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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홀로 뚜벅뚜벅 걷기
입력 : 2014.02.13 10:5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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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걸을 때만 명상에 잠길 수 있다. 나의 마음은 언제나 나의 다리와 함께 활동한다”는 사상가 루소의 말처럼 다리로 마음을 텅 비우는 일이기도 하다. 걷기는 걷되 체로키족은 2월에 ‘홀로’ 걷기를 제안한다. 아직 겨울의 흔적이 가시지 않은 언 땅을 딛고, 그 깊숙이에서 움터 오르는 봄을 상상하며 홀로 걷는 발걸음은 외롭지만 당당하다. 그것은 오로지 스스로 감당해야 마땅한 새로운 삶의 다짐이기에.
2. 2월은 불안하고 분주한 달이다. 30일에서 고작 하루 이틀이 줄었음에도 한 달이 턱없이 짧게 느껴진다. 뭔가를 바삐 갈무리해야 하고 뭔가를 새로이 준비해야 할 듯한 초조감과 조급함에 숨이 가빠지기도 한다.
특히 젊은 날의 2월에는 ‘졸업’이라는 중요한 사건이 있다. 졸업은 모두가 ‘축하’한다는 일이지만, 정작 졸업하는 당사자들은 조악한 꽃다발만큼의 기쁨조차 느끼기 어려워 어리벙벙하기 일쑤다. 교문을 벗어나 홀로 세상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는 일에는 설렘보다 두려움이 더 크기 때문이다.
지난 연말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철도노조의 파업을 지지하는 집회에서 대학생들이 부른 노래는 결기 높은 민중가요나 과격한 투쟁가가 아니라, 인디밴드 ‘브로콜리 너마저’의 <졸업>이라는 잔잔하고도 쓸쓸한 노래였다.
그 어떤 신비로운 가능성도 희망도 찾지 못해 방황하던 청년들은 쫓기듯 어학연수를 떠나고
꿈에서 아직 덜 깬 아이들은 내일이면 모든 게 끝날 듯 짝짓기에 몰두했지
난 어느 곳에도 없는 나의 자리를 찾으려 헤매었지만 갈 곳이 없고
우리들은 팔려가는 서로를 바라보며 서글픈 작별의 인사들을 나누네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 해 넌 행복해야 해 행복해야 해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잊지 않을게 잊지 않을게 널 잊지 않을게 지극히 현실적이기에 황당하게도 공중파에서 ‘금지곡’ 취급까지 받는 이 노래는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열풍으로 드러난 요즘 대학생들의 심리를 가장 잘 반영한 것으로 일컬어진다.
노래에는 ‘빛나는 졸업장’과 ‘꽃다발을 한아름’ 안고 행복해하는 졸업생이 없다. ‘그 어떤 신비로운 가능성도 희망도’ 없는 학교를 벗어나 ‘이 미친 세상’으로 홀로 걸어 들어가는 두렵고 불안한 젊음이 있을 뿐이다. 다만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 한다는, 어디에 있더라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 미미한 위로가 된다. 청춘은 그 어떤 얼어붙은 길을 홀로 걸어야 하는가?
3. 다시, ‘청춘’이 화두다. 상처 입은 청춘에게 그건 본래 아픈 거라고 다독이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청춘을 격려하는 콘서트에서 도전과 희망의 ‘멘토’로 부각된 이가 대권주자로 물망에 오르기도 한다. 나는 기본적으로 타자에 의해 규정당해 구분되는 ‘세대론’에 찬동하지 않는다. 또한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한 위로와 응원의 자리에 얼마 전까지 비난과 경멸이 자리하고 있었음을 기억한다.
‘요새 젊은 것들’에 대한 통탄의 역사는 유구하다. 고대 폼페이의 폐허에서 발견된 유물이나 원시 동굴벽화에도 그 글귀가 새겨져 있다는 주장은 믿거나말거나 설이지만, 인터넷 ‘뉴스 라이브러리’를 통해 보면 1920년대 신문에서부터 현재까지 주구장창 ‘요새 젊은 것들’에 대한 기사가 검색된다. 거의 모든 시기에 청춘은 격려받기보다 조롱당했다. 그 ‘싸가지’ 없음으로 인해 위로받기보다는 공격받았다. 청춘은 그처럼 어리석고, 어리석은 만큼 용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청춘은 도리어 너무 ‘싸가지’가 있어서 큰일이다. 엄청난 ‘스펙’으로 무장한 채 너무 똑똑해져서 문제다. 오랫동안 경쟁주의와 서열주의에 길들여진 끝에 ‘싸가지’ 만큼 풀이 죽고 화려한 ‘스펙’의 무게에 잔뜩 짓눌려 있다. 그래서 뚜벅뚜벅 세상 속으로 들어가 성큼성큼 홀로 걷기에 용기를 잃고 헤맨다. 청춘이 지나치게 온순해지고 영리해진다는 것은 환영할 일이 아니다. 인생에 일정량의 방황이 있다면 그것을 행할 가장 좋은 시기가 바로 청춘기, 어리석기에 용감한 그때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다시 청춘, 그들을 믿는다. 물론 ‘이 미친 세상’은 그들의 발걸음 곳곳에 함정을 파고 장벽을 쌓아두었지만, 그 모진 바람을 헤치며 홀로 걷기를 두려워하지 않기를 바란다. 덧붙여 내 몸 하나 ‘안녕’하기보다는 ‘안녕들’ 하시냐고 묻는 그 눈물겨운 용기를 믿는다. 동시대를 사는 동세대와 더불어 같은 자리에 자면서 다른 꿈을 꾸는 동상이몽(同床異夢)이 아니라, 같은 배로 함께 큰물을 건너는 동주공제(同舟共濟)이기를 바란다.
홀로 걷다 보면 봄이 온다. 2월의 맵고 쌀쌀한 나날이 지나간다. 그 길 끝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봄’이다. 쓰러지지 않고, 무너지지 않고, 끝까지 걸은 자만이 만날 수 있는 찬란한 계절이다. 청춘이여, 부디 건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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