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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 교수의 인간과 신]⑮ 용서 가장 위대한 신의 명령
입력 : 2013.04.08 14:5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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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 샤갈, 축제날(레모라 랍비), 1914
유대인들을 다음 네 가지 식물을 들고 기도한다. ‘룰라브’(대추야자나무) ‘하닷사’(도금양나무) ‘아라바’(버드나무) 그리고 ‘에트록’(시트론)을 들고 기도한다. 이 네 가지 식물은 디아스포라에 사는 유대인들의 4가지 유형이기도 하다. 우선 ‘룰라브’(대추야자나무)는 맛은 있으나 향기가 없는 식물이다. ‘룰라브’는 경전연구와 오랜 묵상을 통해 박식한 사람이나 선행으로 옮기지 못한 사람을 상징한다. 아무리 공부하면 뭐하나? 공자(孔子)도 <논어>에서 “시경 300편을 외우고도 정치를 맡아서 민심을 통달하지 못하고 사방에 사신으로 가서 전문적으로 잘 대처하지 못하면, 비록 많이 외우고도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룰라브’는 선행이 없는 믿음은 소용없다는 것을 상징한다. 두 번째, ‘하닷사’(도금양나무)는 향기는 있으나 맛이 없는 식물이다. 이 식물은 천성적으로 착하긴 하나 토라를 공부하지 못해 그 선행을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다. 경전연구와 마음의 훈련을 통해 항상 영감을 받고 선행이 습관이 되지 못한 사람의 유형이다. 세 번째, ‘아라바’(버드나무)는 맛도 없고 향기가 없는 식물로 토라를 연구하지도 않고, 천성적으로 선행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마지막으로 ‘에트록’은 시트론(유자)이다. 에트록의 특징은 향기도 좋고 맛도 있어 토라를 지속적으로 묵상하고 연구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가장 모범적인 유대인의 상징이다.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나라를 잃은 상황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토라연구과 그 실천을 통해 자신들의 민족성을 발견하고 언젠가 나라를 재건할 원대한 꿈을 키웠다. ‘에트록’의 본질에 관한 동유럽 유대인들을 통해 회자되는 이야기가 있다. 18세기 말 동유럽 폴란드 바르샤바에 거주하는 유대인 부부가 있었다. 이들은 가난한 살림이지만 다가오는 장막절을 준비하고 있었다. 때는 10월 말. 이 부부는 눈보라가 몰아치는 바르샤바 집 마당에 수카를 짓고 있었다. 나무판자로 대강 기둥을 만들고 지붕은 큰 나뭇잎으로 덮어 지내는 자기정화 의식이다. 남편은 골칫거리가 생겼다. 장막절을 위한 4가지 식물이 필요한데, 에트록은 도저히 구할 수 없는 희귀 과실이기 때문이다. 이 식물들을 준비하고 의례에 사용하는 행위는 신의 명령이었다. 이 명령을 지킴으로 유대인들은 디아스포라에서 꿈에 그리는 조국으로 언젠가는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부인에게 에트록을 준비하지 않으면 수카를 짓나 마나하다고 하소연한다. 그러자 부인은 “신이 준비할 것입니다!”라고 말하고 장막절 식사 준비를 위해 시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남편은 부인의 말에 힘을 얻고 열심히 수카를 짓기 시작한다. 그런데 수카를 짓는 동안 아주 오래된 친구가 찾아와 안부를 묻고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가져온 에트록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이 친구는 자신도 사용해야 하는 소중한 물건이지만 이 유대인에게 에트록을 팔기로 결정한다. 친구 역시 장막절기를 위해 이스라엘에서 가져온 것이기에 10루불을 주면 팔겠다고 말한다. 10루불은 당시 거의 한 달 월급에 해당하는 거금이었지만, 이 신실한 유대인은 신의 명령을 지키기 위해 에트록을 구입한다. 너무 신이 난 이 유대인은 에트록을 부엌에 놓고 부인이 시장에서 돌아오면 다른 식물들과 함께 수카를 장식할 것이라고 기대했었다.
남편이 밖에서 수카를 마무리하고 있는 동안 시장에서 돌아온 부인은 부엌에 놓인 에트록을 비슷하게 생긴 레몬이라고 착각하고, 저녁 음식을 만드는 데 사용하고 만다. 수카를 완성하고 돌아온 남편은 저녁 식사를 준비한 부인에게 기쁜 소식을 전한다. 예루살렘에서 찾아온 친구가 에트록을 가져와 자신이 거금을 주고 그것을 구입했다고 말한다. 이 유대인 부부는 “신께서 모든 일을 준비하셨다!”라고 말하면서 눈물이 글썽해 신에게 기도했다. 부인은 그 귀한 에트록이 어디에 있냐고 묻자, 남편은 부엌 식탁에 두었다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부인은 얼굴이 하얗게 질리기 시작한다. 부인은 그 유자를 시장에서 사온 레몬으로 착각해 음식을 만드는 데 사용했다고 울면서 말했다. 남편은 잠시 얼굴색이 변하더니 깊은 한숨을 쉰다. 그는 잠시 후 말없이 아내를 와락 껴안는다. 부인은 당황하며 “왜 당신은 나를 책망하고 혼내지 않고 껴안습니까? 제가 신의 명령을 어기게 만들었는데,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더욱더 사랑스럽고 다정한 눈길로 아내를 보며 말한다. “에트록은 내일까지 준비하면 되지 않소. 지금 이 순간 신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명령은 당신을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것’이요.” 에트록의 진정한 의미는 ‘용서’다. 종교의 위대한 교리나 가르침보다 내 이웃과 원수까지 용서하는 것이야말로 신의 가장 위대한 명령이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1호(2013년 0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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