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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산의 자작나무 아래서] ⑰ 동시대여, 응답하라 나도 안녕하지 못하다
입력 : 2014.02.06 10:4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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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적인 에세이를 쓰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대학시절을 되돌아보면서 삶의 고비를 바꾸는 영향을 주셨던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썼는데 그 글을 읽고 나서 하신 말이었다.
이 글을 쓰려는 지금, 그런 말을 하면서 웃던 선생님의 장난꾸러기 소년 같던 웃음이 떠오른다. 지금 쓰려는 이야기가, 이런 것도 글로 쓰고 있다는 한심함과 함께 내게 상상력의 고갈이 온 건가 싶은 생각이 덜컥 들기 때문이다. 다른 게 아니다. ‘어떻게 그렇게 멍청한 짓을 하신 겁니까’하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아서 말도 못 꺼낼 이야기이다. 지난 연말, 이사를 하면서의 일이다.
그랬다, 한파 속에서 이사를 했다, 그것도 한 해에 세 번이나. 정확하게는 2012년 12월 10일에 이사를 했고 다시 그 짐을 2013년 6월에 다른 집으로 옮겼고, 그걸 다시 2013년 12월 28일에 옮겨다 놓은 집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곳이다.
지난 여름, 친구가 뭘 우편으로 보낸다면서 정확한 주소를 물었을 때였다. 겨울에 이어 또 이사를 했다는 말을 했을 때 친구는 ‘어이구, 야아… 뭐하는 짓이냐’하며 말을 잇지 못했었다. 그런 이사를 이 겨울에 또 하게 되었을 때 이번에는 차마 이사한다는 말을 꺼내지도 못했다.(한 해에 세 번이나 이사를 해야 했던 ‘개인적인 너무나도 개인적인’ 사정은 여기서 접기로 하자.)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지금의 ‘이 집’으로 이사를 하는데 이르렀다. 다만 처음부터 문제가 된 것은 바로 이 집의 상태였다. 이 집은 거실과 주방 전체에 인조 대리석이 깔렸고 안방과 그 옆의 침실이라는 이름의 작은 방은 옥돌을 깔고 있었다. 한때 무슨 보석관계 일을 하던 사람이 쇼룸으로도 쓰던 집이라는 부동산 소개업자의 말이 수긍이 갔다.
게다가 그 동안 수리를 안 하고 산 집이라는 게 한눈에도 느껴졌다. 주변 환경도 집안 구조도 마음에 들긴 했지만 도저히 이대로는 살 수가 없다는데 이르자 부동산 중개업자가 집주인과 교섭에 나섰다. 그 결과가 고쳐달라는 건 다 고쳐주겠다는 것이었다. 일이 잘못되기 시작한 것은 그 ‘고쳐달라는 것’이 하나둘이 아니라는데 있었고 그것을 세입자인 나에게 고치라고 타협안을 내놓았다는 데 있었다.
그렇게 해서 내가 집수리업자를 불러 수리를 하는 이상한 일이 시작되었다. 망가져서 닫히지 않는 현관문의 열쇠부터 맞지 않는 방문, 찢어진 방충망, 불이 나간 채 젖혀진 천장의 전등에, 부풀어 일어난 욕실 문짝만이 아니었다. 해도 해도 끝이 없었다. 냉장고는 냉장은 되는데 냉동이 되지 않았고, 가장 문제가 될 보일러가 연기를 뿜어내며 우당탕거리질 않나.
이사를 결정해 놓고 나니 이번에는 식기세척기가 문제였다. 게다가 아예 작동이 안 되는 식기세척기를 새로 들여놓기로 하면서 발견된 일이 싱크대의 수채 구멍이 막혀서 물이 안 나간다는 상상도 못했던 사태였다. 도대체 전에 살았다는 사람은 어떻게 지냈기에 싱크대의 수채 구멍이 막힌 채로 살았단 말인가.
겨우 이사 이틀 전에야 수채 구멍을 뚫고 식기세척기를 달 수 있었다. 고치고 뚝딱거리느라 엉망이 된 집의 청소를 시킨 건 바로 이사 전날이었다. 여기까지 오는 과정에서 사사건건 주인과 부대껴야 했고, 소개업자와 시비에 가까운 고성이 오가야 했으며, 이사를 포기한다는 말이 몇 번을 오갔던가. 내 집을 세놓고 나 또한 세를 사는 것이긴 했지만 집 없는 사람들의 설움이 어떨지를 생각하자면 내 머리카락이 치솟는 느낌이었다. 오죽하면 우리의 꼴을 지켜보던 아내의 친구가 웃으면서 “누가 보면, 저런 사람들이니까 저 나이에 집도 없이 세를 산다고 해!”하며 놀려댔겠는가.
이삿짐을 얼추 들여놓고 첫 밤을 보내면서, 이 이사가 무언가 잘못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우울함이 찾아왔다. 내가 가장 앞장서서 주장하며 결정한 일인데다 가장인 내가 입 밖에 낼 말은 더더욱 아니었기에 참을 수밖에 없는 슬픔이었다.
우울이 절망으로 변해가기 시작한 건 그 다음부터였다. 먼저 있던 못 쓰는 식기세척기를 떼어내고 새로 설치한 세척기가 문이 안 열리게 달아놓고 간 것이 아닌가. 그 업체의 요소요소에 이틀에 걸쳐 전화를 해대서야 겨우 기사가 와서 걸레받이를 잘라내고 식기세척기의 문을 열고 돌아갔다. 이게 뉴욕 맨해튼의 전광판에 회사 로고가 번쩍이는 한국 전자회사가 하고 있는 일이었다니.
그랬다. 1년 동안에 세 번이나 이사를 해대는 나와 이 시대가 갖는 부조화였다. 우울함이 절망이 되고 그 절망이 무기력을 불러오면서 나는 결국 ‘나와 시대와의 부조화’에 갇혀 버렸다. 생각해 보면 이런 부조화는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었다.
뉴스 이외에는 TV를 안 본 지 5년이 넘는다. TV가 공공연히 저지르는 프로파간다에 이제는 더 이상 속지 않겠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게다가 그 무수한 드라마에서는 싸운다, 또 싸운다, 또 소리 지른다, 또 엿듣는다, 또 모함한다. 얼마나 오래 TV를 안 보았던지 며칠 전 아내가 켜놓은 KBS의 프로그램 <아침마당>을 보고 경악했다. 다른 것이 아니었다. 여자진행자가 그 동안 그렇게도 뚱뚱해졌는지도 모르고 산 내가 너무 놀라워서였다. 이 사회의 무엇 하나, 저런 건 곧 없어지겠지 하고 믿었던 것들이 살아남아서 기승을 부린다. 이것을 시대와의 부조화라고 하지 않고 무어라고 부를 것인가. 이름이 뭐라고 하는 건지 모를 광고탑이 있다. 스테인리스로 광고현수막을 걸게 만들어서 세워놓은 그 흉물스런 것이 나타났을 때 저토록 미관을 해치는 것이 며칠이나 갈까 싶었다. 그러나 며칠은커녕 이제는 그 스테인리스 광고 걸개 탑이 안 세워진 도시가 없이 전국을 뒤덮고 있다.(이제는, 도대체 그걸 무어라 부르는지 이름이나마 알고 싶다.)
그런데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시대와의 부조화가 또 찾아온 것은 보일러였다. 국내 굴지의 보일러 회사 AS기사가 4번이나 다녀갔는데도 방의 한기가 가시지 않았다. 다시 불러온 설비업체 기사의 말이 절망을 넘어서서 자리 잡은 내 무기력을 부채질했다. 순환펌프가 작동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닌가. 4번이나 다녀간 보일러 회사의 AS기사는 뭐한거란 말인가.
올 겨울 들어 최고의 한파가 휘몰아치는데 보일러 수리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냉방에 앉아서 그러나 한마디의 위로를 만난다. 교수신문이 2013년을 마무리하면서 선정했다는 ‘도행역시(倒行逆施)’라는 사자성어이다. ‘순리를 거슬러 거꾸로 간다’는 뜻이다. 중국의 고전 <사기(史記)>에서 유래된 이 말은 춘추시대 오자서가 자신의 원수인 초나라 평왕의 시체에 300번 채찍질을 하면서 ‘도리에 어긋나는 것은 알지만 부득이 순리를 거스르는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변명하는 데서 유래했다고 전해지는 말이다. 그렇다면 위안이 된다. 내가 이 시대와 화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가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도행역시’하고 있다는 위안인 것이다. 이 시대와의 부조화를 어찌할 것인가. 그래서 나도 이렇게 중얼거린다. 동시대여, 응답하라. 나도 안녕하지 못하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1호(2014년 0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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