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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벤처정신 키우기 위해 필요한 것들
입력 : 2013.03.07 17: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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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근본은 교육인 것 같다. 창의성과 창업이 존중되는 교육문화로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인구 780만, 경상남도 크기의 이스라엘에는 세계 100대 하이테크 기업의 75%가 연구소 또는 생산기지를 두고 있다. 놀랍게도 전 세계 벤처투자의 31%가 여기서 이뤄진다. 이 조그만 나라에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 전 세계에 뻗쳐진 유태계 금융인맥 때문일까. 물론 그것도 중요한 이유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 특유의 벤처정신과 창의적 교육문화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라 한다. 소위 ‘후츠파 정신’이다. 후츠파는 ‘놀랍고 당돌한 용기’란 뜻의 이스라엘 말이다. 상명하복의 대명사인 군대에서조차 나이와 계급에 관계없이 당당하게 자기의견을 밝힌다. 탈무드 교육에서 보듯이 결론이 날 때까지 끈질기게 묻고 답한다. 이런 자유로운 토론문화가 오늘날 이스라엘 창조 경제의 밑바탕이 됐다고 한다.
우리도 초등학교부터 창의성과 창업교육을 실시하고 가능하면 벤처정신에 익숙하도록 교육시스템을 새로 짜야 한다. 또 하나는 이공, 과학교육의 강화로 돌아가야 한다. 벤처는 기술을 수익모델로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역시 근본은 과학기술이다. 과학교육이 강화되지 않으면 벤처정신은 공허하다. 유태인들이 노벨상을 휩쓸어왔던 것도 또 세계 최대인구의 중국이 30년간 초고속 성장한 배경도 모두 이공계 과학교육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최초로 이공계 대통령을 탄생한 새 정부에서는 만시지탄의 감은 있지만 지금부터라도 제2의 과학기술입국을 해야 한다고 본다.
둘째로 실패를 실패로 버릴 게 아니라 성공으로 가는 경험 축적으로 인정하는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회계법인 언스트앤영이 G20의 성공한 청년 기업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우 ‘사회에 기업가 정신을 북돋아주는 분위기가 있다’는 응답이 84%로 G20 중 6위를 기록했다. 나름 최근 벤처를 강조하는 분위기를 반영한 듯하다. 그러나 ‘사업 실패를 사회에서 배우는 기회로 받아들이는지’라는 질문에 대해선 24%만 예스라고 대답, 최하위를 기록하였다. 우리나라 청년 기업가들은 한번 실패하면 거의 재기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셈이다. 당연히 유능한 젊은이 중에서 창업하는 사람이 나오기 어려운 토양이다. 또 패자부활의 기회가 없는데, 벤처정신으로 도전하라고 독려만 하면 낮은 창업 성공률을 고려할 때 자칫 신용불량자 양산과 같은 큰사회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미국은 창업했다 파산해도 창업자의 거주주택에 대해 12만5000달러까지는 압류가 면제되고 보험은 최대 9850달러까지 보호된다.
즉, 일정한 사회안전망(Social Safety Net)을 갖추고 있다. 몇 년 전 한 유럽보고서는 유럽에서 빌게이츠가 나오지 않는 이유로 유럽 사람들의 실패에 대한 관용부족을 꼽았다. 대조적으로 미국은 성공 기업인들의 창업실패 경험이 평균 2.8회였다. 실패를 성공확률을 높이는 경험으로 인정하는 셈이다. 우리나라도 연대보증제도 폐지 및 재창업자금 지원 등 체계적인 재기지원책, 사회 안정망을 마련해야 한다. 또 사회적으로는 실패가 성공 못지않은 소중한 자산이라는 인식을 확산시켜야 한다.
셋째, 벤처기업에 돈을 대주는 투자문화도 바뀌어야 한다. KDI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벤처캐피탈이나 엔젤투자자로부터 기술력, 성장 가능성을 인정받아 투자를 유치한 순수한 의미의 벤처기업은 전체 벤처기업의 2.5%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만큼 대부분이 대출이나 보증에 의존하고 있다는 얘기다. 미국의 경우 2011년 기준 벤처기업들이 벤처캐피탈로부터 291억달러(약 30조원), 엔젤투자자로부터 225억달러(약 24조원)을 조달했다. 우리나라 벤처기업 조달규모의 50배다. GDP 대비 벤처캐피탈 시장규모로 봐도 미국 0.25%, 이스라엘 0.5%에 비해 우리나라는 0.1%로 지분투자 규모가 너무 작다. 따라서 원리금 상환에 목을 매야 하는 대출보증보다 이런 부담이 없는 지분투자 비중을 높일 수 있도록 정책금융 활용 또는 기관자금에 대한 적극적인 인센티브 부여 등이 필요하다. 특히 엔젤자금은 창업초기 기업에게는 생명수와 같은 종잣돈이다. 작년부터 정책 노력으로 엔젤클럽, 엔젤투자자 증가 등 인프라가 조성되고는 있지만 투자는 아직 미미하다. 투자실적 326억원으로 IT붐 등으로 엔젤투자가 활발했던 2000년 5493억원의 5%, 벤처캐피탈 시장규모의 3%로 미미하다. 반면 가장 창업이 활발한 나라 중 하나인 미국은 어떨까. 엔젤의 원조답게 대략 27만의 엔젤투자자가 연간 200억달러(약 20조원)를 투자하고 있고 투자기업수도 6~7만개나 된다. 놀라운 것은 창업초기 기업의 97%가 엔젤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받고 있고 엔젤투자금액이 벤처캐피탈 투자금액의 절반에 육박한다는 점이다. 그만큼 미국은 창업과 창업정신이 활발하다는 반증이다. 미국 엔젤투자문화의 대표 격은 역시 실리콘밸리다. 엔젤과 기업인들의 프리젠테이션과 토론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공식, 비공식 만남을 통한 상호 신뢰구축,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가 실리콘밸리를 특징짓는 단면이다.
끝으로 너무 많이 얘기되어 진부한 느낌이 있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상생문화를 빼놓을 수 없다. 최근 재벌 빵집 논란이 일 때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빵집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중요한 건 한국 재벌들이 일본 또는 독일식의 소규모 전문 기술업체가 성장하는 것을 막고 있다는 점이며 소규모 기업이 혁신역량을 갖기 시작하면 재벌은 해당기업을 사들여 자산과 인력을 빼앗는다’고 지적하였다. 반면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 사례는 대조적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1달러 벌 때 그 생태계에 속한 기업들은 8.7달러에 이르는 수익을 내는 협력적 기업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벤처정신을 고취하기 위해서는 납품업체 쥐어짜기, 기술과 인력 뺏기 등 대기업, 중소벤처기업 간의 적대적 관계를 하루빨리 해소해야 한다. 서로 공존 협력하는 상생문화, 기업 생태계 구축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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