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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구현 칼럼] 기업 위기관리의 필요충분조건
입력 : 2015.01.08 14:5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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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조선이 다른 배와 부딪혀 사고가 났다고 치자. 상상하기도 싫은 대형사고지만 그런 일은 안 생기지 않는다. 사고 직후부터 배에서는 기름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중간에 잘 막지 못하면 배에 실려 있던 기름이 장시간에 걸쳐 다 나온 뒤에야 사고는 일단락된다. 여론은 시간이 흐를수록 악화된다. 사고의 원인을 놓고 시작된 비난의 목소리는 기름이 계속 흘러나오는 걸 왜 못 막고 있느냐는 쪽으로 번진다.
유조선 선사는 정신 차릴 겨를도 없게 된다. 바다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바다위에서 배 옆구리에 생긴 구멍을 막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안다. 파고가 2m라면 유조선과 작업선 사이에는 순간적으로 최대 4m의 차이가 생긴다. 이런 판에 구멍을 막는 작업이 쉽사리 될 리 없다. 만에 하나 유조선 선사의 직원 하나가 “해사 사고가 종로 사거리에서 버스가 전복된 사고와 같냐. 구멍 막는 게 얼마나 어려운데” 하고 말하는 걸 누가 듣는다면 만사 끝장이다. 가뜩이나 국민들은 사고를 낸 회사에 날카로운 눈길을 던지고 있는 판에 말이다.
기름이 유출되면 당분간 어장은 망가지고 관광산업은 문을 닫아야 한다. 두말할 필요 없이 일단 무조건 사과하고 수습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설명하는 게 상책이다.
요새 대한항공 땅콩 리턴 사고를 놓고 기업들의 사고 후 대응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즉각적인 사과, 책임지는 자세, 수습방안 공표 같은 기본이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다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리조트 강당 지붕이 붕괴됐을 때 즉각적으로 대응해 기업 이미지 실추를 최대한 막아낸 코오롱과 대비되면서 입에 오르내린다.
위기가 발생하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하기 위한 다각도의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져야 한다. 첫 단추는 솔직함이다. 전문가들은 지난 2007년 한 경비업체 직원이 고객 집에 들어가 나쁜 짓을 저지르다 검거된 사건을 예로 든다. 당시 회사는 이미 퇴사한 직원이라고 둘러댔다. 하지만 조금 지나 거짓으로 밝혀지면서 회사 이미지는 크게 추락했다.
내부단속도 결정적이다. 지난 2006년 한 놀이공원의 이벤트에 6만명의 인파가 몰리면서 부상자가 속출했다. 한 직원이 무심코 “손님들의 문화의식이 부족해 발생한 사건”이라고 말하는 바람에 국민적 지탄을 받기도 했다.
사과의 속도는 빠를수록 좋고 구체적이어야 한다. 도요타 자동차 리콜 사태 때 급발진 사고로 일가족이 사망한 지 6개월 만에 사장이 나타났다. 시간도 너무 늦었지만 내용도 구체적이지 않은 보상과 절차로 일관하면서 비난 여론을 키웠다.
반대로 사과를 잘해서 기사회생한 사례도 많다. 대표적인 게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다. 르윈스키 사건 때 클린턴은 깊은 반성의 자세와 절절한 사과를 매우 요령 있게 전달함으로써 높은 지지율을 유지할 수 있었다.
사후관리는 더 중요하다. 기업이 대형사고로 휘청거리면 실적은 곤두박질치기 마련이다. 지탄의 대상이 된 만큼 상당기간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당하기 십상이다. 소비자들 머릿속에 들어 있는 부정적인 인식을 지우기 위해서는 별도의 추가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사고가 났을 때 잘 관리하느냐 못하느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항상 그렇듯이 더 중요한 것은 사전 관리다. 사법당국이 수사에 나설 때는 해당 기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저울질하게 마련이다. 지탄받는 기업에 대해서는 일벌백계 차원에서 접근하게 된다. 사회적 파장이 크고 억울하게 당한 사람이 많을 때는 비록 수사가 난항을 겪을 수 있다고 판단되더라고 적극적으로 수사를 펼친다. 법원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정상참작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최근 유통업계에 대한 수사에서 사법 당국이 보인 태도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A사 사장의 경우 실형을 선고받았는데 본인으로서는 관행적으로 이뤄졌던 일에 대한 단죄에 대해 크게 억울하다고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갑을 논란 속에서 유통업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매우 취약해진 시점임을 고려하면 안타까울 뿐이다.
일련의 기업 위기에서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위기 때 적극적이고 진실한 대처는 필요조건이다. 여기에 평소의 평판 관리까지 포함돼야 충분조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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