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UXMEN 칼럼]‘배 아픈 문제’와 피케티 해법

    입력 : 2014.06.25 15:14:31

  • 세월호 사건으로 가슴 저민 아픔이 아름다운 손길 덕분에 위안을 받는다. 현장을 지켜온 자원봉사자, 수색요원의 노고와 피해 아픔을 나누려는 성금은 우리 마음을 따듯하게 해준다. 대기업들이 쾌척한 성금은 액수도 적지 않아 훈기를 더해주고 있다.

    그런데 기부 선진국과 달리 한국에선 그룹명만 보이고 총수들의 개인 기부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간혹 ‘임직원 일동’의 모금액이 회사가 기탁한 성금에 보태지는 정도다. 물론 기업의 거액 성금에는 총수의 의지가 반영돼 있겠지만 아쉬움은 남는다.

    기대가 너무 큰 것인가. 우리 사회의 기부문제에 관심을 갖고 연구한 한 전직 장관은 “기업인들이 지분 지키기와 2, 3세 승계에 몰두하다 보니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 같다”고 분석한다. 열풍이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고 있는 지주회사도 같은 맥락이다. 지주회사 설립을 자문해온 한 증권계 전문가는 “내가 만나본 오너들의 최대 관심사는 경영권 확보와 가업승계로, 기업경영보다 훨씬 우선하더라”고 전한다.

    필자가 아는 한 중견기업인은 “내 아들에게 기업을 물려주지 못할 바에는 사업을 접겠다”며 실제로 공장을 처분하고 은퇴했다. 혈연을 중시하는 동양적 사고의 극단적 표현이다. 내로라하는 그룹 총수가 일반인 같으면 은퇴할 나이에 감옥을 드나드는 고초를 겪는 일도 상당수는 가업을 잇기 위한 욕심이 앞서 무리수를 둔 탓이다.

    통상 안정적인 경영권 확보 기준선인 최대주주 지분율 30%를 밑도는 상장사가 적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일견 수긍이 간다. 지분을 1%라도 늘려야 하는 마당이니 기부는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나라 기부문화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기부총액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0.9%로 미국(1.8%)의 절반에 그치지만 6년 사이 50%나 늘어난 점은 고무적이다. 중산층이 취약해지는 와중에도 직장인 정기 기부와 개인 거액기부가 늘어난 덕분이다. 이 매달 소개하는 1억원 이상 기부자들의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 가입자 증가도 가속도가 붙고 있다. 부부 회원도 적지 않다. 1호 모자(母子)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 된 이연배 오토젠 회장은 “나눔은 마음만 있다면 시간을 쪼개고 재능을 기부하는 식으로 누구나 일상에서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착한 기부, 특히 최상위 부자들의 기부는 <21세기 자본론> 저술로 최근 세계적 돌풍을 일으킨 토마 피케티가 정면으로 제기한 불평등 문제 해소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자본주의는 ‘배고픈 문제’를 상당폭 해결했지만 ‘배 아픈 문제’를 여전히 과제로 안고 있다. 피케티는 돈으로 돈을 버는 속도가 근로를 통해 돈을 버는 속도보다 훨씬 빨라 빈익빈 부익부가 심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역사적으로 대공황과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부(富)가 파괴되고 부자 과세노력이 성과를 거두며, 성장을 동시에 이뤄낸 50년 정도만 예외였다는 것이다. 방대한 자료 분석을 놓고 석학 사이에 논란이 일고, 무차별적인 자산 증식을 억제하는 고율의 자산세(Wealth Tax) 부과와 이를 위한 국제공조, 조세피난처 폐지와 같은 현실성 떨어지는 과격한 대안은 피케티 주장의 의미를 희석시키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그 메시지는 의미심장하다. 손가락 끝이 아니라 가리키는 곳을 봐야할 성싶다. 개인들의 기부 활동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누그러뜨리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데 적잖게 기여할 것이다.

    “성공을 거둔 기업가는 부를 사회에 환원하고, 또 세계의 불평등을 개선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사회적 책임이다. 내 인생의 후반은 주로 의미 있게 돈 쓰는 일에 바칠 것이다.” 죽기 전까지 재산의 95% 기부 의사를 공개한 빌 게이츠의 울림이 크다.

    기부는 시간과 재능을 나누는 것으로 진화하고 있다. 물건을 기부하고 교환도 할 수 있는 자판기까지 등장했다고 하니 나눔의 실천은 인간 본질의 중요한 일부분인 듯 싶다.

    미국 하버드의대 실험에서는 봉사활동을 끝낸 의대생들의 체내 면역 기능이 더욱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인체의 오묘함이란 이렇게도 선행을 보상하나 보다. 기부자와 자원봉사자가 느끼는 삶의 만족 비율은 미참여자에 비해 10% 이상 높다는 통계청 사회조사(2013년) 결과도 있다. 나눔을 행하는 이 땅의 천사들에게 건강과 행운을 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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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규준 LUXMEN 편집장]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6호(2014년 0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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