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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 교수의 인간과 신] ⑲ ‘사자의 서’
입력 : 2013.08.09 16:5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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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맡겨진 고유한 미션을 찾는 행위를 ‘소명(召命)’이라 부른다. 사람이 그 소명을 깨닫게 된다면 자신의 목숨까지 바쳐 소명을 완수하게 된다. 이런 자들을 우리는 ‘위대한 자’ 혹은 ‘혁신가’라고 부른다. 그러한 소명 기회인 심판을 인류역사상 가장 극명하게 표현한 작품이 바로 이집트의 <사자의 서>이다. 고대 이집트에서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영원한 삶의 시작이었다. 파라오들은 자신들의 왕궁보다는 나일강 서쪽에 건축하는 장례전이나 피라미드에 온 정성을 다했다. 현재의 삶은 순간이며, 사후세계는 시간을 초월한 영원이라고 여겼다.
고대 이집트인들의 사후세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문헌은 기원전 16세기에 등장해 이집트가 멸망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사용된 소위 <사자의 서> (기원전 1550-50년)라는 장례 문헌이다. <사자의 서>의 원래 이집트 명칭은 ‘루 누 페레트 엄 헤루’로 그 의미는 ‘빛으로 나오기 위한 책’이란 의미이다. <사자의 서>는 죽음을 맞이한 자가 ‘두아트’라는 가장 깊은 지하세계를 지나 사후세계로 여행하면서 다음 세계로 진입하기 위해 필요한 주문(呪文) 모음집이다. <사자의 서>는 기원전 1300년경 테베에 살았던 서기관 휴네페르가 심판을 받는 장면을 묘사한다. 휴네페르는 파라오 세티 1세를 모시던 궁중 서기관이었다. 이 그림은 왼쪽에서 시작해 심판을 받는 과정을 차례로 설명했다. 맨 왼쪽에 죽은 자를 지하세계로 인도하는 시체 방부 처리를 관장하는 신인 아누비스가 휴네페르를 오른손으로 잡고 인도하고 있다. 아누비스는 머리는 자칼의 모습을 하고 몸은 사람의 모습이며 긴 꼬리를 달고 있다. 최근 유전자연구를 통해 이집트 자칼은 이집트 사막에서 종종 발견되는 회색 늑대의 한 형태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늑대는 이집트 무덤에서 종종 인간의 시신을 파내 그 살을 먹는 스캐빈저이다. 아누비스의 머리가 검은 색인 이유는 검게 변한 시신을 상징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재생을 상징하는 나일강의 검은 땅을 상징하기도 한다. 아누비스가 휴네페르를 인도하는 동안 위에선 휴네페르가 이집트의 14명 주요 신들을 예배하고 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두 손바닥을 밖으로 향하게 하여 가슴까지 들어 올리는 모습을 ‘두아’라고 하는데 그 의미는 ‘경배하다’이다. 아누비스의 손에 이끌려 심판대로 끌려가는 휴네페르는 이집트의 신들에게 떨리는 마음으로 경외를 표하고 있다.
휴네페르는 여기에서 생전에 42가지를 하지 않았다고 선포해야 한다. 이 선포를 ‘마아트의 부정 고백들’이라 부른다. “나는… 이 같은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라고 고백하는 42가지 내용들은 인간이 금해야 할 행동이나 생각들이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십계명은 신이 계시한 명령이지만, 이집트의 42가지 부정 고백들은 인간이 일상생활 속에서 해서는 안 될 도덕적인 내용들이다.
42가지 부정 고백들은 각각을 관장하는 42명들의 신들과 그 내용들이 있다. 휴네페르는 42명들의 신들과 그 고백들을 정확하게 고백해야만 한다. 휴네페르가 이 고백을 마치면 바로 그 고백이 진실인지 아닌지 심판을 받게 된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생전에 도덕적인 삶을 살지 않았다면 사후세계를 보장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사후세계는 신을 믿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도덕적인 삶을 살았느냐가 관건이다.
휴네페르는 이제 자신의 고백의 진위를 시장에서 볼 수 있는 물건의 무게를 재는 천칭을 이용해 심판 받는다. 천칭의 중앙대를 중심으로 바로 왼쪽에는 아누비스가 하얀 제단위에 앉아 심판과정을 관장하고 있고, 천칭 중앙대 오른쪽에는 머리는 악어, 몸은 사자, 그리고 하체는 하마인 ‘암무트’라는 괴물이 천칭 밖에서 무언가를 적고 있는 문자의 신인 따오기 머리를 한 토트를 응시하고 있다. 천칭의 양쪽 저울판에서는 각각 서로 다른 것들이 올라가 있다. 왼쪽 저울판에는 휴네페르의 심장이 올려져 있고, 오른쪽 저울판에는 심장의 무게를 재는 분동(分銅)으로서 타조깃털이 올려져 있다.
고대 이집트어로 심장을 ‘입(Ib)’이라고 한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생각하는 영혼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 중에 하나인 ‘입’은 인간의 감정, 생각, 의지, 그리고 의도가 만들어지는 원천이다. 그러니까 ‘입’은 휴네페르가 살아생전에 하던 생각, 말, 행동을 모두 저장한 컴퓨터의 하드디스크와 같은 것이다. 고대 이집트 종교에서 심장은 사후세계를 결정하는 열쇠이고, ‘입’은 사후에 살아남아 지하세계에서 그것을 소유한 사람을 심판하는 중요한 단서이다.
천칭의 다른 저울판에서 분동역할을 하는 타조깃털은 고대 이집트어로 ‘마아트’라고 부른다. ‘마아트’는 일반적으로 ‘정의’ 혹은 ‘진리’라고 번역된다. 그러나 마이트의 본래 ‘중용(中庸)’과 같은 개념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커다란 건물을 사막에 지을 때 먼저 정교한 의례를 거행했다. 그들은 사막에서 수천 개 혹은 수만 개의 무거운 돌을 쌓아올려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피라미드를 건축하면서 이 수많은 바위들을 지탱할 수 있는 그 중심을 타조깃털로 표시하는 관습이 있었다. 마아트는 우주의 원칙이면서 동시에 개인이 짧은 인생동안 반드시 찾아 행해야 할 그 자신에게만 주어진 의무이다. 사후세계는 자신이 반드시 행해야 할 미션을 찾고 그것을 이행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다.
천칭의 옆에 서서 생명의 책을 들고 휴네페르가 정말 자신의 마이트를 찾아 자신에게 맡겨진 의무를 다했는지 조사하고 있다. 만일 천칭이 균형을 유지하지 못하고 심장 쪽으로 기운다면, 괴물 암무트가 휴네페르를 잡아먹을 것이다. 그러면 휴네페르는 ‘자신의 이름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자’가 된다. 그러나 저울판이 평행을 유지한다면 그는 고대 이집트어로 ‘마아 케루’ 즉, ‘목소리에 거짓이 없는 자’가 되어 태양신인 호루스의 인도를 받아 재생과 부활의 신인 오시리스 앞에 서게 된다. 윤동주 시인의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삶’, 자신의 임무를 깨닫고 몸과 마음과 정성을 다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5호(2013년 0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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