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UXMEN 칼럼]이순신과 선조, 그리고 프란치스코

    입력 : 2014.09.02 17:22:13

  •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미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역사학자 E.H.카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로, 역사가는 역사적 사건을 해석하고 평가하는 일을 한다고 정의했다. 이 때문에 역사는 같은 사실을 놓고도 시대와 사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바뀌지 않는 평가도 있다.

    한여름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군 주인공은 단연 이순신 장군과 프란치스코 교황이다. 이순신이라는 영웅이 탄생한 배경에는 조선 14대 왕인 선조가 있다. 난세에 영웅 난다고 했다. 그 난세의 몸통인 선조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달라지지 않을 성 싶다.

    선조는 비겁하고 무능하며 질투와 시기가 많아 조선 왕 27명 가운데 인조(16대)와 함께 최악으로 꼽힌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선조는 왜군에 맞서는 대신 자신의 안전만 챙기느라 도망가는 데 급급했다. 무공을 세운 김덕령을 살해하고 이순신을 죽음 일보직전까지 몰고 갔다. 성난 민심이 두려워지자 둘째 광해군을 세자로 세워 민심을 수습케 했다. 하지만 정작 광해군이 신망을 얻어가고 명나라마저 양위 압력을 가함에 따라 마음에도 없는 양위 선언을 했다.

    양위 선언이 뭔가. 백관들이 수없이 선언 취소 상소를 올리고 며칠이건 엎드려 통곡해야 한다. 행여 빠졌다간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다. 왜군 막기도 버거운 상황에서 선조는 양위 선언을 무려 15차례나 한다. 여기에다 서인에 의해 조작된 정여립 역모사건(기축옥사)을 핑계로 죽거나 유배당한 선비가 무려 1000명을 넘는다.

    반면 이순신 장군은 말뿐이 아니라 목숨을 걸고 백성을 향한 충(忠)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선조와 극단을 마주하고 있다. 백성과 장졸을 귀하게 여기는 민본주의와 두려움을 용기로 바꿔놓은 희생정신은 명량해전 승리의 원동력이 됐다. 13척의 배로 333척을 상대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에서 고독과 두려움을 떨쳐내고 위기를 돌파하는 장군은 시대를 넘는 참된 리더의 상징이다. 일부에서 애국주의 마케팅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이순신 장군이 지금도 역사책을 뛰쳐나올 수 있었던 것은 영웅을 필요로 하는 각박한 우리의 현실과 맞닿아 있어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리더십은 청빈과 소탈함으로 낮은 곳을 향하는 겸손이 핵심이다. 교황의 상징인 순금제 ‘어부의 반지’ 대신 도금한 은반지, 금목걸이 십자가 대신 철제 십자가, 전통의 붉은색 신발 대신 검정색 낡은 구두, 방탄차 대신 소형차…. 그 속에 묘책은 없었다. 들어주고 어루만지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힐링을 얻었다. 한편으론 우리의 목마름이 그만큼 컸기 때문일 것이다.

    이순신 장군과 프란치스코 교황의 공통점은 한마디로 권위를 내려놓는 통합과 소통의 리더십이다. 대신 리더와 기득권층에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강하게 주문한다.

    “군법으로 죽으려 하느냐, 도망간다고 살 수 있느냐”는 독려를 받은 거제 현령 안위는 대장의 지휘깃발(초요기)을 보고 적진으로 배를 몰아 명량해전의 공신이 된다. 행동하는 장수 1명이 다른 장수들의 마음을 돌리는 기폭제가 됐음은 물론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수도자들에게 호화 아파트와 고급 승용차를 멀리해 청빈 서원을 지킬 것을 늘 강조하고, 바티칸의 관료주의에 경고를 해왔다. 한국에서는 정치적 언급을 자제했으나 이탈리아 정치지도자에 대해서는 “여러분들은 그냥 반질반질한 대리석 묘지와 같다. 겉은 하얗고 반짝이지만 안은 썩고 있는 시체 밖에 들어 있지 않다”고 독설을 퍼붓기도 했다.

    이순신 장군의 영화가 스크린에서 사라지고 교황이 바티칸으로 돌아간 뒤끝에는 허전함이 몰려온다. 우리는 그 분들을 언제나 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날을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장군이 나타나 일거에 위기를 극복해주기를 바라고, 교황으로부터 위로받기를 원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정반대이거나 만날 가능성이 희박하다. 자문해보자. 그 빈자리를 어떻게 메울 수 있을까.

    이순신 장군이 13척으로 무모하게 전투에 나서는 것과 같은 일이 다시는 없도록, 또 가녀린 한국 여성들이 일본군 위안부로 내몰리지 않도록 준비하는 게 우선이다. 온나라를 비통과 한탄에 빠뜨린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부패구조를 뜯어고쳐야 한다. 분열과 갈등 자리를 대신할 화합과 소통은 그 시기를 앞당겨줄 것이다. 문제는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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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규준 LUXMEN 편집장]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8호(2014년 0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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