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 ‘최후통첩 전략’…개성공단 협상서 배워라

    입력 : 2013.08.28 14:4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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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성공단 정상화 협상이 광복절을 하루 앞둔 8월14일 마침내 타결되었다. 133일 동안 지루하게 쌓인 먼지를 털고, 개성공단이 깨어 날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피를 말리며 재가동을 기다리던 입주 기업들보다도 속이 더 새카맣게 타 버린 사람이 있다. 바로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다. 협상이 결렬되면 북한은 전 세계에 ‘투자 부적격 공산 독재국가’로 낙인찍혀 현재 진행되거나 앞으로 계획한 모든 경제개발 사업이 중단되는 초유의 위기를 맞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북한을 국제사회에서 격리 고립시키고 해외자금 유입 경로를 모두 차단해 체제 안보까지 위협하고 있는 미국과 유엔 안보리의 제재가 지속적으로 강화되고 있어 개성공단 협상 결렬은 애당초 북한으로선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게다가 외교와 경제의 후원자였던 중국마저 미국과의 불편한 외교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매정하게 북한을 외면했다. ‘통미봉남’이니 ‘주미종남’이니 하는 기존의 북한 외교 전략은 그 자체가 붕괴된 상황이었다. 북한에 가장 뼈아픈 사실은, 이미 무역규모 1조 달러를 넘어선 경제대국 대한민국에겐 개성공단 완전 폐쇄에 따른 경제적 손실이 극히 미미하다는 점이었다. 대략 10억 달러 정도로 추산되는 공단 폐쇄 비용은 연간 무역액 1조 달러의 1000분의 1에 불과한 남한에겐 푼돈과도 같은 것이었다.

    우리 정부 입장에선 이참에 개성공단 하나 폐쇄하더라도 북한의 ‘생떼와 기만적 버릇’을 확실히 바로잡는 게 남북 협상의 장기적 관점에서 득이 크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래서 북한에 ‘마지막 회담’ 제안이란 ‘최후통첩 협상전략’을 과감하게 시행할 수 있었다.

    최후통첩 압박전략 통했다 북측이 갑작스러운 협상 결렬을 선언하며 회담장을 박차고 나간 6차 회담 이후야말로 이번 회담의 승패를 가르는 변곡점이었다. 일각에선 개성공단 폐쇄 책임 소재가 북한에 있음을 명시하는 조건을 포기하고 북측이 제안한 합의문에 어느 정도 양보하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북한의 협상결렬 압박전술에 봉착한 정부의 고뇌가 깊어지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7월28일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직접 읽어 내려간 ‘마지막 회담’ 제안은 충격 그 자체였다. 협상 전문가 입장에서 보니 한마디로 ‘최후통첩(Ultimatum)’ 전략을 내놓은 것이었다.

    이후 열흘간 이어진 북한의 침묵. 과연 우리의 최후통첩 압박전략이 먹힐 것인가. 아니면 오히려 북한으로 하여금 새로운 역제안을 들고 나오게 해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드는 건 아닐까. 온갖 분석과 비판이 난무했지만 정부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며 상황을 지켜봤다.

    그러다가 마침내 북한에 대해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에게 보험금을 지급할 것임을 통보하고 실제 지급을 개시했다. 남측이 낸 ‘최후통첩’ 카드의 진위를 탐색하던 북한에게 허언이 아님을 분명하게 알려준 것이다.

    북한이 우리 측이 과연 중대결정을 실행에 옮길 것인지 예의주시하고 있었음은 보험금 지급 결정 보도가 나간 지 불과 1시간 만에 7차 회담을 무조건적으로 실시할 것을 통보해 온 데서 잘 알 수 있다. 이번 개성공단 정상화 협상은 남북 60년 회담사에 새 획을 그었다. 역사는 남북협상을 ‘개성공단 협상 전’과 ‘협상 후’로 가를지도 모른다. 북한의 결렬 압박과 기만술에 밀리고 당하기만 하던 남한 정부가 7차에 걸친 전체 협상 과정에서 단 한 번도 밀린 적 없이 시종일관 우세를 유지했던, 실로 전무후무한 협상이었기 때문이다.

    결코 거절할 수 없는 치명적 제안 상대에게 나 이외의 다른 대안(BATNA : Best Alternative to a Negotiated Agreement)이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되면 가장 편안하고 즐거운 협상 전술이 우리를 기다리게 된다. 바로 ‘하려면 하고 말려면 말라’는 ‘Take it or leave’ 협상 기법이다. 이때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최고 조건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개성공단 정상화가 절실했던 북한처럼, 더 이상 다른 대안도 없고, 여유 부릴 시간도 없으며, 자칫 객기를 부리거나 우물쭈물하다간 돌이킬 수 없는 최악의 상황(진짜 협상이 결렬돼 막대한 손실을 보게 되는)을 맞게 되는 상대를 만난다면 ‘협상의 최고 꿀맛’을 느낄 수 있다. 협상의 막바지에 이르면 양측 모두 발을 너무 오래, 깊이 담그고 있어 별다른 대안 없이 서로 상대의 선처만 바랄 수밖에 없는 한심한 처지에 놓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때 누가 더 상대의 발을 깊이 빠뜨리고, 누가 더 ‘결코 거절할 수 없는, 놓칠 수 없는 매력적이고 탐스러운 제안’을 하는가가 관건이다.

    그러려면 상대의 치명적 약점이 무엇이며, 따라서 무엇을 가장 두려워하고, 동시에 무엇을 가장 애타게 원하고 있는가를 간파해야 한다. 상대의 니즈와 욕망이 너무나 간절해 조금만 생각을 달리하면-나의 사소한 요구를 수용하기만 하면- 당장이라도 자기 것이 될 수 있다며 애간장이 탈 정도로 조바심을 갖게 할 수 있을 때만 이 꿀맛 같은 협상 기법을 쓸 수 있다.

    그러기에 개인적 인간관계나 자신의 대외적 평판에 과도하게 신경 쓰는 우리나라보다, 인정사정 보지 않는 냉혹한 성과 중심의 미국이나 유럽국가에서 선호하는 협상 기법이기도 하다. 국제비즈니스협상에서 최후통첩전략은 ‘법정에서 보자’는 소송 위협 전략의 형태로 주로 나타난다. 대표적인 사례가 삼성전자와 애플 간 스마트폰 특허소송전이다.

    삼성전자나 되니 전면적이고 공격적인 법정공방에 뛰어들어 극도로 불리한 여건에도 불구하고 애플이 뒷문으로 재협상을 요청해 올 만큼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대부분 국내 기업들은 거대 다국적 기업들이 협상 결렬을 선언하고 동시에 법적 소송에 들어가겠다고 통보만 해도 곧바로 무릎을 꿇고 선처를 호소하곤 한다.

    게다가 미국이나 유럽 기업들의 자국에서 벌이는 법정소송에서 한국 기업이 승소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최근 삼성전자와 애플 특허소송 승소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애플 제품의 미국 내 수입 금지 결정을 내렸지만, 전례 없이 미국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것만 보더라도, 해외에서 법정 투쟁이 얼마나 힘들고 승산이 낮은 것인지 알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외국 기업들은 한국 기업과의 비즈니스협상에서 전형적인 최후통첩 전략을 자주 사용한다.

    6차 개성공단 회담
    6차 개성공단 회담
    협상 결렬 전략에 취약한 대한민국 그런데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은 협상에서 결렬 압박을 가장 두려워하는 나라이다. 그 전술에 가장 취약하다는 얘기다. 외환위기 사태 때 우리나라에선 대기업마저 국제 M&A시장에서 말도 안 되는 헐값으로 팔아버렸다. 대우자동차가 GM에, 삼성자동차가 르노에 매각된 게 대표적이다. 르노의 삼성자동차 인수 협상 과정을 살펴보면, 해외 다국적 기업들이 협상결렬 전략을 얼마나 애호하는지 여실히 알 수 있다. 당시 삼성자동차의 자산가치는 약 3조원으로 평가되었다. 최저 매각 가격이라고 할 수 있는 존속가치는 1조2000억원이었다. 이에 대해 르노가 최초로 제안한 인수가는 2000억원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협상은 2000년 1월에 시작되어 4월에 마무리된다. 최종 매각 가격은 1100억원이었다. 르노는 어떻게 3조원짜리 자동차 제조회사를 그 가격에 살 수 있었을까. 바로 치밀하고 무자비한 협상결렬 전략에 걸려든 것이다. 당시 르노는 3개월간 총 3번의 협상결렬 카드를 사용했다. 협상결렬을 의도적으로 그리고 치밀하게 준비했고 진행했을 개연성이 다분하다. 미국의 포드자동차가 우선협상대상자로서, 당시 문민정부 주도의 ‘빅딜 정책’으로 시장에 나온 대우자동차를 평가한 금액은 60억 달러였다. 이미 안정된 글로벌 자동차 업체에 대한 평가로는 턱없이 낮은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포드가 인수를 포기하고, 세계 최대 자동차 메이커인 미국의 GM이 대우자동차 인수의 새로운 우선협상자로 나선다. 예외 없이 이루어지는 GM의 연 이은 협상결렬 전략. 협상 막바지에 GM의 협상 대표가 우리 측 협상 대표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GM의 역사는 M&A의 역사인데, 한국에 당신처럼 뛰어난 M&A 협상 전문가가 있는 줄 몰랐다. 이번 건은 내 평생 가장 힘겨운 M&A 협상이다. 아무튼 이것이 GM의 최종 제안이다.”

    그 최후통첩을 받고 이미 수차례의 협상결렬로 애간장이 다 녹은 협상팀과 촉각을 곤두세우고 주시하던 당시 청와대를 위시한 당국도 대우자동차 매각 협상을 파국으로 몰고 갈 수 없다며 GM의 최종 제안을 받아들였다. 최종 매각가는 4억 달러에 불과했다. 당초 포드가 평가했던 금액의 15분의 1에 불과한 금액이다.

    이처럼 국제 비즈니스협상에서 우리 기업들은 다국적 기업들에게 늘 당하기만 했다. 그들이 썼던 ‘최후통첩 협상전략’을 이번에 우리 정부가 북한을 상대로 과감하게 시행했다. 물론 최후통첩 전략에도 허점이 있고 약점도 있다. 그 약점을 찾아내 역공할 수 있는 협상전략을 기획하고 치밀하게 시행할 수 있어야 한다. 국제협상력은 글로벌 경쟁 시대에 우리 기업이나 정부가 갖춰야 할 필수 역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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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상기 BNE글로벌협상컨설팅 대표]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6호(2013년 0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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