시기에 무배당 정책으로 일관한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성숙기 기업 배당 늘려야 그러나 기업이 성숙기에 들어서면 새로운 투자 기회가 줄어들기 때문에 이익을 계속 기업 내에 유보하여 축적하는 것이 오히려 독(毒)이 될 수 있다고 한다. 회사에 쌓아둔 현금이 많을수록 경영자들이 과욕을 부려 기업가치를 훼손하는 투자를 감행하거나 자금을 비생산적인 용도에 남용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걸 막으려면 주주들이 대리인인 경영자를 감시(monitoring)해야 하지만, 소유지분이 광범위하게 분산되어 있어 여러 주주가 함께 모여 공동으로 행동을 취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이러한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이 바로 배당금 지급이라는 것이 학자들의 생각이다.
배당금을 지급하면 결과적으로 자금부족현상이 생겨 기업은 필요자금을 유상증자나 회사채 발행 등 외부 금융에 의존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전문 금융기관들이 기업의 내부 경영상황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어 저절로 경영자의 활동을 감시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지배구조가 우량하여 소액주주를 보호하는 국가나 기업일수록 더욱 높은 배당성향을 보인다는 실증연구 결과가 이 이론을 지지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2006년 기업사냥꾼 칼 아이칸은 KT&G의 지분을 사들인 뒤 배당금 증대를 요구하며 적대적 인수를 시도한 적이 있다. KT&G는 담배와 인삼을 제조·판매하는 성숙기 기업이라서 현금흐름은 안정적이지만 그 현금을 효율적으로 투자할 만한 투자처가 별로 없다는 점을 간파한 것이다. 칼 아이칸은 배당을 통해 주주에게 성과를 나눠주는 것이 최선이라는 판단을 했다. 기업 내에서 현금이 큰 수익으로 확대될 수 없다면 주주에게 분배되어야 오히려 기업의 가치가 증대된다는 것이 요지였다.
기업의 배당성향을 논할 때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현상으로 배당의 하방 경직성을 들 수 있다. 미국 경영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경영자들은 배당금을 감소시킬 바에는 차라리 좋은 투자 기회를 포기하는 것이 오히려 낫다고 할 정도로 일정한 배당금 수준을 유지하는 것을 매우 중요시한다. 따라서 미래에 계속 일정한 배당금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는 확신이 없다면 여간해서는 배당금을 늘리지 않게 된다.
실증분석 결과에선 배당금을 감소시킨 기업은 발표 당일 주가가 크게 하락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배당금 감소가 큰 폭의 주가하락이라는 페널티(penalty)로 연결된다는 얘기다. 그러므로 경영자 입장에선 배당금의 갑작스러운 증액은 상당히 부담스러운 결정이 아닐 수 없다.
배당시즌에 종종 관찰되는 또 다른 특이한 현상은 적자를 낸 기업이 배당을 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과연 적자를 낸 기업이 배당을 할 수 있는가? 그동안 적립된 이익 잉여금이 충분하다면 가능하다. 일시적 수익성 하락으로 인해 배당을 중단하거나 줄이면 실망한 주주들이 이탈하면서 주가 급락의 소나기를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경영자도 기업 기초체력이 건실하다면 배당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 할 것이다.
적자기업 배당 증가 추세 실제 자료를 보면, 2013년에 적자를 기록한 미국의 상장기업 2134사 가운데 304사가 배당을 실시했다. 국내에서는 2013년에 적자를 기록한 상장기업 498사 중 62사가 현금배당을 했다. 앞에서 언급한 논의에 비추어 본다면, 성숙기에 접어든 기업이 새로운 투자처가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일시적으로 수익성 악화를 겪고 있다면 적자배당을 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기업의 배당정책은 투자 및 자금조달정책과 맞물려 이루어진다. 배당으로 인해 발생하는 세금효과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고도로 동태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거친다. 최근 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인식이 제고되면서 소액주주를 보호하려는 흐름도 중요한 고려사항이 돼 배당정책의 복잡성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
주식시장이 고도로 영리한 행태를 보이기 때문에 배당금 수준의 결정을 둘러싼 게임은 갈수록 어려워질 것 같다. 여기서 기업 간 배당수준을 단순히 비교해 특정기업의 배당 수준이 적정한지를 논하는 우(愚)를 범하면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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