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수산의 자작나무 아래서] ⑯ 누가 ‘처월드’에 맞설 것인가

    입력 : 2014.01.03 16: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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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저… 늙어가는 부부들의 세상살이가 이렇구나 하며 웃을 일이 아니었다. 며칠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웃음과 함께 이 부부의 이야기가 그냥 넘어가지질 않는다. 내 작업실이 있는 남한강가의 한 칼국수집 이야기이다. 화학조미료를 쓰지 않는다는 주인아줌마의 말이 아니더라도 먹을 만하게 맛이 있고 뒤끝이 개운해서 자주 드나들곤 하는 칼국수집이었다. 채소도 가게 앞뜰의 텃밭에서 주로 길러내고 국물 맛을 내는 재료들도 멀리 바닷가의 단골집에서 날라다 쓰는 집이었다. 시골에서 칼국수 하나를 팔아 그만큼 손님을 유지한다는 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었던 것이다. 단순히 칼국수의 맛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나를 웃게 만든 건 이 집 노부부의 사연이다. 조금 과장하자면 한국 여성사가 보이는 사건 때문이다.

    점심시간이면 손님들로 붐비는 국수집이어서 일손이 늘 달리는 편인데도 이 주인 아주머니의 남편 되는 분은, 과감하게 그 일을 마다하고 ‘나의 길을 가련다’며 집을 뛰쳐나가 혼자 산다는 것이었다. 늦바람이 나서가 아니다. 여자 밑에서, 아니 부인 밑에서 식당 잔일이나 보는 게 싫다면서 집을 나가 혼자 산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화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아주머니의 말에 의하면, 이 독립선언을 하고 집을 나간 ‘대한남아’ 할아버지가 하는 일이 공영주차장 주차요원이라는 것이었다.

    “도와주면 어디 덧나기라도 한 데. 식당일은 죽어도 하기 싫다고 기어나가서는 주차요원을 한다나 뭐라나. 월급이 겨우 80만원이 된다나 뭐라나. 뭐 자기 하나 입에 풀칠은 하나 본데… 어디 두고 보라지. 내가 집에 들여놓나. 들어오기만 해 봐라. 당장 내쫓아 버릴 거구만.”

    칼국수집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누라 밑에서 식당심부름이나 하는 짓은 못하겠노라, 과감하게 자신의 길을 간 그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아저씨에게 나는 박장대소를 하며 마음속으로 응원을 보냈다.

    그런 며칠 후 이번에는 또 치사하기 짝이 없는 남편의 이야기를 만났다. 아내가 자기 말을 듣지 않는데 화가 난 남편이 아내가 운영하는 식당으로 차를 몰고 돌진했다는 것이었다. 충남 천안에서 50대 남편이 저지른 일이다. 식당을 하지 말라는 자신의 말을 아내가 듣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자신의 쏘나타 승용차로 마누라의 식당을 들이받아 출입문과 난로를 부수고 안에 있던 손님이 기절초풍 대피하는 등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동을 겪게 한 이 남편에 비하면 칼국수집 아저씨는 훨씬 어르신답지 않은가.



    나 두 야 가련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거냐.

    나 두 야 간다.



    용아 박용철 시인의 <떠나가는 배>처럼 마누라 식당을 뛰쳐나가 주차관리를 하며 사는 칼국수집 남편의 헌헌장부(軒軒丈夫)다움이여. 그런가 하면 일본에서는 남편을 승용차 보닛에 태운 채 1㎞를 내달린 여성이 있었다. 가까운 호텔에서 이혼문제를 이야기하다가 밖으로 나온 후 자신의 차를 가로막는 남편을 자동차에 매단 채 지그재그로 마구 달려버린 여자는 오사카의 스물여덟 살 난 여성이었다. 이혼하자는 부인에게 치근대며 차를 가로막은 남편도 남편이려니와 그 남편을 매달고 내달린 여자도 우리 칼국수집 아저씨와는 격이 달라도 많이 다르다.

    더 웃기는 일은 미국에서 있었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남편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투표했다는 걸 알고 화가 난 스물여덟 살 여성이 자신의 SUV를 몰아 남편에게 돌진했고, 중상을 입은 남편은 골반이 영구 손상되는 중상을 입었다는 것이다. 오바마가 재선되면 세금이 올라가는데 왜 그에게 투표를 했느냐는 말다툼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차로 돌진해 오는 아내를 보고 남편께서 도망을 치기는 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달아나는 남편을 향해 차를 몬 아내는 우선 가로등을 들이박고 이어서 코너에 몰린 남편을 그대로 뭉개서 쓰러뜨렸다는 것이다. 똑같은 스물여덟 살의 여성이 저지를 일로 일본의 여성보다는 미국여성 쪽이 주제가 더 사회적이고 중량감이 있기는 하지만 참 남편들의 꼬락서니가 말이 아니기는 마찬가지다.

    시대와 현실 그 환경의 변화를 체감하는 것들은 자기마다 다를 것이다. 사회와 시대의 놀라운 변화가 어디까지 갈 것인지, 그 속도에 놀라면서도 그 많은 달라짐 가운데 여성의 변화가 눈에 띈다.

    도시와 농촌을 가리지 않고 시대의 파도를 헤치면서 눈부시게 변화를 거듭한 건 우리의 여성이었다. 그리고 결국은 이 여성들이 우리 사회를 바꾸는 원동력이 되어 한국인이 겪는 삶의 변화를 견인해 왔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래서 우리 사회가 모계사회에 가깝게 여성의 힘이 나날이 팽배해 간다고는 해도… 마음 한편이 편하지만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

    시집 쪽을 두고 ‘시월드’라고 하더니 요즈음은 그게 아니다. 처가에 얹히고, 휘둘리면서라도 굽실 굽실 그걸 마다하지 않는 남자들이 늘어나면서 ‘처월드’가 생겨난 세상이다. 게다가 설마 설마 했는데 최근에는 명절이 되면 처가로 가서 장모랑 음식을 만드는 남자 아니 ‘남편’이 늘어나는 모양이다.

    얼마 전 일이다. 우연히 어느 ‘남편님’의 블로그를 보다가 불에 덴 듯이 놀란 일이 있다. 이 남편이라는 젊은 자가 써놓기를, 그것도 자랑이라고 써 놓으시기를, 명절 때 마누라가 시댁 가서 음식을 한 횟수보다 사위인 자신이 처가에서 음식을 만든 횟수가 더 많다는 것이 아닌가! (에이그. 이 녀석을 죽여, 살려?) 그러면 장모와 음식 할 동안 아내는 뭘 했나 살펴보니, 마누라는 아이랑 놀면서 TV드라마 보고 있었단다. 그리하여 세상은 시월드가 아니라 바야흐로 처월드인가 보다.

    내친 김에 여기저기 들락거리며 그 또래 남편들의 이야기를 살펴보니 점입가경으로 기가 막힌다. 무슨 대단한 가이드나 된다는 듯 써놓은 것이 이렇다.



    1. 정말 굶어죽기 직전 아니면 시댁이나 친정의 도움을 받지 말 것.

    2. 용돈이든 선물이든 시댁과 친정에 똑같이 할 것.

    3. 세 번 노력해도 한 번 못하면 욕먹는다. 가까워질수록 바라는 게 많아지고 서운한 게

    늘어나는 법이다. 시댁이든 친정이든 마음에서 조금은 거리를 두고 멀리 할 것.



    이런 따위를 적어놓다니. 그럴 걸 왜 사니? 사람이란 어차피 죽는 건데 그렇다면 미리 관이나 하나 잘 짜놓고 거기 들어가 앉아 있지 그러셔?

    한국현대사가 겪어낸 여성의 힘찬 변화들 그리고 그 여성들에 의해서 견인되면서 우리 사회의 동력이 된 여성들의 힘은… 일일이 거론하기에도 힘겹게 지난 시대의 날줄과 씨줄이었다. 그러나 우리 동네 칼국수집 아주머니의 남편, 아내의 칼국수 가게를 뒤로 하고 이 사나이가 간 길이 쉽게 잊히지가 않는다.

    힘내시오 아저씨. 우리 남편들의 자존심을 두 어깨에 달고 오늘도 어딘가 공영주차장에서 호루라기를 불며 일을 하고 계실 칼국수집 남편이시어. 명절이면 제 부모한테는 안 가고 처가에서 장모랑 음식을 만든다는 저 처월드의 가련한 녀석과 맞설 대한남아의 마지막 기개가 당신 어깨에 걸렸다고 생각하소서.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0호(2014년 0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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