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철현 교수의 인간과 신] 동굴과 영적인 인간
입력 : 2013.12.12 13:47:43
-
당시 이 그림들의 위작을 주장한 학자는 프랑스의 저명한 고고미술학자인 에밀 까르따이약(1845-1921)이다.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신봉한 그는 2만 년 전 구석기 ‘동물’들은 그런 정교한 그림을 가질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림은 문화적으로 풍요롭고 여유로운 문명사회에서나 가능한 귀족들의 전유물로 생각한 것이다. <추상과 공감> (Abstraktion und Einfulung)이란 책의 저자인 빌헬름 보링거는 자연을 모방하는 서양예술은 ‘공감’을 기초하며, 공감이란 감정은 원시인들에겐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구석기 시대 예술에 대한 획기적인 전환점은 에밀 까르따이약의 (Mea Culpa d’un Sceptique,1902) 즉 <의심하는 자의 고해성사>라는 책의 출판이었다. 그는 이전에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고 알타미라 동굴의 벽화가 구석기 시대의 작품임을 과학적으로 증명한다. 이곳을 방문한 피카소는 ‘알타미라 이후에 모든 것이 쇠퇴했다’고 고백하였다. 2만 년 전의 벽화가 구석기 시대 인류의 조상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작품이란 사실이 확정되었으나 아직 풀어야 할 숙제가 많았다. 이들이 왜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 처음 발견할 때부터 이 동굴들을 연구한 고고학자 앙리 브루이 (AbbeHenri Breuil,1877-1961)는 동굴의 그림들은 원시인들이 잡고 싶은 동물들을 그림으로써 더 많이 잡을 수 있다는 원시적인 풍요제사의식이라고 주장하였다. 실제로 동굴벽화에 남겨진 동물들 중 뾰족한 칼이나 창으로 긁힌 흔적이 있어 신빙성을 더해주었다. 이 이론은 간단명료하여 매력적으로 보이나 원시인들이 가진 신비에 대한 경외심을 설명하지 않았다.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자신들이 거주하는 장소가 아닌 지하로 내려가 왜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 이 질문은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우리는 왜 사는가?’와 같은 궁극적인 질문과 연결되지 않을까. 학자들의 조사에 의하면, 현재 프랑스 남부와 스페인 북부에는 3만 년 전부터 1만 년 전까지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300개 이상 정교한 벽화들이 발견된다. 지금은 사라진 맘모스, 순록, 곰, 사자 등이 그려졌는데, 이것들은 구석기 시대 사람들의 주식이 아니었다.
또한 이곳은 그들의 거주 장소가 아닌 특별한 행위를 위해 숭고하게 마련한 ‘구석기식 시스틴 성당’ 이라고 생각한다. 빙하기 시대 치열하게 생존을 위해 생활하던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지하 50m이상 세계로 진입한다. 그 어둠은 인간의 시간과 공간을 한 순간에 앗아가는 신비한 장소이다. 우리의 조상들은 이 동굴에서 자신의 심장소리를 듣는다. 그들은 횃불을 듣고 자신과 더불어 사는 위대한 동물들을 그리면서 동물, 자연과 하나가 되고 궁극적으로 이 모든 것을 조절하는 절대자와 만나는 연습을 하지 않았을까?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자신을 직시할 수 있는 우리만의 동굴이다. 그 안에서 몰입하는 연습을 통해 우리가 사는 이유를 묵상하는 시간이 절실히 필요하다. <시리즈 끝>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9호(2013년 12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