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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엄마이기 전에
입력 : 2013.08.09 17: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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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많아? 요즘엔 저 정도를 많다고 하지 않아.”
“난 둘이 좋던데. 한마음, 해바라기, 수와진, 이런 사람들.”
“엄마. 요즘엔 듀엣이 거의 없어. 일본에 AK B48이라는 그룹이 있는데 걔네들은 멤버 숫자가 48명이야.”
“말도 안돼. 어떻게 그 많은 애들을 무대에 세우니. 무대 무너지겠다.”
엄마는 내가 ‘슈퍼주니어’ 멤버가 13명이라고 해도 믿지 않을 게 뻔했다. 영어나 중국어 이름들이 마구 섞여 있는 아이돌 멤버들의 이름을 들으면 아마 경기를 일으키겠지. 화면 속에선 하얀색 스키니 진에 색색깔의 티셔츠를 입은 소녀시대가 ‘Gee’를 외치며 집단가무 중이었다.
“나도 저 나이 땐 짧은 치마 입고 명동 거리 활보했어!”
“에이~ 허벅지 두껍잖아.”
“너, 내가 진짜 멋쟁이였던 거 모르는구나. 난 날씬했었어!”
서른을 훌쩍 넘긴 딸의 통박에 나이 육십 된 엄마는 한껏 눈을 흘기며 당장 안방에 들어가 무엇인가를 주섬주섬 찾아 증거물처럼 내놓았다.
“이래도 안 믿을래?”
아… 잊고 있었다. 오래전 앨범 속에서 봤던 그 사진. 낡은 흑백 사진 속의 엄마는 재클린 스타일의 선글라스를 끼고 멋스런 미니스커트에 통굽 하이힐을 신고 있었다. 사진 속 단발머리 처자는 고른 치아를 드러내며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웃음이 봄 햇살처럼 순해서 보고 있으니 정말이지 엄마처럼 보이질 않았다. 엄마가 “네 나이 때, 난 벌써 중학생 학부모였다!” 같은 말을 들으면, 나는 뭔가 초현실적인 이야길 듣는 것 같은 기분에 빠졌다. 그러니까 커트 보네거트의 소설 <제일버드>의 한 장면이 떠오르곤 했던 것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고추를 덜렁거리며 쏘다니는 다섯 살배기 아빠와 마주치는 그 장면처럼. 남자와 사랑에 빠지면 내가 제일 먼저 했던 일은 언제나 그 남자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는 것이었다. 유치원, 초등학생, 중학생 때 어떤 성격이었는지, 무슨 음식을 좋아하고 어떤 책을 좋아하고, 음악을 들었는지에 대한 것들. 어떤 선생님을 좋아했고, 누구와 가장 많이 싸웠고, 첫사랑은 언제였는지, 궁금한 것은 끊임없이 생겨났다. 그리고 반드시 어린 시절의 사진 몇 장을 기념품처럼 간직했다.
만약 시간을 여행하는 타임머신이 있다면 나는 그들의 어린 시절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고 싶었다. 그러니까 애인의 여섯 살 꼬맹이 시절, 자주 놀던 놀이터 그네 앞에 가서 그 아이를 벤치에 앉혀 놓고 쭈쭈바를 먹으며 이런 저런 얘길 나누고 싶은 것이다. 언젠가 이런 얘길 남자친구에게 했더니 “너 그러다간 유아 납치범으로 오해받기 쉽다!”란 얘길 한 적이 있어 산통을 깬 적이 있지만.
엄마의 사진을 보는 동안 아마도 나는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1960년대로 여행할 수 있다면 젊은 엄마를 꼭 만나고 싶다고. 엄마가 엄마이기 이전 ‘프랑스’를 ‘불란서’라 부르며 ‘카페’ 대신 ‘음악다방’에 드나들던 그 시절로, 엄마가 통 넓은 청바지를 입고 통기타를 치고,이장희와 윤형주의 노래를 부르던 때로 말이다.
효도나 효심에 대해서 내가 아는 건 별로 없다. 어떤 날은 엄마가 한 얘길 또 하고 또 하는 걸 보면서 나이 든다는 건 고장 난 테이프처럼 자꾸만 한 얘기를 계속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현재가 아니라 과거에 대해 할 얘기가 점점 더 많아지는 게 노년인가 싶어 서글퍼지기도 한다. 어쩌면 나이 든 엄마가 하는 옛날이야기에 잔소리나 하지 않으면 그게 효심인가 싶기도 하다. 탁구치자고 하면 궁시렁대더라도 탁구를 치고, 한강 좀 걷자고 하면 투덜대면서도 함께 걸어주는 것 말이다.
“어른이 별건가. 애 큰 게 어른이지!”
문득 죽어도 뽀뽀는 안 하겠다던 여섯 살짜리 조카에게 상처받은 내게 친구가 툭 던지듯 했던 말이 떠올랐다. 어른도 상처받는다는 걸 여섯 살짜리가 알 리 없다. 하지만 여섯 살짜리에게 서른여섯 먹은 여자는 ‘제대로’ 상처 받는다. 여전히, 죽는 그 순간까지,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거절당했을 때 우리는 상처받는다. 인간이란 나이와 상관없이 그런 민망한 존재인 것이다.
엄마 역시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엄마가 여자이고, 여자이기 전에 누군가의 딸이었고, 덜떨어진 어린애였다는 사실과 마주치게 되기까지 내겐 긴 시간이 필요했다. 어른이 별건가. 정말이지 애 큰 게 어른이다. 나도 늙으면 저런 주름살을 주렁주렁 달고, 오래전 나의 소녀시대를 추억하게 될 것이다. 그때 누군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어주었으면 좋겠다.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엄마는 내게 끊임없이 말을 한다. 간혹 침묵조차 그럴듯한 대답이 될 만큼 딸과의 시간이 좋은 것이다. 나는 엄마가 따라 부르는 노래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인간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위로가 자신의 시간을 나누는 것, 함께 있어주는 것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엄마가 깎아준 배는 물이 많고 달콤했다.
이토록 아름다운 단발머리 소녀가 엄마였단 사실 때문에 저토록 늙은 엄마의 흰머리가 서글프다. 소녀시대의 노래를 따라 부르진 못해도 그녀들이 어여쁘다고 말하는 엄마가, 초미니스커트를 ‘똥꼬 치마’라고 고쳐 부르는 1970년대 사진 속 나의 엄마가 말이다.
한글 사용을 권장하던 정부 때문에 ‘바니걸스’가 ‘토끼소녀’가 되고 ‘어니언스’가 졸지에 ‘양파들’이 되던 그 시절로 되돌아간다면, 나는 내가 가끔 꿈꾸곤 했던 시간여행의 주인공이 되어 발랄한 저 사진 속 단발머리 소녀에게 명랑하게 휘파람을 불며 이렇게 외치고 싶다.
“저기, 아가씨! 다리 한 번 끝내주게 예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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