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정선 교수의 중국문명 기행] (12) 번성했던 거리에서 마주치는 중국인의 일상

    입력 : 2014.11.07 11:2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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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의 중국다움을 제대로 맛보자면 어디를 가봐야 할까? 사람들은 진시황릉, 만리장성, 대운하처럼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토목공사나 베이징의 자금성, 타이안의 대묘, 취푸의 대성전처럼 거대한 건축물이 중국다움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일리가 있는 이야기이다. 그렇지만 나는 황제를 중심으로 한 절대권력이 만들어낸 그런 거대한 중국다움보다는 일상적 인간들이 만들어낸 사소한 중국다움에 더 마음이 끌리곤 했다. 그래서 나는 자주 산시(山西)와 허난(河南)의 역사에 찌든 시골마을을 헤맸고, 쟝쑤(江蘇)와 푸젠(福建)의 예스러운 마을을 찾아다녔다. 황토고원의 동굴주택인 요동(窯洞)의 찌든 가난함에서, 남쪽으로 이주한 객가(客家)들이 만든 토루(土樓)의 방어적 배타성에서, 강남의 발전과 번영이 만들어낸 고진(古鎭)의 우아한 평화로움에서 나는 중국다움을 발견하려고 했다.

    난징 시인의 추천으로 사계 찾아 장강 삼각주의 바닷가 쪽 가까이 자리 잡은 ‘사계(沙溪)’라는 옛 동네를 찾아가게 된 것은 순전히 난징의 쯔촨(子川)이란 시인 때문이었다. 쟝쑤성 시가협회의 대표이며 <양자강(揚子江)>이란 시 잡지를 주재하고 있는 그가 사계에 만들어 놓은 시 창작 센터에 가보자고 여러 차례 나를 채근했던 것이다. 서예와 바둑에 일가견이 있는 그는 나와 함께 사계에 가서 바둑을 둔다면 제법 멋스러운 시간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고 그의 호의 덕분에 나는 강남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제대로 엿볼 수 있었다. 오(吳)나라와 월(越)나라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기억하는 중국의 강남지방은 춘추전국 시대에는 벌레가 들끓는 습지여서 역사의 변방에 지나지 않았다. 이 지역이 중국에서 가장 질 좋은 비단과 자기를 생산하는 곳이자 가장 풍요로운 곡창지대로 재탄생한 것은 수당시대(隋唐時代)부터였다.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삼국시대부터 발전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한 강남지역은 오와 촉을 멸하고 통일제국을 건설한 진(晉)나라가 얼마 지나지 않아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의 혼란에 휩싸이게 되면서 빠르게 중국의 중심지역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중원이 전쟁터가 되자 중원지역의 명문세가들과 일반 백성들이 대거 강남으로 이주하면서 습지는 더욱 빠르게 정비되어 농토와 운하로 바뀌었고 강남의 경제와 문화는 더욱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또 수로의 정비로 교통과 운송이 편리해졌으며, 편리해진 교통과 운송은 풍요로운 생산물을 바탕으로 상업의 발전을 촉진시켰다. 그 결과 수나라와 당나라 때에 이르면 강남의 경제적 번영은 중원지방을 능가했고 북방의 정권들은 이 번영을 수도로 빨아들이기 위해 대운하라는 파이프를 건설했다. 이런 맥락에서 이야기한다면 사계는 강남의 번영이 탄생시킨 수많은 도시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사계는 쟝쑤성 태창시(太倉市)의 서북쪽 귀퉁이에 자리 잡고 있는, 인구 8만명의 작은 진이다. 인구 8만명이라면 우리나라의 군보다 두 배나 인구가 많은 셈이지만 현재 중국의 행정단위로는 우리의 면 정도에 해당하는 무척 작은 지역이다. 사계는 쟝쑤성에 속하지만 양자강 하구 쪽에 자리 잡고 있어서 난징보다는 상하이에 더 가깝다. 그래서 나는 사계로 향하는 승용차 안에서 중국에서 가장 빨리 변하고 있는 곳의 하나인 장강 삼각주 지역의 현재 모습을 충분히 감지할 수 있었다. 창밖으로는 공장과 아파트가 사라지고 농촌이 나타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시 공장과 아파트가 나타나는 풍경이 반복되고 있었다.

    내가 탄 승용차는 도시를 지나는가 하면 농촌에 들어서 있고 농촌에 들어서 있는가 하면 도시를 지나고 있었다. 현재 중국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고 부유한 지역인 장강 삼각주 일대는 이렇게 도시와 농촌의 경계선이 무너지고 있었고 거미줄처럼 연결된 고속도로가 이 지역을 바둑판 모양으로 구획을 짓고 있었다.

    사계의 야경
    사계의 야경
    명청시대 건물들 줄지어선 옛 마을 사계는 명청시대의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는 옛 마을이지만 강남의 이름난 고진은 아니다. 인근에 자리 잡고 있는 우전(烏鎭), 둥리(同里), 저우좡(周庄), 진시(錦溪) 등의 고진은 수향강남(水鄕江南)의 풍모를 즐길 수 있는 옛마을로 오래전부터 명성을 자랑하고 있고,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지만 사계는 그런 고진에 속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사계가 멋진 정원을 가진 저택들이 줄을 잇는 곳도, 유명한 인물들이 줄지어 배출된 곳도, 특정한 성씨들이 모여 살거나 전국적 명성을 자랑하는 물건을 생산하던 곳도 아닌 까닭이다. 사계는 그런 옛 마을이 아니라 수로를 따라 장사꾼들의 가게가 줄지어 들어서면서 만들어진, 3Km 정도의 긴 거리일 따름이다. 다시 말해 태창시라는 근대적 도시의 한 귀퉁이에 남아 있는, 우리의 장터거리처럼 그저 그런 장사꾼들의 집들로 이루어진 소박한 옛 거리일 따름이다.

    그러므로 사계를 찾는 사람은 운하를 따라 걸으면서 혹은 운하와 나란히 달리는 안쪽의 장터거리를 따라 걸으면서 한때 번성했던 시절을 상상할 수 있는 지식과 여유가 있어야 한다. 당나라 때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촌락의 풍경, 명청시대에 번성하던 시장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어야 하고, 운하를 따라 오르내리는 수많은 배들과 그 배들이 싣고 있는 상품들을 상상해 볼 줄 알아야 하고, 거리에 모여든 농부와 어부들이 생활용품을 공급하는 상인들이 흥정을 벌이는 시끄러운 풍경을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느릿느릿 운하를 따라 걷다가 수백 년의 역사를 지닌 고풍스런 아치형 돌다리에 기대어 생각의 날개를 펼칠 수 있는 넉넉한 시간이 있어야 한다. 나는 두 차례 사계를 방문하여 창작센터에서 숙박 장소로 개조해 놓은 민가에 이삼일씩 머물렀다. 우아하고 단순한 중국식 침대와 탁자, 책상과 의자로 꾸며놓은, 고급스런 커잔(客棧)에 들어온 것 같은 방에서 나는 쯔촨 시인과 가끔 바둑을 두었고, 책을 읽었고, 차를 마시며 휴식했다. 그리고 더위를 피해 아침 일찍 혹은 저녁이 가까울 때 운하를 따라 거리를 어슬렁거렸다. 그러다가 늙은 할아버지가 칼로 대나무를 잘게 쪼개어 다듬는 솜씨에 매혹되어 그 대나무가 예쁜 바구니로 바뀌기까지 서 있기도 했고, 수묵화를 그리고 있는 늙수그레한 아저씨의 꼼꼼하고 섬세한 붓놀림과 이미 그려놓은 그림들을 한참동안 쳐다보기도 했으며, 이야기꾼이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돈을 벌던 낡은 목조건물 주위를 빙빙 돌기도 했다.

    또 온통 학습용 공산주의 책들과 중고등학생용의 수험서로 채워진 서점에 들어가 그 책들을 사가는 사람들의 순수한 꿈을 생각해보기도 했고, 운하의 다리 가운데 만들어 놓은 정자에 앉아 동네 아줌마들의 알아들을 수 없는 사투리를 음미하며 마냥 앉아 있기도 했으며, 상가 앞에서 무엇인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며 지전을 자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삶과 죽음의 구별은 이런 것이란 깨달음을 얻기도 했다. 이처럼 사계는 멋진 풍경이나 묵직한 역사로 우리를 사로잡는 곳이 아니라 이처럼 평범한 생활인 풍경으로 우리를 맞이하는 곳이다.

    사계에서 내가 마주쳤던 풍경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운하를 따라 늘어선 집들이 만들어내는 밤풍경이었지만 가장 인상적인 풍경은 아침 6시부터 8시 사이에 운하 안쪽의 좁은 거리에서 잠시 펼쳐지는 장터 풍경이었다.

    쟝쑤 시창작 센터
    쟝쑤 시창작 센터
    민초들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터 자신이 생산한 농산물을 메고 끌고 싣고 온 인근의 농부들과 그것들을 사러 모여든 사계 주민들이 만들고 있는 장터 풍경을 보기 위해 나는 매일 아침, 거리로 나갔다. 어떤 씩씩해 보이는 아줌마는 리어카 위에 싱싱한 돼지고기를 놓고 네모난 중국 칼로 힘차게 내려치고 있었으며, 어떤 할아버지는 닭 두 마리가 들어 있는 자그만 철사 상자를 앞에 놓고 담배를 입에 문 채 멀뚱하게 하염없이 앉아 있었고, 어떤 주름살투성이 할머니는 길바닥에 늘어놓은 자신의 마늘이 발에 밟히지 않게 한 손으로는 연신 안으로 쓸면서 다른 손으로는 열심히 손님에게 손짓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꽤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는 한 아줌마는 몇 가지 초라한 건어물을 늘어놓고 장사를 하는 것인지 새로운 사랑에 빠진 것인지 모를 표정으로 상념에 빠져 있었다. 인파를 헤치며 이런 풍경들 속을 걷는 동안 나는 이 모습이야말로 수백 년 동안 변하지 않고 이어온 사계의 풍경일 것이라 생각했다.

    한국이건 중국이건 다른 어떤 나라건 상관없이 서민들이 사는 세상 어디에서나 시공을 초월하여 펼쳐지는 변함없는 삶의 풍경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면서 나는 문득 어머니를 떠올렸다. 장터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인민폐 1원짜리 2원짜리를 손주의 손에 쥐어주기 위해 저 보잘 것 없는 물건을 들고 새벽에 집을 나섰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어린 시절에 어머니 역시 소풍 가는 나에게 건빵 한 봉지 값을 쥐어주기 위해 계란 몇 개나 마른 고추 한두 근을 들고 집을 나서곤 했었다.

    이처럼 사계는 중국 서민의 일상적 삶이 살아서 숨 쉬는 옛 마을이며 번성했던 옛 그림자를 안고 퇴락해가는 고즈넉한 거리이다. 그런 만큼 잠시 스쳐가는 관광객이나 굉장한 풍경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지금의 사계는 보여줄 것이 별로 없다.

    그렇지만 중국인의 구체적인 삶, 갑남을녀로 살아온 평범한 중국 사람들이 오랫동안 영위해온 삶을 보고 느끼고 만져보고 싶은 사람들은, 일상적 생활의 체취에 흠뻑 젖어들고 싶은 사람들은 반드시 가보아야 할 장소이다. 당나라 때부터 형성되기 시작하여 송나라와 원나라, 명나라와 청나라를 거치면서 번성하다가 지금은 켜켜이 쌓인 시간의 때를 간직한 채 예스러운 시골풍경으로 변모해 있는 운하와 건물, 그리고 그 속에서 변함없이 아이를 낳고 키우고 죽으면서 살아온 중국인의 모습을 보고 싶은 사람들은 한번쯤 사계에 가 볼 필요가 있다.

    그러면 거리의 보잘것없는 상품 앞에서 우리 인간의 삶이 또 얼마나 보잘 것 없고 왜소한 것인지를, 그럼에도 그것을 하루 종일 지키고 앉아 있는 아저씨와 아줌마들 앞에서 그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끈덕진 것인지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0호(2014년 1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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