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식평론가 윤덕노의 음食經제] 새해에 조기, 유자 먹으면 부자 된다

    입력 : 2015.01.08 14:57:39

  • 중국 관광객들이 몰려오면서 중국인의 엄청난 씀씀이가 화제다. 한번 방문에 억대를 썼다는 요우커(遊客)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리는데 돈을 쓰다 못해 별 이상한 쇼핑을 하는 사람도 다 있다. 짝퉁 조기, ‘부세’ 한 마리를 81만원에 산 관광객도 있다. 지난해 설날 무렵 제주도 수산물 경매시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얼핏 보면 벼락부자 왕 서방의 돈 자랑 허세처럼 보이지만 자세한 사정을 알고 보면 그런 것만도 아니다. 오히려 그 속에서 중국 비즈니스를, 다른 나라 문화를 이해하는 길을 찾을 수 있다. 왕 서방은 왜 조기도 아닌, 짝퉁 조기 부세 한 마리를 81만원씩이나 주고 샀을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새해가 되면 복 많이 받으라고 인사한다. 중국도 다양한 종류의 새해 인사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꽁시파차이(恭喜發財)’라는 말이다. 부자 되라는 뜻인데 알고 보면 참 재미있는 인사법이다. 올 한 해 돈 많이 벌 것(發財)이니 미리 축하한다(恭喜)는 뜻이다. 선물시장에서 덕담을 내놓은 것 같다. 돈을 중시하는 중국인의 면모가 새해 인사에도 여실히 드러나 있다. 또 다른 새해 인사도 있다. ‘녠녠유위’, 연연유여(年年有餘)라고 한다. 풍성하고 여유로운 한 해를 보내라는 덕담이다. 그리고는 새해 식탁에 생선 요리를 차려놓고 가족과 친지들이 함께 먹으며 풍요로운 한 해를 소원한다. 새해와 생선요리가 어떤 관계가 있기에 생선요리를 먹으며 연연유여라는 인사를 하는 것일까?

    여유롭다고 할 때의 여(餘) 자와 물고기 어(魚) 자는 중국말로 발음이 같다. 새해 식탁에 차린 생선 요리는 곧 연연유어(年年有魚)의 의미다. 생선 요리를 먹으며 만사 여유 있고 금전적으로도 풍요로운 한 해를 소원하는 것이다. 그런데 새해라고 아무 생선이나 먹으며 잘살기를 비는 것은 아니다. 지방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새해에 특별히 먹는 생선이 따로 있다.

    사진설명
    항저우 조기와 베이징 잉어 상하이와 항저우 같은 화동지방에서는 주로 조기를 먹는다. 가장 인기 있는 조기 요리는 조기 탕수육(糖醋黃魚)이다. 튀긴 조기에 달콤한 탕수 소스를 뿌린 것으로 고소하고 새콤한 맛이 별미다. 중국에서는 조기를 황어(黃魚)라고 한다. 우리는 조기가 몸에 이로운 생선, 기운을 차리는 데 도움을 주는 물고기라는 뜻에서 도울 조(助), 기운 기(氣)자를 써서 한자로 조기(助氣)라고 쓰지만 중국인들은 비늘 빛깔이 누렇기 때문에 지은 이름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처럼 조기와 부세를 구분하지 않는다.

    상하이, 항저우 사람들이 새해에 특별히 조기를 먹는 데는 이유가 있다. 조기를 먹으면 부자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생선 빛깔도 누런빛이고 이름도 황어이니 조기에서 황금을 연상하는 모양이다. 조기를 먹는다는 것은 곧 황금이 입속으로 들어온다는 뜻이 된다. 이 때문에 중국인은 새해에 먹는 황어로는 조기보다 부세를 더 좋아한다. 부세가 조기보다 크기도 더 크고 비늘 빛깔도 더 누렇기 때문이다. 더 크고 반짝이는 황금을 상징하는 셈이다.

    중국 관광객이 제주도 수산시장에서 큼직한 짝퉁 조기, 부세 한 마리를 81만원에 샀던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미신으로 보거나 중국 새해 풍습을 모르면 벼락부자 왕 서방의 돈 자랑이겠지만 중국 문화를 이해하면 간절한 새해 소원이다. 중국 관광객을 상대하는 어물시장이라면 조기보다는 노랗고 큼지막한 부세를 많이 준비할 일이다. 중국 사람들이라고 새해에 다 조기를 먹으며 부자 되기를 빌지는 않는다. 베이징을 중심으로 한 화북 지방 사람들은 새해에 조기보다는 잉어를 먹으며 한 해 큰 돈 벌기를 소망한다. 사실 바닷가에서 비교적 멀리 떨어진 화북지방에서는 바다 생선보다는 민물 생선을 더 많이 먹는다. 그중에서도 으뜸이 잉어인데 중국인들이 잉어를 좋아하는 데는 맛도 맛이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잉어는 한자로 리어(鯉魚)다. 이익(利益)이라는 단어와 중국어 발음이 같다. 그러니까 잉어를 먹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익이 되는 것을 먹는다는 뜻이다. 이런 연유로 새해에 잉어요리를 먹으며 사업에서도 이익을 많이 내고 집안에도 이로운 일이 생기기를 비는 것이다.



    재물이 생긴다는 유자의 인기 새해를 전후해 홍콩 여행을 하면 시장에서 유자나무 분재를 많이 볼 수 있다. 과일 시장에도 유자가 많이 보인다. 홍콩뿐만 아니라 인접한 중국 광동지방도 마찬가지다. 홍콩을 비롯한 광동 사람들은 새해가 되면 유자나 유자가 들어간 음식을 좋아한다. 특히 해가 바뀔 무렵이면 유자로 만든 음식을 먹고 유자차를 마시며 심지어 유자 잎을 끓인 물로 세수를 하고 목욕도 한다. 이렇게 하면 나쁜 일이 생기는 것을 막고 행운을 불러 부자가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역시 나름의 이유가 있다. 노랗게 잘 익은 유자는 둥근 황금 덩어리와 많이 닮았다. 그렇기 때문에 금빛 유자를 먹으며 하늘의 도움을 받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소망을 품는다. 황금 닮은 유자를 먹으며 큰돈 벌기를 비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굳이 하늘의 도움은 또 무슨 소리냐 싶지만 역시 사연이 있다.

    한자로 유자의 유(柚) 자는 천우신조(天佑神助)라고 할 때의 우(佑) 자와 중국어 발음이 같다. 그러니 유자를 먹으면 하늘의 도움을 받아 재물이 생긴다고 믿는 것인데, 어느 정도의 재물을 모을 수 있냐하면 금옥만당, 집안을 금과 옥으로 가득 채울 수 있다는 것이다. 유자가 금옥만당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금옥만당하면 많은 사람들이 홍콩 영화제목을 떠올리지만 사실은 노자 <도덕경>에 나오는 말이다. 금옥만당 막지능수(金玉滿堂 莫之能守), 즉 집안에 재물이 가득해도 그것을 지킬 수 없다는 뜻으로 다음 구절이 부귀하여 교만해지면 스스로 허물을 남기게 된다는 말이다. 유자를 먹으며 부자 되기를 꿈꾸는 한편으로 교만을 경계하는 경구로 삼는 것이다. 유자 먹으면 부자 된다는 말은 사실 유자가 그만큼 귀했기에 생긴 속설이다. 따뜻한 남쪽나라 아니면 유자나무가 자라지 않기에 옛날에는 부자가 아니면 먹을 수조차 없는 과일이었다. 때문에 유자는 얼었어도 선비 손에서 놀고 탱자는 잘생겼어도 거지 손에서 논다는 속담까지 있었으니 생김새는 비슷하더라도 유자와 탱자는 노는 급 자체가 다르다. 유자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홍콩은 물론이고 광동 지방도 중국의 다른 지역에 비해서는 평균 소득이 높다. 어쨌거나 우리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다른 나라의 풍속을 왜 이렇게 자세하게 소개하는 것이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사실은 우리하고도 밀접한 관련이 없지 않다.

    최근 우리나라 남해안 지방에서는 중국의 이런 풍속 때문에 적지 않게 짭짤한 수입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도를 비롯한 남해안 지방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유자 재배지역이다. 그런데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긴 중국인들이 옛 풍습을 떠올린 것인지 새해가 되면 유자 주문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덕분에 유자차와 유자청 수출로 소득을 올리고 있으니 남의 나라 풍속이고 음식문화라고 해서 무시할 것도 아니다.

    혹시 새해에 중국인과 식사할 일이 있으면 디저트로 과일을 먹을 때 이왕이면 감을 먹을 것을 권한다. 그것도 두 개를 먹으면 더욱 좋다. 뜬금없는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만사형통,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려 나가라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만사가 뜻대로 풀릴 때를 한자로는 만사여의(萬事如意)라고 쓴다. 하는 일마다 뜻대로 풀리라고 할 때는 사사여의(事事如意)다. 그런데 중국말로 일 사(事) 자와 감 시(柿) 자는 발음이 같다. 때문에 감 두 개(柿柿)는 하는 일마다 뜻대로 풀리라는 덕담의 의미를 갖는다. 얼핏 말장난처럼 들리기도 하고 또 중국만의 풍속일 것 같지만 옛날에는 한국과 중국, 일본의 삼국에서 통용되었던 덕담이다.

    우리나라 옛날 그림에 감 두 개를 그린 그림이 있는데 역시 같은 의미고 개업을 축하할 때 감이 그려진 동양화를 선물로 건네는 이유도 사업이 뜻하는 대로 이뤄져 부자 되라는 뜻이다.

    그러고 보니 옛날 양반집에서는 새해 음료로 반드시 수정과를 준비했다. 수정과는 곶감을 넣어 만드니 새해에는 하는 일마다 순조롭게 이뤄지라는 덕담의 의미를 담은 것일 수도 있겠다. 재미삼아 알아본 음식문화지만 단순히 흥밋거리 이상일 수도 있다. 제주도의 짝퉁 조기 부세, 남해안의 유자를 보면 그렇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2호(2015년 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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